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中·日교류 연패 수모 갚은 '白의 반란'

'철의 수문장' 섭위평의 중일 슈퍼전③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문화대혁명이 폭발한 것은 불운이었다. 8년 동안이나 중국바둑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으니 바로 이 시기에 일본 땅에서는 오다케(大竹英雄) 이시다(石田芳夫) 다케미야(武宮正樹) 가토(加藤正夫) 고바야시(小林光一) 등 우수한 젊은 기사 군이 배출되어 대 번영을 이룩하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었다.

1973년 드디어 주은래(周恩來) 총리의 배려로 일본과의 교류전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기력은 전보다 역시 더 떨어져 일본과의 56 대국 중 겨우 14국을 승리했고 패국이 40국이나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섭위평은 생후 처음으로 일본기사와 공식대국에 임했는데 일본의 아마추어 7단의 기사로 일본 아마추어 본인방을 보유하고 있던 기사였다.

당시 풋내기이던 섭위평이 이 아마추어 기사라고 해서 쉽게 이길 리가 만무하였다. 당시는 일본바둑의 힘이 전 세계를 지배할 때였고 따라서 섭위평 같은 풋내기는 쉽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가토 마사오(加藤正夫)에게도 졌다. 2단 짜리 여류기사에게만 승점을 올릴 수 있었다. 그것이 중국바둑의 본 모습이었다.

1974년 다시 교류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섭위평은 전국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직후이고 전해의 참패를 씻어줄 각오로 덤볐으나 또다시 1승2패였다. 게다가 승리한 기사는 일본의 이름 모를 2단이었으니 '국내에서는 강하고 국제 전에는 약하다'는 중국 내 비난을 들을 만도 했다.

드디어 1975년 섭위평이 득의만면하던 때가 돌아온다. 9월의 전국대회를 우승하고 직후에 열린 중일기전에서도 상대를 흔들어놓았다. 그 해의 일본바둑대표단은 명예 본인방인 다카가와(高川格)를 단장으로 9단급들로 채워졌다 그 당시까지 중국을 방문하던 기사 중에 가장 강한 대표단일 것 같았다.

구보우찌 9단이 상대였다. 구보우찌는 관서기원의 총수이던 하시모토 우따로(橋本昌二)와 함께 관서기원을 창립한 멤버로 지금의 일본기원보다 관서기원이 못하지 않을 때 관서의 제2인자로서 활약하던 멤버였다. 당시로서도 정상급 기사는 아니라고 해도 랭킹 10위권은 거뜬히 드는 기사였다.

섭위평은 백을 잡았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지만 흑과 백은 그 두는 방법에 있어서 다르다.

특히 고단자의 바둑이 되면 백 차례는 한층 냉정침착하게 두어야 한다. "흑 차례는 3번의 완착이 허용되지만 백 차례에서는 단 1번의 완착이면 끝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 차례에서는 힘이 든다. 그런 백을 들고 섭위평이 나섰다.

당시 중국에서는 백을 들고 일본기사를 이긴 선수는 단 한명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사고(思考)로는 중국기사가 백을 들도 일본기사를 이기기까지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섭위평이나 구보우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의 대국심리에는 전혀 반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섭위평은 이전부터 이런 관념을 뒤바꾸게 하는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구보우찌가 흑 돌을 쥐게 된 순간 섭위평이 항복하는 것을 상상했는지 속기로 일관했다. 그 속기가 그만 파국을 불러 섭위평의 유인작전에 걸려들어 패배하고 만다.

구보우찌에게 승리한 섭위평은 의기가 충천하여 계속 고단진들을 연파하고 3연승을 내달았다. 이전의 교류전에서 패배한 ‘수모’를 속 시원히 갚은 듯했다.

10월 29일 하시모토 우따로(橋本昌二)와 맞서 싸우게 되었다.


[뉴스화제]



·ㅇ“일본은 없다” 도요다 덴소배서 일본 연파

조훈현 9단의 라이벌로 한때 일본 바둑계의 1인자로 군림했던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은 최근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조훈현 9단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3월 19일 일본기원회관에서 열린 도요타 덴소배 32강전에서 일본바둑은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내건 양웅의 대결에서 조훈현 9단은 초반부터 특유의 속력행마를 앞세워 국면을 리드한 끝에 일본의 노장 고바야시 9단을 207수만에 흑 불계로 누르고 2회전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의 최대이변은 박지은이었다. 대회 개막전에서 이번 대회가 일본이 주최하는 세계 기전인 만큼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는 일본의 명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을 214수만에 백 불계로 꺾어 이번 대회 최대 파란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훈현 박지은에 이어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등도 16강에 올랐다.

결승까지 모두 단판승부로 진행되는 도요타 덴소배는 오는 9월 2회전이 다시 시작되며 여기서 준결승까지 치른 후 내년 1월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2/03/26 11:3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