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파이날 캇

<파이날 캇 Final Cut>(18세, 크림)의 기자 시사회 후, 수입사에서는 장르를 뭐라고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스릴러, 공포, 코미디, 블랙 코미디, 몰래 카메라, 드라마, 애정, 유사 다큐멘터리 등등으로 분분했을 뿐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영화들이 적지 않지만, <파이날 캇>만큼 규정 짓기 어려운 영화가 또 있을까. 타깃을 정해 홍보해야 하는 수입사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공교로운 작품이다.

가장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나는 <파이날 캇>을 코미디, 좀 더 세분하면 블랙 코미디라고 주장했다.

코미디에 대한 정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웃겨 주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묶여있지만, 서글픈 웃음, 황당함, 뒤집어 보기, 전복 등도 다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웬만한 영화는 다 코미디라고 할 수 있고, 사실 우리 인생이 한 편의 코미디 아닌가 싶을 때도 있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싶다.

<파이날 캇>은 영국의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내추럴 나일론사의 1999년도 작품이다. 나일론사는 영화 배우 주드 로, 조니 리 밀러, 새디 프로스트, 그리고 각본과 제작, 연출을 겸하고 있는 도미닉 안시아노, 레이 버디스 등이 참여하여 1995년에 창립하였다.

이들은 영화 학교 동기, 친구, 부부의 연으로 얽혀 있는 절친한 사이. 이러한 공동 체험이 전 출연진이 실명으로 연기한 <파이날 캇>의 파격으로 되 살아나고 있다.

<파이날 캇>을 제작, 각본, 연출한 도미닉 안시아노와 레이 버디스는 1981년부터 91년까지 록 뮤직 비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며 엘튼 존, 티나 터너, 조지 마이클 등의 뮤직 비디오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영화계로 들어와 <더 크레이즈> <데스 머신> 등을 제작했고, <파이날 캇>으로 감독 데뷔를 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0년에는 <파이날 캇>의 출연 팀과 다시 뭉쳐 갱 영화 <사랑, 명예, 그리고 복종>을 내놓았다.

쥬드(쥬드 로)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이고, 쥬드의 약혼녀인 새디(새디 프로스트)는 이들로부터 서명을 받는다. 새디는 쥬드가 2년 여에 걸쳐 찍은 미완성 영화를 함께 본 후, 서명 받은 이유를 설명하겠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쥬드는 “진실을 밝힐 유일한 길은 오직 비밀을 통해서”이며, “이 영화는 현실 그대로를 영화화 한 것”이라고 밝힌다.

쥬드는 자신과 새디가 살고있는 집의 거실, 화장실, 침실 등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여 방문한 친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찍었던 것.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장면에서부터, 마약 흡입, 창녀와의 외도, 친구의 아내 꼬시기, 친구 지갑 훔치기, 불구인 남편 흉보기, 협박 등 온갖 치부와 비밀이 드러나면서 추도식에 모인 친구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의심하고, 싸우기 시작한다.

마침내 쥬드가 죽은 이유가 밝혀졌을 때, 오랜 세월을 흉허물 없이 믿고 의지하며 지내왔다고 믿고 싶었던 친구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죽은 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해 보인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공간과 시간속에서는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지저분한 일들을 서슴없이 벌이는 치사한 인간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물론 다정한 친구, 형제 자매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러나 어이없고 억울하게 죽은 자, 그는 이 같은 판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가 설치한 몰래 카메라에 대한 도덕적 문제는 없는가.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4/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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