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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40대 경영기수가 뜬다

재계, 40대 경영기수가 뜬다

전면에 나선 2, 3세대 경영진…황제경영 탈피

“한국의 재벌은 경쟁력이 없는 경제모델이기 때문에 앞으로 10~15년 내 사라질 것 입니다. ” (최태원 SK회장 ‘재벌소멸론’ 중에서)

재계가 젊어지고 있다. 주요 그룹의 2,3세대 오너들이 최근 정기인사와 주총을 통해 잇따라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중 ‘40대 경영 기수’의 등장은 한층 눈부시다. 30대에 축적한 패기와 50대를 향한 경륜의 조화를 앞세운 40대 젊은 오너들이 재계의 새로운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철저한 보호막에 싸여 노출이 극히 제한적이던 이들 젊은 오너가 경영전면에 부상하면서 과거와는 달리 경영이념과 가치의식, 사생활 등에 이르기까지 이젠 한 꺼풀 씩 벗겨져 그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재벌의 경영세습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지만 이들이 대내외적으로 경영능력을 검증 받게 되는 향후 진행형 상황을 일단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분위기다.

이들 젊은 오너의 특징은 과연 무엇이며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창업세대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황제경영’을 펼친 데 반해 이들 젊은 경영인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경영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선진화 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회장단 23명중 22명이 2, 3세대

전국경영인연합회 회장단 23명 중 창업 1세대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 1명뿐이다. 이미 대부분 2, 3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세대 오너 회장은 구본무 LG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47) 등이며 이웅렬 코오롱 회장(46)은 조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3세대로 분류된다.

특히 이 코오롱 회장은 김 윤(49) 삼양사 부회장과 류 진(44) 풍산 회장, 롯데 신 부회장 등과 더불어 전경련 회장단에서 40대 부회장그룹을 이루고 있다.

롯데가 지난 주 ‘회장 신격호 맨’으로 꼽혀온 장성원 롯데호텔 사장과 김부곤 롯데칠성 부사장 등 ‘1세대 CEO 시대’를 마감하는 임원 80명에 대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재계에선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 부회장을 경영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결과적으로 2세대 경영 체제를 앞당기는 조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년간 부회장 직을 고수해왔던 이재현(42) 제일제당 회장도 2월 말 삼성가(家)의 장손으로서 가장 먼저 명실상부한 그룹 대표의 자리에 올라섰다. 3형제 중 막내인 조동길(47) 한솔 회장은 올해 초 모친 이인희 고문으로부터 ‘세자 간택’을 통해 그룹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받았다.

또 조 회장의 형인 조동만(49) 회장도 한솔로부터 계열분리 된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을 맡았다. 이밖에도 SK㈜ 최태원(42) 회장과 이수그룹 김상범(41) 회장 등도 40대 오너 경영인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또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0) ㈜두산 상사BG 사장은 지난해 10월 부사장에서 승진, 처음으로 4세대 CEO시대를 열었다.

30대의 현대 가문 3세들도 후계 기반을 다지고 있다. 최근 전무로 승진한 현대 기아차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의선(32)씨는 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로,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장남 지선(31)씨는 부사장으로 각각 승진해 경영 승계를 위한 입지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젊음, 패기에 미래를 보는 눈까지

지기이작(知機而作) 변화의 흐름을 미리 알고 행동에 옮긴다

2, 3세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것, 변화에 관심이 많다.

특히 최근 내리막길을 걷는 벤처 업계의 동향과는 상관없이 e비즈니스는 이들에겐 뜨거운 관심 분야다. 최태원 SK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전무, 이재용 삼성 상무보 등 대부분 재벌 2, 3세들은 e비즈니스 사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등 ‘결국 벤처’라는 확신과 애정이 남다르다.

이들 경영진과 벤처 업계의 젊은 CEO모임인 ‘V소사이어티’는 변화를 향한 이들의 식지않는 관심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

최태원 SK 회장과 이웅렬 코오롱 회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41), 김준 경방 전무(40ㆍ김각중 전경련 회장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등이 참여하는 이 모임은 이미 2년 전부터 대기업-벤처 기업 CEO의 인적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통해 대기업 위기의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선대 경영자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국내 최대의 잠재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의 결집인 셈이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물론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최근 SK와 롯데, 코오롱 등이 주축이 돼 인터넷 뱅킹을 주 업무로 하는 은행 설립을 공동 추진 키로 한 것도 V소사이어티 모임이 계기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선대 회장이 이룬 업적에 대한 집착보다는 새로운 경제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통해 평가 받으려는 젊음과 강한 패기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동수상응(動須相應) 동류의식을 통해 상대방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인다

재벌2,3세들은 동류의식은 특정 어느 그룹 보다 강하다.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낸 이들은 한동안 성장기 시절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어도 비슷비슷한 가정환경과 성장배경을 통해 쉽게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비공식적인 만남 등을 통해 서로의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탄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V소사이어티의 경우 현재 40여명의 모임 회원들은 철저히 추가 회원의 가입을 위해선 만장일치 선발방식을 통해 인적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이뤄지는 목요 포럼과 특정주제를 다루는 서브 포럼, 국내외 내로라 하는 외부전문가를 초청하는 전문가 컨퍼런스 등에 참여 그들의 공통 관심사와 다양한 정보를 협의ㆍ교환하고 있다.

이 같은 밀접한 인적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은밀한 제휴 계획과 비즈니스모델 모색은 물론 공동사업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동수상응의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

입계의완(入界宜緩) 다른 영역에 들어갈 때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젊은 패기의 2,3세 경영인들로부터 과감한 경영 스타일만을 떠올린다면 이는 이들의 반(半)만 아는 셈이다. 철저하게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입계의완의 경영 스타일이 최근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다.

지난 3,4년간 과감한 투자와 사업전개를 펼치던 2,3세 경영인들도 최근에는 선대 들이 이룩한 전통산업 핵심역량 집중에 오히려 열정을 쏟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재현 제일제당 회장은 4년 전 초고속 인터넷 사업 확대를 위해 만든 드림라인과 드림X를 지난해 말 하나로 통신에 매각하는 등 내실강화를 통해 제당 고유의 식품과 식품서비스 사업집중에 나서고 있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선택과 집중’을 경영의 핵심으로 구조조정에 전념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각종 회계수치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데도 여전히 신규사업 진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회장은 이수그룹의 기존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전자소재 부품 토목건설 유통 등의 영역에서 확실한 사업기반을 구축하는 경영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을 비롯해 품질개선과 원가절감을 위한 프로젝트 추진이 그의 최대 관심사다. 김 윤 삼양사 부회장도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정도로 조심성 있는 경영을 펼치고 있다.

한 기업의 회장 비서실 관계자는 “40대 주축의 2,3세대 경영인들은 새로운 경영 기법을 도입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데도 관심이 높지만 선 대가 이룩한 수성(守城)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며 “ 특히 ‘검증 받지 못한 2,3세대 경영인은 설 자리가 없다’는 강박 관념 속에서 시장에서 스스로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오히려 아름다울 정도”라고 말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3/2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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