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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대통령의 침묵

김대중 대통령이 2월 12일 국무회의 끝에 “나는 할말이 없습니다”라고 언급한 것은 여러 의미를 던져준다.

언론의 분석은 아태재단과 차남 홍업씨가 게이트의 도마에 오르는데 대한 불만,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발전노조 파업, 하이닉스 해외매각 등과 관련한 관계부처에 대한 질책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데 모아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침묵은 대통령의 한때의 심기(心氣) 정도로 흘려 버릴 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민주주의 대통령 중심제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 닥쳐온 문민시대 3기 대통령을 뽑는 때에 분석의 깊이를 역사에 물어볼 필요가 있다.

1789년 이후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통령제 국가다. 많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1945년까지 12년간 헌법을 수정해가며 3선 대통령을 지냈다.

그와 그의 부인 엘리노어의 2차 대전 중 국내활동을 주로 다룬 책 ‘범상한 때가 아닐 때’를 쓴 도리스 키언스 굳윈(하바드대 역사학 교수, ‘케네디’, ‘린든 존슨’의 저자)는 루스벨트를 “34년간 공직생활 중 그가 눈물을 흘렸을 때는 어머니 사라가 돌아 갔을 때 뿐”이라고 적었다.

이 책으로 퓰리처상(역사부분)을 수상한 필자는 또 ‘루스벨트가 각료회의나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왜 대통령은 침묵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대통령은 짜증내지 말아야 하는가. 루스벨트의 평자 굳윈은 여러 면에서 이를 고찰해 분석하고 해석했다.

루스벨트는 미국 정치에 있어 대통령은 어떤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굳윈에 따르면 루즈벨트는 “2차 대전 중 추축국과 미국을 비교하며 그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의 사기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국민의 사기를 부추기고 강화 시켜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여론은 항상 포켓에 넣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보다 ‘무엇을 할 수 있나’를 파악해 실천 하는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941년 8월, 세계는 독일의 러시아 공격(같은 해 6월)과 일본의 인도네시아 침공(같은 해 7월)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추축국과 연합국이 정면대결을 벌이는 세계 대전의 초입에 서 있었다. 루스벨트는 대서양에서 영국 총리인 처칠을 만나 연합국의 결성과 러시아에 대한 원조를 협의 했다. 25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합이 탄생하는 회의였다.

이때 미국에서 루스벨트에게 날아온 뉴스는 하원이 1년 8개월의 징병 연장안에 대한 표결을 벌여 203 대 202로 통과시켰다는 것이었다. 처칠 등 영국 대표들의 얼굴이 흑색이 되었다. “앞으로 큰 전쟁을 해야 할 나라가 3선 대통령을 1표 차이로 지지 하다니… 영국 같으면 그건 내각이 무너지는 불신임안이나 다름없다.”

미국 대표들 중에서도 루스벨트만이 담담했다. “큰 승리는 아니다. 그러나 1표차도 승리는 승리다. 앞으로 18개월간 지금 보다 8배의 군대를 갖게 된다. 더 중요한 점은 연장을 반대한 측이 패배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보다 강한 군대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는 국민을 통합하고 여론을 한곳으로 집결시키는 유별난 재주가 있었다. ‘통합 최우선’ 정책에 관한한 루스벨트보다 잘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인은 거의 없다는 게 루스벨트 연구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 그는 흑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부인 엘리노어에게 도움을 요쳥했다. 백악관에서 노조 관계자들을 만났고 흑인 지도자에게 직접 전화하고 편지도 했다. 국민들에게는 손수 쓴 원고로 옆에서 이야기 하듯 ‘노변담화’를 라디오로 흘러 보냈다.

흑인들은 1941년 5월 직장내 흑백 차별과 남부 지방의 인종차별을 규탄하기 위해 10만 명 워싱턴에 집결해 항위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는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의회를 분열시킬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그는 엘리노어에게 흑인지도자 필립 랄프를 설득토록 했고 그를 백악관에서 두 차례나 만나 워싱턴 행진을 하루 전에 취소 시킬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타협을 할 때 선두에 나설 필요는 없다. 간접적으로 타협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혼란이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필요한 대가임을 알아야 한다”고 협상에 나설 때마다 설명 하곤 했다.

그를 보좌해 2차 대전을 치룬 조지 마샬 합참의장은 그에 대해 결론 짓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만큼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그 말은 잘못된 말이 아니다. 깊은 사상을 전하는 말이다.”

‘국민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김 대통령은 침묵을 깨야 한다. 다시 한번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김 대통령의 침묵의 이유와 그 이후를 지켜 봐야 할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3/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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