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명차 타는 한국의 VIP는?

외제차 열풍, 업체들 '연예인 고객 확보전'치열

“준상이가 타던 흰색 익스플로러를 구입할 수 있나요?”

최근 막을 내린 TV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가 수입자동차 업계엔 꽃바람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드 코리아는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배용준 분)이 타고 다니던 7인 승 SUV 흰색 뉴 익스플로러(가격 5,900만원 부가가치세 등 제외) 뿐 아니라 윈드스타(준상의 연인 역을 맡은 최지우 이용)와 링컨 타운카(배용준 모친 역인 송옥숙 이용) 등 3개 차종을 등장시킨 후 고객들의 주문이 쇄도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최승원 포드코리아 이사는 “용평의 눈 내리는 흰색 배경과 준상이 모는 흰색 익스플로러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30ㆍ40대 주부들과 젊은 자동차 애호가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올해 3월까지 들여온 익스플로러 40대가 최근 한 달 여 만에 동이 났다”며 “고객들이 한결같이 흰색 차량만을 고집해 이를 검정 등 다른 색으로 돌릴 것을 설득하느라 딜러들이 진땀을 흘릴 정도”라고 말했다.

포드측은 지난달 분당 수내동에 개장한 포드 전시장ㆍ서비스 센터에 배용준을 1일 점장으로 위촉하는 판촉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BMW의 뉴 7시리즈 최고급 세단 745Li의 열풍은 봄철 황사 바람을 능가한다. 출시 2주만에 400대가 계약판매 된 BMW 745Li는 강북지역의 웬만한 24평형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 1억5,000만원대이다.

이 차종은 지난달 중순 서울 남산의 하얏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신차 발표회 당시 23대가 즉석에서 계약되면서 BMW코리아조차 깜짝 놀랄 만큼 일찌감치 대박을 예고했다.

연예인들에서부터 저명한 교수에 이르기까지 1,500여명의 국내 VIP를 초청해 열린 신차 발표회에 러시아의 유명 공중묘기 서커스단 30명을 동원하는 등 총 2억원 대의 경비를 쏟아 부은 BMW측은 차량 한 대반 가격으로 400배에 달하는 판매수입을 올린 셈이다.

김영은 BMW코리아 이사는 “출시 1주일 만에 200대에 대한 계약이 성사되고, 심지어 현금을 줄 테니 빨리 달라는 고객의 성화와 독촉까지 쇄도해 독일 본사에 자동차 공수(空輸)를 요청, 3월말 90대를 특별 전용기로 직송하는 국내 사상초유의 특급작전을 벌였다”고 말했다.

올해 신차의 국내 판매목표를 600대로 잡았다가 최근 1,000대로 늘린 BMW코리아는 4월부터 매주 선적을 통해 추가차량을 들여오고 있다.


주가지수는 수입차 판매의 척도

BMW, 포르쉐, 볼보, 아우디ㆍ폭스바겐, 크라이슬러, 세트롱 등 외국 유명 수입차 판매 업체들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 신사동 사거리와 영동대교에 이르는 도산대로는 황사 바람도 피해가는 수입 명차의 무풍지대다.

이 곳 수입차 딜러들에겐 종합주가지수는 곧 판매 체감온도로 느껴질 정도다. 최근 주가가 900대를 향해 치닫고 금리가 다시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외환위기이후 4년 만에 수입차 판매는 연일 최고점을 잇따라 갱신하고 있다.

따라서 도산대로 수입차 딜러들은 아침 출근과 동시에 주가추이를 살피는 것이 일상화 될 만큼 고객들의 구매심리를 정확히 읽는 척도로 주식 시황을 꼽는다.

최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차는 비수기인 2월 한달 동안 776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보다 57.4% 늘었으며, 올들어 총 1,625대가 판매돼 전년대비 69.4% 증가하는 등 환란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특별소비세 인하 효과와 맞물려 금년 들어 경기가 내수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소비심리 회복세도 급격히 살아나 승용차 구입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ㆍ수입차 판매는 1,2월 두 달 동안 총 38만3,000대로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14.8%가 증가했다. 이중 국내차의 수출은 20만2,000대로 5.6%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내수시장에선 27.1% 늘어난 18만1,000대가 팔려 상대적으로 수입차에 대한 판매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연예인이 주 고객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수입ㆍ판매하는 고진모터스는 2년 전 문을 연 200여 평 규모의 도산대로변 신사동 전시매장에 이어 3월초 바로 옆 건물에 새로운 매장을 추가로 열만큼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매장의 김대준 영업부 주임은 “비수기라지만 종합주가지수가 상승세를 타면서 2월 한 달간 아우디 차량만 35대, 폭스바겐의 뉴 비틀 20대가 각각 판매될 만큼 젊은 수요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3월에는 뉴 비틀 모델만 50대가 판매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매장의 주요 고객으로는 최근 CF업계에서 뜨고 있는 가수 장나라(아우디 A6 콰트로)와 탤런트 김소연 등 연예인은 물론 법인 대표와 의사, 변호사, 자영업자, ‘술집 마담’ 등 직업별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최근 영화 ‘공공의 적’에서 악역을 맡았던 이성재가 성공한 펀드매니저의 상징으로 아우디를 몰고 나와 ‘성공인=아우디’라는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남겼다.

또 3월초 도산대로에 첫 전시장을 개장한 스포츠카의 황제로 꼽히는 포르셰는 한달 만에 국내 배정 물량 30대가 판매 계약을 끝마쳐 수입차 업계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당 가격이 1억6,000만~2억1,000만원인 이 차는 2인승에 최고 시속 292km를 낼 정도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겐 영원한 꿈으로 통한다.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인기 탤런트 류시원 등 연예인들이 최근 매장을 직접 들러 시험 승차할 만큼 포르셰에 큰 관심을 보였다.

포르셰를 수입하는 한성자동차 관계자는 “워낙 고가인데다 자동차 관리도 신경이 쓰이는 터라 첫해 판매에 30대도 팔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잇따른 주문에 독일 본사도 흥분 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주요 고객들은 내부에서도 담당자 외에 철저히 극비로 다뤄지고 있지만 스피드를 즐기는 준 재벌급 2,3세와 강남유명 가라오케 영업사장 등 자영업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산대로에서 가장 큰 수입차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BMW 코오롱모터스㈜ 신사동 전시장에는 지난달말 황사바람으로 초등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린 당일에도 고객들로 붐볐다.

전시장 내부에 스탠드 바를 꾸며 안락함마저 물씬 풍기는 이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신제품 뉴 7 시리즈이다.

7년간 이 매장에서 영업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딜러는 자신의 개인 영업성적에 대해 “최근 3개월간 26대의 판매계약을 맺어 지금까지 실제로 10대 정도 출고했다”며 “서울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80여명의 BMW 영업사원들이 BMW를 보유할만한 잠재 고객들을 개별적으로 선별, 1개월간 평균 500통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낼 만큼 업체 내부의 판매 경쟁도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BMW의 주요고객으로는 ‘겨울연가’의 히로인 최지우(5시리즈)와 가수 엄정화(7시리즈), ‘힘내라 아줌마’ 등으로 잘 알려진 인기 CF모델 겸 MC 최유라(7시리즈), TV 드라마 토마토와 홍길동의 주인공 김석훈 (5시리즈), 중년 인기 탤런트 박정수(5시리즈) 등이 꼽힌다.

또 재계의 최고 경영자들도 BMW 애호가들이다. BMW 판매를 맡고 있는 코오롱의 이웅렬(7시리즈)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BMW 모터사이클)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물급 인사와 재벌 2,3세대 들이 포함돼 있다.

한편 BMW고객 끌어안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 도요타는 국내 진출 1년 만에 1,000대를 판매한 기념으로 최근 1,000번째 차량을 구입한 가수 김창완씨에게 순금 20돈쭝으로 만든 렉서스 엠블럼을 증정하는 등 BMW 꺾기에 주력하고 있다.

도산대로에서 다소 떨어진 대치동과 방배동에 매장이 위치한 도요타는 특히 지난해 354대가 팔려 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에서 일찌감치 고지를 점령한 렉서스LS430(1억620만원)이 올들어 2개월간 65대가 팔리는 호조를 보이고 있어 BMW 뉴 7시리즈와의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렉서스는 올들어 2개월간 지난해 대비 88.3%의 판매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주요 고객으로는 탤런트 김창숙과 개그맨 신동엽, 뮤지컬 배우 남경주, 가수 겸 탤런트 김민종 등이 있으며 준 재벌급 법인 대표와 유흥업소 주인 등 자영업자, 주부 등 일반 개인에 이르기 까지 단기간에 두터운 고객 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밖에 안전성을 앞세운 볼보는 가정용 승용차란 이미지를 깨고 4월초 이례적으로 신형 스포츠카 볼보C70 컨버터블을 내놓았다.

2월과 3월 2개월간 123대를 팔아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115.7%의 판매 신장률을 보이고 있는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신차 출시를 앞두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속모델을 찾는 ‘델마와 루이스를 찾아라’ 행사를 개최하는 등 마케팅 판촉 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볼보의 주요고객으로는 가수 양희은의 동생인 탤런트 양희경(V70)과 음악인 이 활 교수(V70) 등이 꼽힌다.


변칙적인 구매 방식, “외제차 거품”우려도

대학시절부터 스피드광으로 강남 대치동에서 성형외과를 개업중인 박 모(40)씨는 최근 꿈에 그리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입 검정 색 2인용 스포츠카(2,400CC) 1대를 구입했다.

판매업체의 소개로 한 금융회사를 통해 리스방식으로 우선 선불 납입금(다운 페이먼트) 4,000만원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36개월(연리 10%)간 분할 납부키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지난해말 세무조사로 한 동안 시달렸던 박씨는 외제차를 산다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지만 딜러의 설명을 듣고 흔쾌히 4,000만원을 즉시 현금으로 지급했다. 박씨가 구입하는 자동차의 명의가 자신도, 금융회사의 명의도 아닌 수출입 전문 한 상사의 이름으로 등록된다.

서류상 이 스포츠카는 제3의 가명회사에 명의가 등록되고 자신은 이 회사로부터 리스를 통해 3년간 빌려 타는 셈이 된다.

특히 박씨가 자동차 리스비로 지불하는 금액은 자신의 병원 회계상 제3의 회사에 대한 물품 구입비나 비용처리로 계상되기 때문에 세무당국이 세무조사를 해도 제대로 포착하기 힘들어 박씨 본인은 안심하고 스피드만 즐기면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수 억원 대의 외제차를 구입해 굴리고 다니는 경우는 허다하다. 특히 대다수 자영업자나 법인 대표, 변호사, 의사 들도 이 같은 변칙적인 리스방식을 통해 외제차를 구매하고 있는 것은 수입차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한동안 외제차 소유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다 통상문제로 확산되자 이에 대한 조사가 느슨해 지면서 수입차 판매 열풍 속에 변칙적인 구매행위가 횡행하고 있다”며 “도산대로에도 언젠가는 한번쯤 된서리를 맞아 거품이 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7:59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