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육식의 종말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신현승 옮김/시공사 펴냄)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연수할 때 경험이다. 여름에 10여일 동안 홋카이도 농촌 지역 한 가정에 머물며 그들과 생활을 같이 했다.

당시 무척 넓은 밭을 보았는데, 그곳에 심어져 있던 배추가 마구 파 해쳐져 있었다. 의아해 하며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축 사료용’이라는 것이다. 아니? 배추가 가축 먹이라니? 무척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Beyond Beef’가 원 제목인 이 책은 쇠고기로 상징되는 육식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육식이 건강에 얼마나 나쁘고, 또 비 인도적인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한창 유행인 채식주의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 현대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이미 우리와 익숙한 저자는 소 사육과 육식 생활이 우리의 삶과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육식은 우리의 삶과 지구를 망치고 있다. 소를 키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됐으며, 지구 환경은 황폐해 졌고 생태계는 파괴됐다. 소는 열대 우림 파괴, 사막화, 지구 온난화 등의 주범이다. 또 남녀 차별과 계급 구조,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등의 구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의 수는 12억8,000마리로 추산된다(이 책은 1993년에 나왔으니까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소의 사육 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수억 명을 넉넉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소를 비롯한 가축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 지구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을 소비한다. 문제는 소의 ‘생산성’이 아주 낮다는데 있다. 소는 가축들 중에서 음식물의 에너지 전환이 가장 비효율적인 부류에 속한다.

소는 에너지 폭식자여서 가축의 ‘캐딜락’이라고도 불린다. 식량 경제학자 프랜시스 라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곡물 재배에 사용되는 1 에이커 토지는 육류 생산에 사용되는 1 에이커의 토지보다 5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콩류를 심으면 10배, 잎이 많은 야채를 심으면 15배 많다. 시금치를 심으면 26배에 이른다.

쇠고기 몇 덩어리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배 부른 소, 배 고픈 인간’인 것이다. 반면 서구인들은 사상 처음으로 비만과 그로 인한 ‘풍요의 질병’을 걱정하게 됐다.

또 곡물 사료를 먹인 스테이크 1 파운드를 생산하려면 수백 리터의 관개 용수가 필요하다. 이를 주간지 뉴스위크는 ‘1,000파운드짜리 황소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면 구축함을 띄울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 물의 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전쟁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과 북미의 거대한 육식 문화는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가 최상층에 자리잡고 있는 인위적인 단백질 사다리를 지난 15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구축했으며, 다른 나라들에게도 이 사다리에 올라가도록 끊임없이 권유하고 있다.

저자는 전세계 곡물이 인간을 위한 식량에서 가축을 위한 사료로 전환된 것이 부의 재분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인류 악을 나타내는데, 아마도 그 결과는 과거 인간 대 인간이 벌였던 그 어떤 폭력보다도 훨씬 장기적이고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그러나 소가 지구 환경 및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소는 전세계 온대 지역의 토양 부식과 지구의 사막화 확산, 열대 우림의 파괴, 담수 고갈, 자연계 오염,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며 더욱 증가하는 소의 수는 지구 생물권의 화학작용까지 위협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소가 인간을 집어 삼키고 있는 것이다. 육식은 남성 지배와 성별 계급별 구조를 고착화했으며, 더 나아가 육식을 하는 민족이 최고하는 인종차별과 식민 정책의 정당화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육식에 있어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문제점들을 사람들이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식이 건강상 좋지 않다는 사실 정도를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켜 육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와 평이한 서술 등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지만, 육식과의 결별이 영양학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 등이 다소 아쉽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2/03/20 20:5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