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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겨울연가' 사랑의 진실은…

[김동식의 문화읽기] '겨울연가' 사랑의 진실은…

봄이 왔다. 그리고 드라마 ‘겨울연가’가 막을 내렸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목도리와 바람머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여자 배우의 혀 짧은 소리가 다시금 패러디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며, 작품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려서 중간에 몇 회분을 빼먹기는 했지만, “배용준 너무 멋있지 않니?”로 시작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줄거리의 흐름은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마지막 회의 압권은 세 마디의 짧은 대사였다.

“누구세요?” “유진이니?” “준상이니?” 드라마 속의 연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물음을 통해서 사랑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둘러싸여 영원한 추억의 공간 속에 자리잡았다.

영화 ‘봄날은 간다’가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인 라면 먹는 일에다 사랑을 비유했고, ‘생활의 발견’이 구애(求愛)라는 퍼포먼스와 섹스라는 일상이 빚어내는 이중주(二重奏)를 보여주었다면,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연가」는 ‘고유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에 호소하고 있다.

낭만적이든 냉소적이든 간에 사랑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동시에 그만큼 진부한 것도 없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그 동안 셀 수 없이 반복되었다는 것이고, 지겨울 정도로 반복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대한 개개인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사랑을 다룬 영화와 이야기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면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설정으로는 연애의 삼각형(일명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도덕적 금기의 위반,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비극적인 분위기 등을 거론할 수 있다.

‘겨울 연가’는 평면적인 삼각관계가 아니라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삼각관계를 이중으로 겹쳐 놓음으로써 이야기의 폭을 확보했고, 그 가운데에다가 출생의 비밀과 위반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아이템을 가져 다 놓음으로써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복잡한 구성 때문에 드라마 중간에 스스로 꼬이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겨울연가’의 정서적인 호소력은 운명과도 같은 순정성으로부터 연원한다. 남자 주인공인 준상에게 부여된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유진을 또다시 처음처럼 사랑하게 될 것인가 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죽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대답은 모두 ‘예스’이다. 기억을 모두 상실했고 그래서 예전의 연인마저 타인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마치 처음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또 다른 사고가 찾아오자 그는 기억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수술을 포기하고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죽어가고자 한다. 자신의 생명을 내주고서라도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려는 의지야말로 수많은 여성시청자를 감동시켰던 순정성의 본질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준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애매하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인 병명은 없고, 다만 수술하면 기억을 잃게 되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게 되는 불치병으로 제시될 따름이다. 곧 죽을 목숨이고 그래서 시력까지 상실한 준상에게서 병자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바람머리는 어느 때보다 더 멋있었던 기억이다. 이런 양상은 리얼리티(사실성)의 결핍이라기보다는 드라마의 관습과 관련된 것이다.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가 걸렸던 백혈병은 별다른 분장 없이도 누드 메이크업과 약간의 다이어트로 표현이 가능했다. 깨끗한 외모를 유지하면서 아름답게 죽어갈 수 있는 질병이어야 한다는 것은 낭만적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의 숨겨진 규칙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낭만적인 사랑을 다룬 드라마를 비판의 대상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교회나 사찰에 들러 종교적인 심성을 가다듬는 것처럼,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사랑이라는 종교를 다시금 추념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처럼, 사랑은 현대인의 개인적인 종교이다. 종교의 교리가 현실에는 충만하지 않은 것처럼 드라마 속의 사랑을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의 원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입력시간 2002/04/0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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