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그들만의 잔치'…

지구 온난화로 유난히 일찍 찾아온 올해의 봄은 4년 전 대선을 앞두고 가뭄과 기상이변을 몰고 온 ‘엘리뇨’의 재발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아기예수’ 또는 ‘사내아기’란 의미의 ‘엘리뇨’는 태평양 적도 인근 해역에서 원인 모를 이유로 수온이 상승해 지구 전역에 이상 기후를 몰고 온다. 봄은 이렇게 ‘사내아기(엘리뇨)’의 울음 소리로부터 찾아왔다.

증시에서도 객장의 ‘아기 울음소리’는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로 통한다. 주가가 상투를 치면 주식을 서둘러 매매하려는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객장을 찾는 투자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때면 증시는 투기 장으로 돌변한다.

우리 선거판도 이상과열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나기는 증시와 다를 바 없다.

‘음모론’과 ‘색깔론’을 앞세운 상호비방전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후보들이 손을 맞잡고 정책대결과 페어플레이를 외치지만 우열이 가시화되면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비방전이 난무한다.

‘음모론’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현상을 뒤엎는 그럴듯하고 합리화된 논리로 포장된 채 진의를 감추고 있다.

‘색깔론’은 후보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공방보다는 인신공격으로 앞 다퉈 서로를 붉은 색으로 도배질 한다. 패배자는 탈당이란 카드를 내밀고 승자와 대립한다. 이때면 유권자들은 서서히 등을 돌리고 선거전은 ‘그들만의 잔치’로 변질되는 것이 일상적 공식처럼 되풀이된다.

여의도 증권가는 요즘 2년 만에 종합주가지수 900선의 봄 향기에 듬뿍 취해 1000포인트 돌파를 앞두고 잠시 진한 춘곤증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의 상향조정 및 기업실적과 각종 경기지표의 호조에 힘입어 전인미답의 주가지수를 불러올 것이라는 장미빛 기대감에 젖어 여기저기 즐거운 비명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와 강남의 대표급 주점들엔 1주 전 예약이 모두 끝날 만큼 밤 문화의 흥청거림은 이미 주가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봄 기운을 느끼기에는 미흡하다. 가계대출 45조 원 시대에 접어든 우리네 가구 당 부채 (잔액기준)는 2,310만원으로 신용 불량자만도 246만2,000명에 달하고 있다. 2년 전 IT거품 붕괴 이후 다시 찾아온 여의도의 봄을 만끽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3 14:09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