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동원 특사 방북 이후의 남·북·미 관계

남북관계 순항 북미대화에 달려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관의 방북을 통해 남북이 이산 가족 상봉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 보도문을 발표한 이후 한 동안 침체 상태에 있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다시 한번 고조되고 있다.

공동 보도문을 보면 남북 쌍방은 “최근 조성된 한반도 정세와 민족 앞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 폭 넓게 협의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6개의 합의 사항을 내 놓았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상대방 존중 및 긴장조성 방지에 대한 공동 노력, 공동선언의 합의 사항에 따라 남북관계 원상 회복, 남북 사이의 철도 및 도로 연결, 남북 사이의 대화와 협력의 적극 추진(경협추진위원회 개최, 금강산 사업활성화를 위한 당국간 회담 개최, 이산가족 상봉, 북측의 경제시찰단 파견 등), 군사당국자 회담 재개 등이다.


한반도 위기설 잠재운 남북 합의

합의 사항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남북관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미 정상회담 직후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합의는 남북이 6ㆍ15 공동 선언의 정신에 따라 한반도 긴장 조성 방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5대 핵심 실천과제를 중심으로 향후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합의는 그 동안 단절 상태에 있던 대화의 끈을 다시 잇고 ‘한반도 위기설’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발생한 9ㆍ11 테러 이후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투명했으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일부에서는 경수로 발전소 제공기한이며 미사일 실험 발사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03년 이후 북한이 핵발전소 건설과 미사일 발사 실험의 재개 가능성을 근거로 한반도 제 2의 위기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임동원 특보도 자신의 방북 목표가 ‘한반도 위기 예방’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약 임동원 특사가 북한이 대외 생존, 특히 대미 안보의 핵심 카드로 삼아 온 핵과 미사일의 '전략적 모호성’의 틀이 부시 정부에게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득했다면 이는 기대 이상의 매우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이번 합의가 곧 남북관계의 순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특성을 보면 대화시작 합의사항 도출 합의 사항의 부분적 시행 대화중단 합의 사항 파기 및 교착상태 진입 대화 재개 과정을 반복해 왔다.

7. 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러한 현상의 전형이다. 즉 원칙적으로는 합의하고 그 후 상황에 따라 실천 이행 단계에서 ‘원칙’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합의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6ㆍ15 공동 선언의 경우 남북의 정상이 서명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합의와는 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이번 합의사항도 원론적으로는 6ㆍ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재확인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공동보도문의 6개 합의 사항은 앞으로 어느 정도 실천될 수 있으며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핵심적 과제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 남북한간의 핵심 쟁점, 즉 평화 보장과 군사문제가 미국과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2000년 6월의 정상회담에 임하는 남측의 처음 키워드는 자주와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안보 및 군사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선언에서 평화와 군사의 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남측의 희망과 달리 북측은 평화와 군사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간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북한과 미국 사이의 공동 코뮤니케(2000년10월 12일 워싱턴)는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는데 4자 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고 천명하였다.

말하자면 북한은 평화와 군사문제는 미국과, 자주와 통일은 민족 내부의 문제이며 남북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임 특사 방북을 남북한이 동시 발표하면서 남측은 ‘한반도 위기예방’을, 북측은 ‘민족 앞에 닥친 엄중한 사태’를 논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의 중심적 내용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북한의 손해배상 요구, 미국의 과거 핵 규명을 위한 대북 사찰 등인데 모두 북미협상의 핵심 쟁점들이며 동시에 평화와 군사의 문제인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관건

따라서 북미간 대화와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이번 합의 사항도 제대로 이행되기 어렵다.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남북관계가 침체국면에 들어선 것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수 있는 경의선 등 철도와 도로 연결, 금강산 육로 관광, 개성공단 개발, 군사당국자 회담의 재개와 같은 합의사항은 평화와 군사문제와 관련된 현안으로 북미관계 개선이 선행되거나 적어도 보장될 때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 합의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사업과 같이 미국과 연계된 사항이 아닌 것은 구체적으로 시행 일자를 명기한 반면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신뢰구축의 시금석이 될 수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고 군사당국자 회담 등에 대해서는 그저 재개한다는 원론 수준의 언급만 있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변화시키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하고 그 여세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협조와 남북협력을 본격화해야 한다.

북한은 아직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으로 대량살상무기만이 체제생존의 유일한 무기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게 그들의 체제유지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선제양보와 본격적인 경제원조 및 재건이 그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도 한반도 문제의 가장 적절한 해법은 대량살상무기 포기의 대가로 북한의 체제생존과 경제재건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최완규(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입력시간 2002/04/0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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