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뒤집힌다고?] 다 비운 昌 "이젠 뜰려나?"

이회창 총재 대선 레이스 본격화

한달 간 몰아친 제1호 태풍 ‘내홍(內訌)’을 가까스로 벗어난 이회창 선장과 한나라 호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노풍(盧風)’은 눈 앞에 또 하나의 거대한 태풍으로 발달해 있고, 대선 해역에는 정계개편, 지방선거, 폭로전 등 각종 암초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4월 3일 대통령 선거 후보경선 출마를 선언,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당무는 박관용 총재권한대행과 5월 전당대회 이후 구성될 최고위원회의에 넘기고 오직 대선만을 위해 8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린” 결단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예상 밖에 냉담하고, 지지율은 바닥에서 좀체 회복될 기미가 없다. 민주당 노무현 고문과의 거북한 대결구도도 가시화되고 있다. 잇단 악재 속에 출정식을 치르는 것이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대세론을 옛 노래로 흘러보낸 이 총재의 승부수는 무엇일까. 이 총재의 대선 전략은 우선 당 내분의 완전 진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비주류 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했다는 점에서 선상 반란 분위기 자체 일단 잠재운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홍사덕 의원에 이어 김덕룡 의원도 당 잔류 쪽으로 가닥을 잡고 대선후보 경선과 최고위원경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고, 이부영 의원이 4월4일께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한 뒤 김덕룡 김홍신 의원 등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할 예정이어서 당내 비주류 달래기는 조만간 매듭이 지어질 전망이다.


비주류 반발 일단 무마, 盧 겨냥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의원 복당 추진이다. 물론 실현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적어 이 총재도 적지않은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한 측근은 전했다. 한번 찔러보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관용 총재권한대행은 “박 의원이 원하면 대선후보 등록일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잘 되면 ‘나 홀로 경선’부담을 덜 수 있고, ‘협량’에서 ‘광폭’으로 이미지 전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세론 붕괴 이후 만연한 당내 불안심리 추스리기도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이 총재는 3월 30일 당무회의에서 이를 절절하게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당무위원이 대선후보와 대표최고위원 겸임 금지 조항에 반기를 든 것이다. 중진들까지 정권교체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 부분 흔들린다는 이야기다.

이 총재측은 6월 지방선거를 대반전의 기회로 삼을 복안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불안, 불만, 분열’의 증폭 고리를 끊고 대세론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재오 원내총무는 “16개 광역시ㆍ군 선거에서 최소한 10곳 승리를 목표로 이 총재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 대선전략의 최종 귀착점은 노 고문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 특보는 “이 총재가 이른 시일 내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면 내내 끌려갈 우려가 크다”며 노 고문에 대한 한나라당의 십자포화를 예고했다. ‘거품론’에 안주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이 역력한 반응이다.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벌써 노 고문 ‘흠집내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운을 띄운 색깔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이어 ‘노무현 신당=DJ 신당=호남당’이란 논리로 정계개편론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이 총재도 최근 “말 바꾸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공세를 시작했고, 남경필 대변인은 연일 “정계개편의 궁극적 목표는 ‘반창(反昌) 연합’의 ‘DJ 신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노 고문을 겨냥하고 있다.


‘민생투어’ 부활 등 국민 속으로

장기적으로는 노 고문과의 진검 승부를 대비해, 차별화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포인트는 ‘안정성’ 과 ‘서민성’ , ‘전문성’의 강조.

이 총재는 대선 후보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반듯한 나라, 활기찬 경제, 편안한 사회’를 거듭 내세운다. ‘안정된 지도력’ 이라는 이미지로 ‘변화와 개혁’ 의 노 고문과 선연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귀족 대 서민’ 구도 방지를 위해 국민 속으로 뛰어드는 선거운동을 본격화 한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나는 ‘민생 투어’도 부활시킨다. 예전 ‘지하철 투어’와 같은 화제성 이벤트도 기대하는 모습이다.

김만제 의원은 “이 총재는 이제 당에서 떠나 시장으로 가야 한다. 생각 대신 발로 뛰어야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리스닝 투어’, 40대 전문가 영입 등으로 ‘구호’에 맞선 ‘전문성’을 드러낸다는 복안이다. 당 관계자는 “보수와 개혁 구도로 전략을 짜 밀어붙이면 정계개편 등 격변에도 보수층 유권자들을 결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대선 때 병역비리 파동이나 3월 ‘호화빌라’의 악몽이 생생한 이 총재가 내심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폭로ㆍ비방전에 대한 대비라고 한다. “핵폭탄급이 즐비하다”는 민주당의 호언도 부담스럽다.

이 총재는 최근 대응팀을 가동, 약점 파일을 재점검 하는 한편 노 고문에 대한 자료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판세를 뒤엎을 카운터펀치를 확보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영남ㆍ충청권 장악 여부가 최대 관건

하지만 모든 전략과 노력에도 영남 지역을 장악하는데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것이 이 총재 진영의 위기의식이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드러났듯 지역 구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남권 특히 부산ㆍ경남이 흔들리는 기색이 뚜렷해 이 총재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노 고문에 대한 호의적 반응도 정계 개편론과 관련해 껄끄러운 대목이다.

이 총재는 이 때문에 사실상 문전박대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김무성 비서실장 등을 보내 상도동에 끊임없이 구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YS의 대변인 격인 박종웅 의원은 “그동안 소홀히 하다 노 고문이 부상하자 부랴부랴 찾는 것이 달가울 리 있겠느냐”며 화답을 거부한 채 관망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해든 묵시적 동조든 이 총재 세 회복이 선결과제라는 뜻이다.

김용환, 강창희 의원 등 영입파를 내세워 은밀히 추진 중인 이 총재의 충청권 공략은 이 총재 대선전략의 마지막 관전 포인트. 이미 이원종 충북지사가 입당하는 등 발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현수준의 지지율 격차가 당분간 계속될 경우 노 고문의 거품이 빠진다 해도 끝까지 피를 말리는 승부를 피할 수 없다”면서 “노 고문의 영남 표 잠식을 고려하면 대선 승리를 위해 충청권에서 40% 이상의 지지를 꼭 확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이미 짐을 싸고 한나라당 입당 시기를 저울질 하는 자민련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안준현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6:49


안준현 정치부 dejav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