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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 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조계종 11대 종정 道林 법전스님, 평생 화두는 '달마안심'

1949년 가을, 24살의 젊은 선객(禪客)이 바랑 하나 메고 백양사를 떠났다. 여름 한철 안거를 끝내고 만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14세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백양사 근처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마침 해인사로 가려는 한 선객을 만나 길동무가 되었다. 그들은 법주사 복천암을 지나 문경에 이르러 봉암사에 들렀다. 백양사 수좌들중 전도 양양한 젊은 선객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봉암사의 스님들은 늘 장삼을 입은 성스러운 모습으로 ‘부처님 법대로’ 살고 있었다. 함께 왔던 객승은 봉암사의 규칙이 까다로워 힘겹겠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그러나 젊은 선승은 바로 여기가 목숨 걸고 수행할 도량임을 직감하고 남기로 결심한다. 오 십여 년 전 이 젊은 승려가 바로 3월 26일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 11대 종정으로 추대된 도림 법전(道林 法傳) 스님이다. 이렇게 운명처럼 젊은 수좌선객 법전은 현대 불교사의 전설로 기록된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길고 긴 깨달음의 길에 첫발을 내딛었다.


깨달음의 길을 걸어 온 선승

“네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봉암사 결사를 이끌던 성철스님이 젊은 법전스님에게 던진 번개처럼 화두를 던졌다. ‘네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타사시구자: 拖死屍句子)’ 태산 같은 부동심으로 한달음에 깨침의 경지에 다다르려 했던 욕심 많은 당찬 젊은 선객 법전스님에게 이 화두는 또 다른 수행의 시작이 이었다.

“네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는 화두는 젊은 수좌에게 딱 들어맞았다. 화두를 결택(決擇)하자 마자 제대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봉암사에서의 결사의 서곡이었다. 봉암사의 막내 법전스님은 봉암사의 청규대로 밭 매고 나무하고 탁발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또 다른 행운을 만났다. 한국 근ㆍ현대 불교의 거목들인 성철, 청담, 향곡, 자운스님 등 선지식들을 만나 바른 법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선객 법전스님은 7개월 동안 선정삼매에 들어 매일 매일 환희심으로 수행을 할 수 있었다.

스님은 출가 이후 60여 년간을 오직 수행에만 몰두해온 이 땅의 대표적 선승이다. 스님은 192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사주를 보니 절에 보내지 않으면 20살을 넘기지 못한다 하여 집안 어른들이 영광 불갑사로 보냈다. 열 네 살 어린 나이였다.

장성 백양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후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게 되어 치열하게 정진을 거듭했다. 당시 봉암사에는 성철, 청담, 향곡, 자운 등의 스님들이 이른바 대처(帶妻)와 식육(食肉) 등을 정화하고 부처님의 바른 법대로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고, 스님은 한국 불교의 거목이자 일생의 스승인 성철스님을 만났다. 막내로 들어온 스님은 밭 매고 나무하고 탁발하면서 힘겹게 공부에 매진했다.

어느 날 스님은 부엌에서 된장국에 넣을 채소를 썰다가 컴컴한 부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경계를 맛보았다. 그리하여 성철스님께 불려가 점검을 받았다.

“무엇이 네 송장을 끌고 왔느냐? 한마디 일러라.” 법전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오른쪽 주먹을 내보였다. 성철스님이 다시 묻자 왼쪽 주먹을 당차게 내보였다. 성철스님은 말로 해보라고 다그쳤고 법전 스님은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했다.

성철스님이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법전스님은 그 순간 꽉 막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쏜살같이 법전스님을 끌고 나가 세숫대야의 물을 머리에다 퍽하고 뒤집어 씌워버렸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법전 스님은 오히려 잡된 꿈이 없어지고 열심히 정진하게 되었고 꿈에서도 화두가 들리기 시작했다.


성철스님을 평생 스승으로

봉암사 결사 중 6ㆍ25가 일어났다. 투철한 수행정진을 하고 있던 대중들은 어쩔 수 없이 봉암사를 떠나게 되었다. 법전스님은 성철스님과 함께 통영 안정사 천제굴로 가서 용맹정진했다.

하루는 성철스님이 중국 고승인 영가스님의 ‘증도가(證道歌)’의 첫 구절 ‘군불견(君不見:그대는 보지 못했는가?)’을 가르치며 알겠느냐고 물었다.

법전스님은 대뜸 “그렇게 묻는다면 등가죽을 차버리겠다”고 답했다. 그 답을 듣고 성철스님은 “머리가 맑구나”라고 말하며 방을 나갔고, 다음날 종이에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써주었다.

그날 이후부터 법전스님은 성철스님을 정식 은법사(恩法事)로 모시게 되었다. 그것이 1951년이 일이었다. 그 후로 스님은 성철스님을 평생 모시며 공부하는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성철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동안의 동구불출(洞口不出: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수행하는 것)에 들어갈 때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사람이 바로 법전스님이었다. 성철스님이 공부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법전스님은 홀로 떠났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승사 묘적암이었다. ‘공부를 마치던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체의 출입을 금하고 암자에만 머물렀다. 스님은 한겨울 찬밥 한 덩이에 김치 한 조각, 찬물 한 모금으로 공양했다. 씻지도 않고 방청소도 그만두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석 달 이상이 지났다.

그러던 중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길로 한달음에 은법사가 철조망을 치고 수행정진하고 있는 파계사 성전암으로 달려갔다. 암자 주위의 철망을 훌쩍 넘어 들어 갔다.

성철스님은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냐?” “죽은 사람 앞에 술이 석 잔입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그리고 법전스님은 방안을 뚜벅뚜벅 걸으며 “일월이 동서를 분별하니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가더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성철스님에게 수행을 완성했다는 뜻으로 ‘파참재’(떡을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싫다”고 잘라 말했다.

성철스님은 법전스님이 깨달음을 인가(印可) 받은 일화다. 이후 법전스님은 1952년부터 수십 년간 창원 성주사, 문경 갈평토굴, 태백산 도솔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 김용사 금선대, 범어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계속했다.

법전스님은 높은 선지식으로 많은 선승들을 지도하며 맏 상좌인 함양 화림사의 원효스님 등 50여 명의 제자들을 키워냈다.

법전스님은 1967년부터 해인총림 유나를 지냈고, 85년 해인총림 수좌, 86년 해인사 주지를 맡았으며, 94년 해인총림 부방장, 96년 해인총림 방장에 잇따라 추대됐다. 신군부의 탄압을 받아 종단이 어려울 때인 81년에 종회의장, 82년에 총무원장도 잠시 지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대한 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맡았다.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도는 춥고 배 고플 때 나온다)’을 강조하는 스님은 수좌들에게 “중노릇 잘해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절을 찾아오는 신도들에게는 욕심을 적게 갖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며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가르침을 편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참구해야 될 화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법전스님은 ‘달마안심(達磨安心)’을 말한다.

“초조달마대사에게 혜가가 찾아와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그 마음을 편하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그 편안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오면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자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스스로의 분별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일생을 깨달음의 길을 걸어온 선지식이 중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던지는 화두다. 법전스님은 현재 해인사 퇴설당에 바람처럼 구름처럼 머무르고 있다.

이상균 불교신문 이상균 차장 gyun20@buddhism.or.kr

입력시간 2002/04/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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