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곽성삼(下)

자기와의 처정한 싸움, 그리고 음악적 환희

첫사랑과의 꿈같은 작업으로 탄생시킨 첫 독집앨범<성현-이몸사랑 받아주오,서라벌SR0177,79년11월>, <물레>의 아름다운 자켓 이미지속에는 <작은소망><사랑의 늪>등 11곡의 직설적인 사랑의 세레나데가 담겨있다.

곽성삼은 ‘성현이란 예명도 별 뜻 없이 붙였고 사랑과 욕망의 감정만이 뒤범벅된 음반이었다. 포크가수로서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며 자신의 음악으로 인정하기조차 거부한다.

2집 앨범 <길-오아시스,OL2399,81년2월>은 비로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실질적 1집 음반. 삶의 회귀를 노래했기에 장엄하면서도 슬픔을 자아내는 석양의 이미지를 앨범 자켓에 담고 싶었다. 백방으로 찾아본 자켓 그림은 한 전문대생이 쓰레기통에 버린 그림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찾아냈다.

기쁨도 잠깐, 자켓과 노래에 ‘'반항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주위의 걱정은 방송 금지곡 철퇴로 이어졌다. 활동을 지속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편안함을 안겨주는 <귀향> 등 수록곡들은 입소문을 타고 번져 나갔다.

홍보조차 변변히 못한 앨범은 재판이 발행되고 비싼값을 내고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삶의 기로에 선 어느 중환자는 ‘<귀향><소생>을 듣고 마음의 희망을 얻었다’고 감사의 연락을 해왔다. 가슴이 뻐근했다. 포크가수가 뭘 노래해야 하는 지 느낌이 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대중들은 느낌만 보고 <암울한 시기에 만든 명곡들>이라는 의미를 붙여준다. 시기적으로 그랬을 뿐 그런 의식없이 만든 곡들이다.

진지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지만 추상적 상상력으로 만든 사지가 절단된 병신음반’임을 고백한다. 사회현실을 경험하지않고 즉흥적 감성에만 의존한 음악에 염증이 느껴졌다. 30살이 넘어 기초 화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한동안 유한그루, 서유석, 강은철, 손경희, 풀님 별님등에게 곡을 써주며 세월을 허비했다.

배고픈 생활은 고생도 아니었다. 누가 노래를 하라하면 음악적 열등감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이후 종적이 묘연했던 것은 자기 음악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2000년 가을, 곽성삼은 20년 만에 세 번째 독집<장돌뱅이>을 들고 부활했다. 행색은 남루했지만 눈빛만은 살아 이글거리는 모습이었다. 잠적의 시간은 장돌뱅이 같은 방랑의 세월이었다. 아파트 경비원, 주유소 주유원, 외판원, 보일러기관실 엔지니어의 밑바닥 삶을 자청해 경험했다.

쓰러져 고통 받는 자들의 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착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으로 경험한 봉급생활자의 성실한 삶은 그토록 그리던 피아노 건반을 자신의 힘으로 마련하게 해주었다. 피아노 없이 배운 화성학이 20년 만에 완성되는 감격도 맛보았다. 질그릇처럼 투박한 삶의 정서가 배여 있는 한결 맛깔 나는 노래 가락은 이때의 소중한 경험으로 얻어졌다. 음반발표 후 만세를 불렀을 만큼 음악적인 만족감이 온몸을 떨게 했다.

3집 <장돌뱅이>의 노래 가락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삶의 향기가 배어있다. 그러나 세션의 구성과 편곡의 산만함은 생명력이 담겨있는 맛깔 난 노래 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약점을 일부 드러내는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가요사상 최초로 3장의 음반을 동시에 발표하려는 음악적 야심을 불태우는 곽성삼. 상상을 뛰어넘는 70인조의 웅장한 사운드로 클래식, 록과 어우러져 불멸의 생명력을 지닌 품격 있는 우리가락을 꿈꾼다. 그래서 2집 <길>을 편곡한 연석원과의 작업을 갈망한다.

4집의 컨셉은 씨랜드,군산 윤락가,인천 호프집 화재로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도는 어리고 불쌍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씻김굿이다. 또한 일찍 세상을 등진 여동생과 화해의 연결고리를 잇기 위한 영적인 음악 작업임을 조심스레 밝힌다. 5집에선 판소리적 일수도 있지만 형식을 무시한 자유로운 음악의 날개 짓으로 질펀한 삶과 인간의 군상을 다루려 한다.

6집은 최근 자신의 영혼을 의기 탱천하게 해준 <한단고기>의 춤에 대한 역동적인 노래 가락을 빚을 예정이다. 작곡은 이미 끝났다.

곽성삼의 음악은 이제 시작이다. 고단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어느덧 호기심 가득한 26세의 청년처럼 해맑다. 평생을 꿈꿔온 우리가락의 활짝 핀 꽃봉오리를 위해 달콤한 칭찬보다 냉혹한 비판에 귀를 쫑끗 세운다.

‘창작은 노동임을 느낀다’는 그의 독백처럼 곡마다 혼신의 힘을 쏟으며 힘겨워 하는 곽성삼. 그의 순수한 노래가 거짓과 탐욕 속에 물들어 사는 대중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어떻게 어루만지는 씻김굿으로 탄생될 지 기다려진다.

입력시간 2002/04/0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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