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미선나무

수목원 정원을 걷는데 어디선가 맑고 그윽한 향기가 휘몰아쳐 왔다. 절로 발길이 멈추어 지고 그 온몸으로 품어 나오는 향기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바로 미선나무였다.

희고 잔잔한 꽃송이들 곁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무들의 미덕이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풍부한 향기와 겸손한 모습으로 다가서 준 미선나무야 말로 이 봄의 가장 큰 위로중의 하나였다.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미선나무는 한 속(屬), 즉 그 집안의 식물에 이 종(種)만 포함되었으니 참으로 쓸쓸한 식물 집안이다. 더욱이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절로 자라니 더욱 의미있는 식물이다.

미선나무는 낙엽성 작은 키 나무이다. 잘 키워낸 나무들의 키도 고작 1~1.5m 정도이며 위로 높이 자라지 않고 옆으로 가지를 많이 만들며 퍼진다. 미선나무의 가지는 자주빛이 나는 진한 색깔인데 새로 나온 가지는 둥글지 않고 네모진 것이 특징이 되기도 한다.

봄이 오면 겨울 내 마치 죽은 듯 메말랐던 가지에 살며시 물이 오르고 잎보다도 먼저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 모양은 개나리를 똑같이 닮았지만 꽃이 좀더 작고 하얀 꽃이 달리며 개나리보다 더 훨씬 일찍 꽃을 피워내는 봄의 화신이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미선나무를 두고 하얀 개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은 작은 초롱처럼 생겼으나 가장자리는 네갈래로 벌어지고 한자리에 적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십여 개씩의 꽃들이 함께 모여 달리는데 이러한 꽃무더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층을 이루며 가지를 타고 달린다. 이 꽃은 화사한 봄처럼 고울 뿐 아니라 향기도 그윽하여 봄기운에 들뜬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꽃의 색깔은 기본적으로 하얀 빛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색깔마다 따로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연한 분홍빛 꽃이 달리면 분홍미선이 되고, 상아미선은 상아색 등으로 품종을 구분한다.

미선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의 열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미선이란 아름다운 부채란 뜻이 아니라 꼬리 미(尾)자에 부채 선(扇)자를 써서 미선이 되었다.

이 미선이라고 부르는 부채는 대나무 줄기를 잘게 쪼개어 여러 개의 가는 살을 만들고 이것을 둥글게 펴서는 거기에 종이나 명주 천을 붙여서 만든 둥근 부채이다. 텔레비젼 극이나 만화영화 같은곳에서 임금님을 가운데 두고 시녀들이 들고 서 있는 부채를 연상하면 된다. 미선나무의 열매가 이 부채와 똑같이 닮아 있다.

미선나무가 자라는 곳이 우리나라에 몇 곳 있다. 괴산, 진천, 변산 등이다. 그 중에 일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미선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보면 흙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하는 돌밭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자리잡고 이제까지 살아 남았을까? 떨어진 열매의 특성상 돌틈 사이가 아니면 제대로 싹을 틔워 살아 남기 어려운 여건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과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력이 약한 까닭에 조건이 열악하여 다른 나무들은 살지 않은 이러한 곳에 경쟁을 피하여 살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미선나무는 개나리처럼 줄기를 잘라 꽂으면 뿌리를 잘 내리므로 번식이 어렵지 않다. 작은 정원이 있다면 미선나무 한 무더기를 키워 놓고 흰 꽃과 향기로 찾아오는 봄을 맞이하면서 세상에서 우리 뿐인 소중한 존재를 자랑하는 일도 의미가 있을 터이다.

입력시간 2002/04/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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