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뉴스초점] 대학의 진리는 어디에…

[뉴스초점] 대학의 진리는 어디에…

대학의 상징은 총장이다. 비록 과거와는 다르지만 아직까지도 학생들이 대학에서 총장의 권위에 대해 감히 도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가 총장 퇴진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은 이기준 총장의 사외이사 겸직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 총장은 최근 LG화학의 사외 이사직 겸임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이사직을 사퇴했다.

사외 이사 겸직이 문제가 되자 이 총장은 “LG화학의 경우 사외이사에게 연간 2,000만원씩 지급하도록 규정이 돼 있으나 대학 교수의 직분상 보수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무보수로 일했으며 연구비조로 1년에 2,000만원 가량을 지원 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서울대 사상 처음으로 총장 퇴진 운동을 벌이며 불신임 투표를 한 결과(3월 27~28일), 전체 등록생 1만8,875명 중 53%(1만79명)가 투표에 참여해 96.1%(9,690명)가 찬성했다.

총학생회는 이어 3월 29일부터 이기준 총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4월 8일 일단 해산했다. 서울대 총장실이 점거된 것은 조완규 전 총장 재직 때인 1989년 6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총학생회의 총장 퇴진 운동은 이 총장이 그 동안 추진해왔던 서울대 발전 방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총장은 학제 개편 등 대대적인 개혁 정책과 함께 BK 21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대학의 재정 확충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또 공대 등 일부 단과 대학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등 세계 일류 대학의 반열에 들기 위한 정책을 펴왔다. 이 총장의 정책에 대해 학생들과 교수들 중 일부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특히 인문ㆍ사회ㆍ자연대 등 3개 단과대학 교수들은 대부분 이 총장의 서울대 개혁안이 시장주의 논리에만 치중한 결과, 대학 본연의 역할 중 하나인 기초학문 발전의 토대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학교측이 기초 학문분야의 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외면한 채 경제원리에 따라 대학과 학문의 기본구조를 재편함으로써 기초학문의 심각한 소외를 초래했다”며 “기초학문의 위기는 대학 및 전체 학문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총학생회는 점거기간 중 총장의 판공비 내역과 장남 병역문제 관련 문건 등을 잇따라 공개하는 등 이 총장 개인에 대한 도덕성 문제도 거론했다. 공개자료에 따르면 이 총장이 사용한 판공비는 지난해 4억5,000여 만원으로 대부분 식사비와 명절 선물비,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됐다.

이중에는 국회의원과 장관 등 정치권과 정부 인사 등에게 보내는 추석과 송년 선물비용으로 5,800여만원도 포함됐다.

서울대는 그 동안 많은 엘리트를 배출해온 최고의 대학임에 틀림없다. 오죽하면 ‘서울대 병(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가.

하지만 얄팍한 연봉 등으로 우수 교수들이 학교를 떠나고 평준화에 따른 신입생들의 학력저하 등과 함께 서울대의 위상이 저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서울대의 위기가 서울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육계가 앉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 대학은 다투듯이 학교발전기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정부의 지원금을 더 타내기 위해 동분서주 해왔다. 서울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대학의 발전은 오로지 ‘돈’으로 되는 것일까. 대학 교육의 핵심은 자유로운 지식 추구와 비판 정신과 건전한 양식의 함양일 것이다. 총장이 학교발전기금을 얻어 내기 위해 뛰어야만 하는 현실은 ‘대학’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대학 총장은 정의와 진리, 비판 정신의 상징이어야만 한다. 경쟁만을 부추기며 시장 경제 논리 속에서 살아 남는 방법만을 가르치고 배운다면 대학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일종의 ‘직업학교’로 전락할 것이다.

서울대를 상징하는 마크에는 책과 횃불, 펜의 형상 밑에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여기서 진리는 윤리와 삶의 철학도 담겨 있는 것을 의미하지 수학 문제의 해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장훈 주간한국부 부장 truth@hk.co.kr

입력시간 2002/04/09 14:52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5월 제282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