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盧도] '盧風'에 노무현도 놀랐다

폭발적 지지세는 경선이 빚어낸 드라마, 본선에 영남 역풍 가능성도

대선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노무현 태풍’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마다 강조점이 달라 단정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노 상임고문의 잠재적 경쟁력이 폭발적으로 분출, 현실적 가능성으로 바뀐 것은 노 고문 개인의 상품성과 여기에 동반된 외부적 요소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에는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

3월 24일 강원 춘천에서 치러진 민주당 강원지역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 고문은 이인제 상임고문을 7표차로 따돌리고 승리함으로써 ‘노풍’의 위력이 실재함을 입증했다. 강원지역은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 고문의 전반적 우세가 점쳐지던 지역이라 노 고문 승리의 원인은 ‘바람의 효과’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무엇 때문에 ‘노풍’이 일었까. 이 고문은 이에 대해 중복된 여론조사 결과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공격하고 있고 음모가 개입된 언론의 ‘광기’가 표출된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노무현 바람의 실과 허를 짚어볼 필요성이 생긴다.


이인제 대 반 이인제 전략 성공

노 고문의 개인적 상품성과 관련, 민주당의 정체성에 가장 적합한 후보임을 일관되게 강조한 것이 효험을 봤다는 분석이 있다.

노 고문은 지나치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 경선 시작 훨씬 전부터 당내 경쟁자인 이 고문의 ‘3당 합당’‘경선 불복’의 전력을 집요하게 거론했다. 이인제 대 반 이인제의 각을 세우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는 일종의 네거티브 캠페인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노 고문측은 경선의 본질적 사안과 관련된 것이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장이 뒤바뀌어 이 고문이 ‘음모론’ 등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에 나서고 있고 노 고문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맞서 바람의 효과를 유지하려는 수성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노 고문이 또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언론탄압 시비가 불거졌을 때 가장 선명하게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조, 세무조사 등의 당위성을 옹호한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노 고문은 이때 ‘조폭 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얘기까지 하면서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노 고문이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을 폭발적 지지세의 세례를 받는 과정은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이 빚어낸 한편의 드라마다. 제주 경선(9일)에서 한화갑 고문이 1위를 함으로써 이 고문의 대세론이 꺾이고 울산(10일)에 이어 광주(16일)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노 고문이 1위를 기록, 호남의 지지를 얻으면서 판세를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3월2일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14.5%포인트 차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뒤지던 노 고문에게 경선 시작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그의 뚝심과 행운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제주ㆍ울산에서 누적 순위 1위로 올라선 노 고문은 3월12일 SBSㆍ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이 총재를 1.1%포인트 차로 눌러 본선판도 자체에 획기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결과는 ‘본선 경쟁력’과 ‘당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광주 선거인단이 노 고문을 1위로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됐다.

호남의 여론 주도층이 노 고문의 대안론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쏠림 현상은 될 사람을 밀자는 호남정서의 ‘묻지마 지지’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이를 전후해 노 고문의 경선성적과 여론조사 결과는 서로 상호작용에 의한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인제 대세론에 식상한 ‘반사이익’분석

특히 18일 발표된 KBS의 여론조사 결과는 노 고문이 이 고문의 텃밭인 대전(17일)경선에서 이 고문에게 큰 격차로 졌음에도 ‘노풍’의 기세가 상승세를 타고 있음을 보여줬다. 불과 2주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은 물론 학계나 평론가들 중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리라고 자신 있게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풍이 ‘거품’이라는 일부의 반론에 대해 노 고문측 유종필 공보특보는 “깨끗하고 새로운 정치인에 대한 폭 넓은 잠재적 지지기반이 현실화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개혁과 진보세력, 소외계층, 젊은 층 등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과 영호남, 수도권 등에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고른 지지가 결합돼 나타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일부 언론과의 회견에서 “거품도 있고 실체도 있다” 며 “‘이회창ㆍ이인제 대세론’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새 인물에 대한 욕구의 분출이지만, 반사이익의 측면도 있어 거품이 상당히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지난 97년 대선 때부터 고개를 든 ‘계층투표’가 올 대선부터 본격화할 것이기에 서민 대 특권층 대결로 가면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숙명여대 이남영 교수는 “2차례의 국회의원과 한차례의 장관직을 수행했을 뿐이고 대선 본선 경험도 없는 노 고문은 검증이 안된 측면이 있고 특히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개혁성과 지역주의 타파를 구현한 유일한 인물로서 3김 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는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광주 이변, 영남선 가변적 상황 올수도

노 고문에 대한 지역별 지지 현황을 살펴보면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고문이 상당히 앞서 가던 호남지역에서 광주의 이변을 시발로 노 고문이 오히려 역전의 계기를 잡은 것이 노 고문에게는 결정적 도움이 됐다.

이러한 바람이 지역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도권 등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노 고문의 출신지인 부산ㆍ경남을 포함 영남지역에서 노 고문에 대한 지지가 급상승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다소의 분석이 필요하다. 즉 당내 경선에서는 영남에서의 지지 상승이 분명히 노 고문에게 유리한 고지를 제공하지만 본선에서는 가변적인 부분이 있다.

즉 노 고문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는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계승자임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이를 쟁점으로 한 여야 공방이 격화하면 영남에서의 노 고문 지지가 지역 대결적 구도에서 철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노 고문은 바로 이럼 점을 우려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난 뒤 정계개편을 통해 민주당에서 DJ의 색깔을 빼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28 15:17


고태성 정치부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