[출판]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外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지음/정금나ㆍ김은정 옮김/삼인 刊)

‘소녀들은 인공 조명이 비추고 있는 새장 안에 앉아 있었다. 반대편 바깥쪽에는 의자가 쭉 늘여져 있어서 남자들이 앉아서, 선택을 위해 고민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우리 도시의 뒷골목 어디에선가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방콕 마사지 업소 풍경을 소묘한 저 글의 내용은 그러나, 우리 현실과 치환시켜도 별 무리가 없다. 세계 어디에서건 매매춘이란 결국 금전을 매개로 한 착취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터럭 만큼도 다르지 않다.

성착취 반대 운동을 국제적으로 펼쳐 오고 있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캐슬린 베리는 ‘섹슈얼리티의 매춘화(The Prostitution of Sexuality)’에서 매춘의 부당함을 420쪽에 걸쳐 증명해 보이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 지는 전세계 여성의 ‘성적 대상화’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포주, 알선업자, 범죄 조직의 구성원, 노예 상인, 매춘업소의 경영주, 마사지업소, 포르노그라피 공급업자, 아내 구타자, 어린이 성추행자, 근친상간의 가해자, 강간범 등 성 노예화에 참여하는 막대한 남성들에 대해 국가적ㆍ국제적으로 위기 사태가 선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착취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눈다. 여성에 대한 불법 거래, 군대에서의 매매춘, 성의 산업화, 매춘의 정상화(正常化) 등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포르노그라피로 가득찬 후기산업사회다. 매춘의 정상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매매춘과 여성의 매매 현상을 기록하고 그 역사적 내력을 추적, 서구의 전세계적인 경제 지배가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파악한다.

우리 시대는 섹스에 자유로울 수 없다. 1960년대 성 해방 운동과 포르노그래피의 합법화가 남긴 유산은 여성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였다.

누구든 성, 도는 성적 이미지를 상품화시켜 내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비디오 녹화기는 일반 가정의 침실을 포르노 제작의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미국서 매달 새로 나오는 75개의 성인용 비디오의 3분의 1은 집에서 아마추어가 제작하는 현실이다.

이 시대, 우리는 매춘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우선 저자는 각국의 정부가 매매춘에 대해 취하고 있는 관점을 금지주의, 관리주의, 폐지주의 등 세 가지로 나누고, 어느 것도 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해결책은 ‘전략적 비범죄화’,

일체의 성 착취를 범죄로서 금지하되, 매매춘 여성을 이러한 범죄의 행위자가 아닌 피해자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매매춘 여성을 지원하는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들은 범죄 피해자에 대하여 사회가 마땅히 책을 져야 할 정당한 구제 조치로 인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 섹스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매춘 여성들이 나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수해 왔던 금기 사항은 깨졌다. 각종 변태적 성교로, 실내에서 실외로의 섹스로 매춘 관행이 변한 것은 공급자가 많아져 섹스 가격이 하락한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1월 군산 개복동,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등 윤락가 화재로 각각 10명, 5명의 꽃다운 생명을 잃어야 했던 우리 사회에 울리는 공명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는 책이다. 정금나(여성과 경제 연구회 회원), 김은정(매매춘 해결을 위한 연구회 회원)씨 등 2인의 공역이다. 지은이는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인간개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의 저력인 인프라(사회기반시설)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로마인이 건설한 길은 간선ㆍ지선도로를 합쳐 15만km에 달한다. 중국 진시황은 외부와의 단절을 위해 5,000km의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로마인들은 외부로 나가기 위해 그 30배에 달하는 길을 만들었다.

‘로마인 이야기 10’은 이전에 나온 책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까지는 인물 중심의 영웅전이었다면 이책은 도로와 다리, 수도 등 300년의 ‘팍스 로마나 ’를 가능하게 한 인프라, 그 근본을 다루고 있다.

또 로마의 의료와 교육에 대해선 ‘소프트 인프라’ 라는 제목으로 구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인프라를 개인이 할 수 없기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권력과시를 위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대신 실용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던 로마인들의 의식기조에는 ‘몰레스 네케사리에(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 즉 공공심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500년 동안 꾸준히 길을 만들었다. 로마를 둘러싼 1~8번 국도는 지금도 그대로 사용할 만큼 견고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 로마의 가도(街道)는 제국의 동맥이다.

수도 로마에서 12갈래로 갈라져 출발하는 가도는 추운 북해에서 뜨거운 사하라까지, 대서양에서 유프 라테스 강까지 뻗어나가는 동안 375개의 간선도로로 늘어난다. 모두 포장된 도로다. 인간의 왕래를 통해 만들어진 흙 길과는 달리 국가가 건설한 도로들이다.

이 거대한 도로망은 지금 유럽연합(EU)보다 넓었던 제국의 영역을 통제하는 핏줄역할을 했다. “황제의 편지는 씌어지자마자 마치 날개 달린 전령이 나르는 것처럼 신속하게 목적지에 배달된다”는 기록처럼 로마는 가도를 통해 제국을 지배했다. 가도가 없었다면 20만이 안 되는 병력으로 대제국을 통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로마의 유명한 다리와 수도(水道)에 대해서도 도로망과 같은 맥락에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샘이나 호수의 수질 검사에 이어 토양과 식물의 생장상태, 그 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상태를 검사하고 먹기에 적당한 물로 판단되면 물을 도시로 끌어들여 공사를 시작하는 로마인들의 사려 깊은 통찰력.

물의 증발이 걱정되는 더운 곳에는 지하수도를, 그렇지 않은 곳은 고가 도로의 물길을 건설하는 공학적인 기술력. 철저한 물 관리로 전염병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청결한 제국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숨은 힘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사고 등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인프라 구축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3/2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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