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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카페(101)] 봄에 느끼는 우울증

[사이언스 카페(101)] 봄에 느끼는 우울증

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너 나 할 것 없이, "만물이 회생하는 계절이 아니냐"는 식으로 답한다. 겨우내 숨죽였던 나무에 연초록의 새싹이 돋아나고 화려한 꽃망울이 천지를 밝히는 계절, 따스한 햇살, 덩달아 변하는 화사한 옷차림들…역시 봄은 생명과 생동의 계절인 듯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은 지극히 충동적이거나, 지극히 우울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필자 본인도 청춘기 여러 해 동안 봄마다 움츠러드는 주기를 경험하곤 했었다. 남들은 살아나는 봄에 나는 왜 움츠러드는 것인지... 그래서 봄은 내게 활기를 주기보다는 주눅을 들게 했다. 나의 어두운 사색과 봄의 밝은 햇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상으로만 여기고 살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과학적 이유가 스며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봄이 되면 온 자연이 변하고 또 어김없이 사람의 신체에도 변화가 온다. 일조량이 많아지면서 뇌의 감정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의 생산이 줄고, 이것이 감성적인 여성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봄은 여성의 계절이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충동적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좋게 말하면 이것조차도 살아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이 정도는 귀여운 현상에 가깝다. 문제는 자살이다. 봄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소위 ‘계절형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에서 시작해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이 되면 서서히 약해지다가 여름이면 완전히 회복되는 주기적 우울증이다. 사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자살할 기운이나 의욕조차 없다. 그런데 회복기에 접어들면, 그 기쁨보다 우울증을 겪을 때의 비참한 삶으로 혹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참 묘한 인간의 심리다.

자칫 우울증을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통계상 자살한 사람의 70%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며, 우울증 환자의 자살 시도율은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4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인간감정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지만, 우울증만큼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우울증은 남성은 평균 8%, 여성은 17%가 평생 한번은 경험하는 흔한 정신 질환이다. 질환이라고 정의할 경우는 우울한 기분, 비관적인 생각, 불면증, 식욕감퇴 등의 현상이 수주에서 6개월 정도 지속적으로 나타날 경우에 한한다.

헤밍웨이의 가계에서처럼 자살은 유전적인 요인이 있듯이, 과학자들은 우울증도 유전적인 요인이 분명히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물론 부가적인 환경적 스트레스나 사회적 심리적 요인도 우울증 발병에 관련된다.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 전달물질의 과소, 과다, 그리고 성장호르몬의 불균형 등이 우울증의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월경 주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같다. 갱년기 여성의 성호르몬 변화도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몸이 몹시 피로하고 모든 것이 무가치해 보이며 무기력한 절망감에 빠지게 하는 우울증, 내가 행복하면 누군가 불행할 수 있듯이, 생동하는 봄일수록 우리 주면 어딘가에 우울함에 고개 숙이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할 일이다.

우울증이 생물학적인 요인을 가졌듯이 약물치료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질환이므로, 남의 우울증을 가볍게 보지 말고 도와줄 필요가 있다. 우선 우울증 환자는 도움을 스스로 청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주변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본심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해와 인내, 격려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혹 자살에 대해 말하면 결코 묵살하지 말고 한때 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취미, 운동, 종교나 문화적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해보는 것이 좋다..

봄이 진정한 생명의 계절이라면, 찬란한 봄 햇살 뒤에 움츠린 우울한 이웃을 살피는 아량으로 그 즐거움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4/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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