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마음 다스리기

골프 시즌이 성큼 다가 왔다. 산과 들에는 듬성듬성 연두색 새싹과 화사한 꽃 몽우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봄은 골퍼들에겐 설레임의 계절이다. 푸른 초원에서 겨울 내내 움츠리고 있던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 버릴 생각을 하면 어깨가 들썩거린다.

봄이 되면 국내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입구 이니셜을 예쁜 꽃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 선수들에게 이런 전경이 잘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몇몇 골프장의 경우 기억에 남는 꽃 장식들이 있다.

골드CC의 들어가는 입구의 코스모스, 남서울CC의 6번홀의 흐드러진 개나리, 올림픽CC의 입구에 길게 늘어선 벗꽃 등이 유명하다.

특히 골드CC의 코스모스는 들어가는 입구가 길어선지 유달리 아름다워 보인다. 필드에서 게임에만 열중하지 말고 한번쯤 이런 자연의 미를 느껴보는 여유를 갖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봄을 만끽하는 설레임의 감정도 중요하지만 많은 아마추어들은 한해의 첫 필드 나들이를 한다는 의욕이 앞서 라운딩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겨우내 긴장됐던 심신을 가벼운 운동으로 충분히 푼 뒤 라운드에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경우 그 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자칫 무리하게 쓰다가 인대가 늘어나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또 아직 새벽에는 날씨가 차가워 근육 부상의 위험이 높다. 철저한 사전 준비운동을 간과해서 절대 안 된다. 평소 보다 일찍 도착해 아침 식사도 여유 있게 하고 몸도 푸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일부 아마추어 골퍼들 중에는 허겁지겁 골프장에 와서 아침식사도 못하고 골프공도 놓고 와 빌려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그렇듯 골프도 부지런한 사람이 더 즐겁게, 더 잘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사실 좋은 스윙 연습도 중요하지만 골프 스코어는 본인의 작은 생활 습관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인 골프 시즌이 시작되면 골퍼들은 또다시 설레임, 긴장, 짜증, 환멸, 기쁨, 후회, 배신감의 감정들과 한바탕 격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골프는 하는 즐거움과 함께 생각 만큼 안 되는 것에 대한 실망과 두려움을 누구나 느낀다. 골퍼라면 ‘다시는 골프를 안 하겠다’며 클럽까지 부러뜨리고 차 트렁크에 집어 던져 놓은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은 그 때 기억을 후회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골프장에 나선다. 만약 그 골프 클럽이 사람이었다면 다신 안 봤을 텐데, 자신의 탓을 무고한 클럽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죽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 명색이 프로인 본인도 수없이 그런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어느 대회 때 볼이 안 맞아 엄청나게 화게 난 적이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 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보여 당장 클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경기를 못하니까 필드를 걸으면서 마다 옆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다 부러뜨리고 간 적이 있다.(그 때 그 골프장 사장님한테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끝나고 보니 손 이 다 터져 있었다.

명색이 프로 선수가 갤러리들이 있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골프채를 던질 수도 없고 그냥 그 화가 골프장으로 간 것 같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골프 중계나 비디오를 보면서 선수들이 게임이 안 풀리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속이 탈까? 저 속은 다 타서 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들은 ‘역시 프로야, 표정도 변하지 않는데’라고 말하지만 사실 프로의 속은 누구도 모른다. 아마추어들보다 몇 배는 더 속이 상한다. 프로들은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해도 강렬했던 눈빛이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골프를 사랑하고 2002년 시즌을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골프 중계나 비디오를 볼 때 내가 TV속의 주인공이 되어 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감정을 이해한다면 감정 조절과 플레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 플레이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마추어들도 내기 골프를 했을 때 상대방에게 “나이스 파”라는 격려 말 한마디가 진정한 골프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 시즌이 시작된다. 점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골프장 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과 아름다운 꽃들, 그늘 집에 있는 맛있는 도시락, 운동 후 시원한 맥주 등을 생각하며 골프 자체를 즐기라고 권유하고 싶다.

여유를 좀 가지시면 골프를 하면 훨씬 즐거울 뿐 아니라, 골프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골프가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도 하지만 골프는 정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운동인 것 같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3/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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