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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가회동은 '한국판 베버리힐즈?'

[르포] 가회동은 '한국판 베버리힐즈?'

정·재계 실세들이 모여 사는 호화판 빌리지, 이사 문의 유명인사 급증

가회동이 뜨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경남 빌라 파문’을 계기로 가회동 일대가 주목 받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정ㆍ재계 실력자를 비롯해 언론계 등 유명 인사들이 살고 있다. 이회창 총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등이 한 집 건너 둥지를 틀고 있다. 가회동을 두고 일각에서 '한국판 베버리 힐즈'라고 칭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가회동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우는 아이도 뚝 그칠' 정도의 정ㆍ재계 실력가들이 즐비했다.

아침마다 수십 대의 장ㆍ차관 차량이 이곳을 빠져나갔다. 당시 가회동 인근에서 ‘서울의 해는 가회동에서 떴다가 가회동에서 진다’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했을 정도.

그러나 막강한 세는 70년대 중반부터 점차 시들해졌다. 경기고등학교가 가회동에서 현재의 강남에 둥지를 튼 데 이어 사립 명문인 인근의 휘문 중ㆍ고등학교 마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탈 가회동'이 가속화된 것이다. 당시 풍수연구가들 사이에서는 "가회동의 운대가 다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가회동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물론 가회동 ‘파워 그룹’의 핵심은 이 총재가 거주하는 경남 빌라를 중심으로 형성된 막강한 인맥 구조 때문이다. 경남 빌라에는 현재 이회창 총재 내외와 큰아들 정연 씨 내외, 사위 최명석 변호사 내외가 세 채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큰아들 정연 씨는 미국 하와이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자주 들르지는 못한다. 사위 최명석씨도 최근 이사 왔다.


이총재 옆집은 이종찬, 앞집은 김승연 저택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총재 일가뿐 아니라 굵직한 재계 인사들이 이곳에 상당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101호 하진호 동원증권 부회장, 201호 경남기업 김학용 전 대표를 비롯해 상당수 인사가 이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계 인사 중에도 동아일보 김재호 전무와 김재열 씨가 각각 203호와 401호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밖에도 장성급 군인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빌라는 한때 삼성 및 삼호와 함께 재계 서열 3위에 올랐던 대한유화 이정림 회장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 회장이 타계하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996년 경남기업이 부지를 매입해 현재의 빌라를 건축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관 옆에 위치한 이 빌라는 고급 주택가로 소문난 가회동 일대에서도 시설과 경치가 손꼽힌다. 입구에 서면 우선 대리석 담에 둘러싸인 널찍한 현관과 주차장이 눈에 띤다. 빌라 뒤편으로는 대나무와 돌계단으로 꾸며진 정원이 마련돼 있다.

주변에 사무실이 거의 없어 밤이 되면 이곳은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 빌라 한 채의 가격은 못해도 15억 원 정도를 호가한다. 전세가만 10억 원이 넘는다는 게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귀띔이다.

이 총재의 빌라를 마주보고 서있는 곳은 한화 김승연 회장의 저택이다. 하얀 색 벽에 전통미를 가미한 노란색 정문으로 치장한 이곳은 가회동의 터주대감으로 통한다. 김 회장이 십 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저택에서 도로를 따라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왼쪽에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저택이 눈에 띤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나오는 이 곳은 높다란 담 사이로 보이는 조경이 일품이다.

경남 빌라의 바로 옆 동에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살고 있다. 이씨는 1998년 분양 때부터 이곳에서 거주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사를 하고 명의만 남아있는 상태라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근 50억 원에 매물로 내놓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회동 저택도 인근에 위치해 있다.

현대그룹 계동 사옥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 정 명예회장이 청운동 집을 정몽구 회장에게 물려주고 이사했던 곳이다. 화신백화점 창업주인 박흥식씨가 살았던 곳으로 대지는 600여 평 정도.

당시 정 명예회장은 박씨로부터 55억 원에 이 집을 매입한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러나 그룹 경영권을 놓고 MK와 MH가 마찰을 빗는 통에 집을 비웠다가 결국 청운동 저택에서 타계했다. 때문에 현재는 1년 이상 주인 없이 비워둔 상태. 관리인 2명이 돌아가면서 저택 내ㆍ외부를 관리하고 있다.


풍수지리상 길지로 꼽히는 동네

이들이 가회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 주민 김모(56)씨는 1994년부터 3차에 걸쳐 도로확장 공사를 한 것을 그 이유로 꼽는다. 4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의 삼청동이나 원서동에 비해 교통이 상당히 편리해진 것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교통이나 주변입지가 좋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와룡무문’이란 이름의 한 풍수 지리가는 "가회동은 예로부터 좌청룡(북악 스카이웨이), 우백호(인왕산), 남주작(남산), 북현무(북악산)가 제대로 갖춰진 길지로 통했다"며 "이 같은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 호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회동은 명사들의 새로운 둥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최근 이사를 문의하는 사람들로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몹시 분주해졌다.

15년째 이곳에서 영업을 한다는 T부동산 대표 서성석(62) 씨는 실제로 “최근 들어 유명 인사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귀띔한다. 서 씨에 따르면 이들은 직접 나타나거나 실명을 거명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이 측근을 통해 문의를 해온다는 것이다.

이중에는 누구나 알만한 인사들도 상당수 끼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땅은 초기에 사놓은 사람들이 내놓지를 않아 매물이 없는 실정이다.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

입력시간 2002/03/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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