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보·혁논쟁으로 노풍에 맞불

민주 대연합이냐, 보수 대통합이냐.

이회창 전 총재를 필두로 한 한나라당이 내홍으로 흐트러졌던 내부 전열 정비를 마치고 일제 반격에 나섰다.

개혁 세력을 등에 업은 노무현 후보의 거센 바람에 밀려 고전하던 한나라당 주류측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시작을 기점으로 연일 노 후보와 현정권의 급진성을 비난하며 분위기 반전에 돌입했다. 더 이상 주춤했다간 자칫 노풍에 휘말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한 위기 의식에서 나온 고육책이다.


12월 대선, 보ㆍ혁 대결구도로 간다

이 전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주류측이 반전의 핵심 카드로 들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보ㆍ혁 논쟁이다. 개혁 성향의 중도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한 민주당에 맞서 한나라당도 말없는 다수인 보수층 유권자들을 확실히 끌어 안음으로써 노풍에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정치 무관심 층인 다수의 중도 세력 중에 개혁 성향의 일부를 껴안은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아직 움직이지 않은 중도 세력 중 보수적 성향을 가진 민심을 확실히 다잡음으로써 노 후보 쪽으로 기울어진 지지율을 이 전 총재쪽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계산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보수 분위기 반전의 마당으로 4월 13일(인천)부터 5월 9일까지 거행되는 대선 후보 경선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한 달여 간에 걸친 대선 경선 과정을 통해 노 후보와 현 정권의 이념과 선정성을 드러냄으로써 상대적으로 이 총재의 보수적, 안정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 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12월에 벌어질 대선을 보ㆍ혁간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간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면 승부의 출사표는 이회창 전 총재의 포격 신호탄으로 시작됐다. 이 전 총재는 4월 3일 당내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현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지금 급진 세력이 좌파적 정권을 연장하려고 한다”며 돌연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그간 수세적 입장에서 탈피해 민주당 노무현-이인제 후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념 공방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전총재와 당내 경선 경쟁자로 나선 최병렬 부총재도 출마 연설에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화된 진보 세력은 여당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한 반면 보수 세력은 산산 조각 흩어져 이번 대선은 필패 형국”이라며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는 보수 성향 국민 대연합만이 이 나라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는 나(최병렬)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 했다. 최 부총재는 “우리나라에는 보수 대 진보가 7대3 가량 된다. 가능하면 보수를 한꺼번에 모으는 게 좋다”며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끌어 안자고 주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박근혜 부총재의 주장도 처음에 수용했다면 튀어나가는 것을 막았을 것이나 이 전 총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민주화 과정과 부패의 역사 속에 함몰돼 뒷전으로 밀려 있는 보수 세력이 결집된다면 선거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보수의 원조로, 자신을 중심으로 YS, JP, 그리고 3공, 5공, 6공 일부 세력 등이 광범위하게 연대한 ‘보수 대통합’을 구축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한나라당의 색깔 공방에 대해 민주당은 “대선 경선 흥행과 분위기 반전을 위한 노림수” 라고 일축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가 대선 경선을 통해 부동의 1위였던 이 전총재를 제치자 한나라당이 제2의 대선 경선 히트 작을 만들려고 보ㆍ혁 대결의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추락한 이 전총재의 보수적 개혁 성향을 강조하기 위해 더 보수 쪽에 가까운 친창(親昌)계 중진인 최병렬 부총재를 ‘들러리’로 경선에 참가 시켰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대선 후보간에 지지도 차이가 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후보간 차별성도 뚜렷했지만, 한나라당은 사실상 이회창 전 총재를 추대하기 위해 자축연이나 다름 없는 경선”이라며 “이런 경선 구도로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은 자기 당 후보간의 경쟁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고, 차별성을 강조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계개편 그림, YS움직임에 달려

정가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보수 대통합 주장은 민주당의 정계 개편과 맞물려 차후 큰 틀의 정계 개편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 본다.

민주당은 그간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민주 개혁 세력이 하나가 된 정계 개편을 물밑에서 준비해 왔다. 한광옥 민주당 전 대표도 최근 지방선거 이후 어떤 형태로든 정계 개편을 할 뜻을 비친 바 있다.

따라서 여야의 대선ㆍ당권 경선과 지자체 선거(6월13일)가 끝나는 6월 중순을 전후해 노무현 후보가 주창한 개혁 세력 중심의 ‘민주 대연합‘과 이회창 전 총재를 축으로 한 ‘보수 대통합’이라는 보ㆍ혁 구도로 정계 개편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 정계 개편에는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기 주장하는 정계 개편 구도는 겉으론 상반된 듯 보이지만 실제는 상당 부분이 중복된다.

우선 통합 대상이 겹친다. 여당 정계 개편의 중심에 있는 노무현 후보는 민주 개혁세력 연대론을 주장하면서 YS를 비롯한 전 민주계 인사들의 영입 의사를 수 차례 피력 했다.

하지만 이회창 전 총재와 최병렬 부총재 등 보수 대통합을 추진하겠다는 한나라당도 YS가 주 포섭 대상 0순위에 들어 있다. YS의 움직임에 따라 차후 정계 개편의 그림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이번 보ㆍ혁 논쟁은 그간 탈출구를 찾고 있던 JP와 한나라당에서 탈당해 제3의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박근혜 의원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계가 보ㆍ혁이라는 이분론적 형태로 갈라질 경우 성향은 보수이면서 3당 공조 때문에 개혁 라인쪽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JP가 분명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개혁과 보수의 틈새를 노렸던 박근혜 의원의 입지 역시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이 당초 의도대로 ‘히트작’이 될 지, 아니면 ‘자기들만의 잔치’가 될 지 여부에 따라 차후 정국은 크게 변할 수 밖에 없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9 15:04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