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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논쟁] 찬성/ "박근혜를 찍어야 진보다"

[박근혜 논쟁] 찬성/ "박근혜를 찍어야 진보다"

“박근혜를 찍어야 진보다. 나는 박근혜를 찍겠다”라는 표지 제목의 ‘말’지 3월호 기사가 나간 후 삶이 조금 더 고달파졌다.

“진짜 니가 그런 말을 했어?”라는 경악에 찬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 고달픔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기사를 읽어보라”는 토를 달았다가 “이제 와서 발을 빼자는 거냐”, “여성 권익 개선을 위해 왜 조금 더 ‘또라이’가 되어주지 않는 거냐”는 원망을 듣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성의 입장에서 박근혜를 사유하자”는 자신의 제언이 정치적 제스처로 몇 단계 비약해 받아들일 경우 “나는 박근혜를 찍겠다”라는 주장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96위의 여성 정치참여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여성 후보를 향한 여성표 결집을 대안의 하나로 내세운다면, 박근혜 의원도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진보주의자는 내게 “어떻게 페미니즘이 보수와 같이 갈 수 있는가”고 묻지만 “한국의 주류 진보(아니 내용적으로는 중도 내지 온건보수)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들과 100% 이해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으로 맞선다 할 때, “박근혜를 찍어야 진보다”라는 말도 순전히 여성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부분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개인적으로 그런 선정적인 카피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사회가 나를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려 한다면, 그 속에서 끝장을 보아야 하는 것도 이 시대에 태어난 나의 사회적 용도일 것이다.

‘여성 정치 참여의 후진성을 어떻게 여성 스스로의 참정권 행사로 극복할 것인가’하는 문제 제기의 본령과는 관계없이 각계의 반응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정적으로 감정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무관심을 자성하고, 현 정치판에서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의 의미는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심한 정치적 손해를 보는 그들에게 여성들만이라도 일정한 프리미엄을 주어야 한다는, 그러한 정치 훈련을 통해 여성 자신의 독자적인 투표권 행사가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내 제언은 “치마만 두르면 독재자의 딸이라도 상관없는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면 무조건 찍어야 하는가”,“그런 논리는 경상도민은 무조건 경상도 출신을, 전라도민은 무조건 전라도 출신을 찍어야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극단의 말 화살로 보답을 받고 있다.

나는 이 질문들에 앞서 먼저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이 땅에서는 왜 치마만 두르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면, 무조건 찍히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큰가”, “이 땅에서는 경상도민은 무조건 경상도당을, 전라도민은 무조건 전라도당을, 아니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충청도민까지 무조건 충청도 찍자고 나서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당찮은 지역정서마저 업지 못하는 여성들은 정계 진출을 위한 자산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근 현대사 수 십년 동안 특정지역이 정치권력에서 소외됨으로써 그토록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이 나라가, 인구의 절반인 특정 성의 수 천 년에 걸친 정치적 소외에 대해서 왜 그렇게 조용하기만 한가를 물었다.

여성의원의 100%가 여성주의자라고 가정해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정치적 이해가 불과 5.9%밖에 반영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여성들만이라도 성난 눈으로 돌아보자고 한 것이다.

나는 내 수입의 절반을, 남자들 같으면 전혀 내지 않아도 좋을 가사노동과 육아비용으로 얄 짤 없이 현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내가 내는 세금만이라도, 두 아이를 가진 일하는 여성인 나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지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서 기존의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내 정치적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더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며, 유권자 여성들에게 우리들의 대변인을 더 많이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보자고 시끄럽게 외쳐댈 것이다.

민주당 경선 ‘광주의 파란’을 지역정서의 감격스러운 극복 사례로 상 찬하는 언론보도를 보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어떤 지역에서건 남성집단에 의해서 ‘성차별 정서의 감격스러운 극복 사례’가 실현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여성의 눈으로 정치 현실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 육안으로는 절대로 발견되지 않는 여성의 자리를 만들어낼 세력은 여성 스스로 밖에 없다고 믿는다.

김정란 씨는 나를 순진하다고 했지만, 그 ‘순진’이 ‘정치적 나이브함’을 뜻하는 거라면, 나는 이 나라 여성 대부분이 ‘순진’의 감옥에 무기수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답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진’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정치 네트워크의 100%를 남성들이 장악한 나라에서, 현실 정치논리를 100% 위배하는 여성들의 정치권력 획득 주장이 ‘순진’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최보은(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입력시간 2002/03/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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