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중동 분쟁에 휘말리는 부시

'개입'으로 선회한 중동정책, 이·팔 평화 이끌 묘안 찾기 고심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불화를 진화하려 하고 있으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참모들 조차도 일치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자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179개국 대표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9ㆍ11 테러 발발 6개월째 된 이날 부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에게 “문명 국가들의 강력한 유대를 보여주어 감사하다”는 말했다. 부시는 “우리는 이기고 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계속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채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아 부시가 천명한 테러와의 전쟁은 해묵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비린내 나는 전면전의 심연에 말려들게 됐다. 40대의 탱크와 100명의 무장 군인이 라말라시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으로 진격하는 모습과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10대 청년의 눈을 가리고 끌고 가는 장면 등이 TV를 통해 전세계와 백악관에 전해졌다.

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첩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처형해서 시신을 매달거나, 아이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여인들의 모습도 함께 전했다.

백악관 남쪽 정원에서 열린 파티가 끝날 무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에서 죽은 숫자는 27명을 헤아렸다. 중동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이날 부시 대통령의 파티를 망쳤다.

18개월간의 대학살이 지속되면서 성스러운 땅의 골목에 핏자국이 얼룩진지 오래 되었으나 20여년 만에 최악으로 기록될 만 한 지난 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을 보면서 부시는 더 이상 사태를 수수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양측의 화해를 위해 미국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미국 외교부 중동에 집중

부시 대통령은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달리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중동문제에 개입하는 정책을 피해왔다. 그러나 사망자의 숫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부시 대통령도 개입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현재의 중동 문제는 미국 정부가 선포한 제 2단계 테러와의 전쟁, 특히 이라크 공격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부시가 현재 잔뜩 고조되어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기름을 부어 아랍권을 자극한다면,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부시 정부의 곤란한 입장을 아마도 딕 체니 부통령만큼 잘 아는 측근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 특사로 지난 주 11개국의 아랍국들을 순회하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의 외교력이 지금처럼 강한 도전을 받은 적도 없었다. 런던에서 암만을 거쳐 카이로까지 체니는 가는 곳마다 성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목소리는 미국이 중동 갈등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게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강제로라도 양측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고 와 휴전 비슷한 형태의 합의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미국으로부터 매년 28억 달러의 원조를 받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체니 부통령에게 이스라엘인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을 평소에 못살게 구는지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체니 부통령은 방문하는 아랍 국가들 마다 근본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은 아랍 국가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이 지난 주 근 10년 래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이스라엘을 비난한 것도 이 같은 충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랍권 지지 얻기위해 이스라엘 비판

미국은 샤론 총리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아랍 지도자들에게 적대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사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의 표현을 빌면 “이스라엘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은 샤론이 점령지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지 않을 경우 지니의 특명을 백지화하겠다고 위협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수요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공세가 현재 사경을 헤매는 중동의 평화를 되찾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샤론을 비난했다.

매일 유혈 사태가 이어지자 중동 사태의 피해자들은 우선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때 중동에서 미군을 통솔하다 퇴역한 전 4성 장군인 지니는 지난 목요일 예루살렘에 도착, 이른바 ‘테닛 프로그램’으로 명명된 문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서명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테닛’프로그램 이란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을 주도한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테닛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테닛 프로그램’은 팔레스타인 감옥과 공공시설에 24시간 CIA 모니터를 설치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상호 감독용 기술지원을 함으로써 휴전을 유도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지니 특사가 바로 그 내용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최근의 가장 요란한 평화 제안, 즉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가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지구에서 전면 철수하는 것을 대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도 고려해보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아랍 전쟁의 최전방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전사들은 쉽사리 총을 놓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자 지구에서는 원격조정장치를 부착한 폭탄이 이스라엘 탱크를 폭파, 세 명의 군인이 숨졌다.

또 지난 주에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가 지니 특사의 도착에 때 맞춘 세 건의 폭발 기도를 예방했다.

리모닌 부근의 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폭발물을 싣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한대를 폭파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공격은 대규모로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짧았고, 샤론 총리가 요르단강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철수시켰다. 테러리스트 지도자들이 잡히거나 처형되지도 않았다.


미국 정부내 이견 조율이 관건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막기위해 미국의 힘을 최대한 동원할지 여부는 정부내 이견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있다.

파월이 이끄는 중도파는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측과 협상을 이끌어 내도록 주장하는 반면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은 미국이 일련의 평화협상 과정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3/2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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