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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소설가 '최인호'

[우리시대의 巨匠] 소설가 '최인호'

“원고 막할 때가 왜 없었겠어요? 그럴 때면 방문 걸어 잠그곤 엉엉 소리 내 우는 거죠. 한 30분 울고 나면 마음이 맑아져요.”

최인호(57)가 대성 통곡을 10여 차례 한 후 대하소설 ‘상도(商道)’가 빛을 보게 됐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러고 나니 마음이 밝아지더군요.” 남편이 엉엉 우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던 부인 황정숙(57)도 곡성이 너무 크다 보니 알게 됐을 정도다. 과연 ‘상도’라는 대하 소설은 그에게도 결코 녹록치 않았던 통과 의례였던 것이다.

1997년 7월 1일 한국일보에 첫 회를 시작해 2000년 9월 30일에 종지부를 찍은 ‘상도’는 3년 3개월간 1,050회 연재라는 기록을 수립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10자의 한자어만 지갑 속에 수수께끼처럼 남기고 사고로 사망한 김기섭 회장의 가평 그룹 임직원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고, 1997년 11월 IMF 관리 체제하에 들어 간 뒤로는 한국인의 화두나 다름 없었다. 그것은 바로 경제 행위의 바른 길, 상도였다.

“경제 전문가도 아닌데 일이 터지자 인터뷰가 쇄도하더군요. 쉬운 이치예요. 콩나물 장사해도 떳떳하게 벌었다면 정승처럼 번 것이고, 불타 죽은 윤락녀들은 개처럼 번 게 되죠. ‘개처럼 벌어도 좋으니 벌어 놓고 나 보자’는 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게 일련의 게이트 사건 아니겠어요.”


상술 아닌 상도에 의한 경제행위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자’는 시쳇말 한마디에 경제 행위의 진리가 압축돼 있다는 말이다.

다만 상술(테크닉)이 아닌 상도에 의한 사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도’의 쉽고도 어려운 주제다. 임상옥의 문집 가포집(稼圃集))이 말하는 바 ‘장사는 이문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명구는 한국인의 찌든 일상을 얼마나 위로했던가.

작품의 반향은 엄청났다. 현대 기업 이야기가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던 활자본의 경우에는 경제인의 반응이 많았다.

작가가 ‘상도’ 방영 중 슬쩍 집어 넣은 말 ‘상즉인(商卽人)’은 당연히 임상옥의 말로 와전, 모 은행장의 자서전에 그대로 쓰이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소설이 드라마화 하자 일반인의 마음을 낚아 챘던 것은 임상옥(이재룡 분)이란 매력적 캐릭터와 주변의 여인들 이야기였다.

가득 채우는 것을 경계하라는 계영배(戒盈盃) 이야기도 한국인의 반찬처럼 올랐다. 신문 연재 당시 임상옥과 송이가 정사를 벌이는 대목에서 “정사 씬이 화끈하다”는 아줌마 독자로부터의 전화 독려를 받은 기억은 언제라도 꺼내 돌려 봐도 즐겁다.

하여튼 별 탈 없이 드라마 ‘상도’는 4월 2일 모두 50회로 끝났다. 그날 9시 뉴스 말미에서 앵커는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임을 가르쳐 준 ‘상도’의 마지막 회가 곧 방영된다”는 이례적인 종료 멘트로서 그 일몰을 지켜볼 것을 은근히 권했다. 그것은 ‘상도’가 일개 드라마에서 사회적 현상으로 공인되고 편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상도'는 그의 마지막 육필

‘별들의 고향’ 등 도회적 서정과 감성을 감각적 문체로 예리하게 건져 올렸던 그가 우리 역사의 바다에 몸을 던지자 과거는 피와 살을 얻어 현대 한국인들을 채근했다.

백제를 찾아 가는 ‘잃어버린 왕국’, 고구려의 영욕을 더듬는 ‘왕도의 비밀’ 등 아득한 고대의 시간들이 그의 문재에 얹혀 현재가 됐다.

그의 오늘날이 있기까지에는 수덕사에서 문 걸어 잠근 채 문자 그대로 두문불출하며 아주 가끔 경허 스님하고만 말문을 트며 살았던 3년도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산고의 고통 정도로 여겨졌을 법한 시간이지만 무위(無爲)도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에게 처음으로 일러 주었다. ‘상도’ 집필 때 그가 가끔 터뜨렸던 곡성은 그것과는 다른, 문학적 산고의 외현이었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그의 두문불출에는 의미가 있다. 당시 고승과 함께 절에서 보냈던 시간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 1993년의 소설 ‘길 없는 길’이다. 전주의 유명한 깡패가 교도소에서 그 책을 보고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읽고는 감격해 사람 됐다는 말도 들렸다.

‘상도’ 연재가 끝나고 사흘 뒤 같은 지면에 실었던 그의 문장(200자 9매)에는 혼신의 역량을 바쳤던 작품에 띄우는 몌별의 정이 절절했고, 신문 연재 소설이라는 존재 방식이 소멸돼 가는 것을 안타까이 지켜 봐야 하는 대선배의 심려였다. ‘부귀를 얻으면 조강지처부터 버린다는 고사와 다를 바 없다’는 대목은 최근 들어 연재소설 게재를 외면하는 도하 신문을 겨냥한 말이었다.

아는 사람들에겐 그의 악필은 그의 소설보다 유명하다. 연재시 담당 기자는 그 암호문을 해독해 내는 데 적잖은 시간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아날로그 세대의 마지막 추억이 돼야 할 처지다. ‘상도’는 그가 육필로 보내는 마지막 원고다. 이제 그는 워드 프로세서로 써 전송한다.

지난해 8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해 오고 있는 ‘해신 장보고’는 그의 워드 작업 1호다. 이 소설은 KBS에서 5부 작 시리즈 다큐멘터리로 제작, 내년 1월 방영될 계획이다.

그는 “임상옥이 존경 받을 만한 상인이라면 장보고는 한국에서 극히 보기 드문 세계인”이라며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의 자료를 더욱 뒤져, 해상왕 또는 실패한 영웅 등으로 막연하게 인식돼 왔던 장보고의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일본 교토의 국보급절 미데라(三井寺)에서는 신라의 명신일 뿐 아니라 신에 버금가는 비불(秘佛)로까지 추앙 받고 있는데 본토의 오해와 박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1세기 한국인이 본받아야 할 지식인상을 제시해 줘요.”


특유의 재기와 종교의 결합

그의 화두는 좋은 작품보다 좋은 사람이다. 그같이 되려 노력하는 상태에서 나온 글이 보다 진리에 가까울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작가란 자기 내면의 결함을 어떻게 정제 시키는가의 과정까지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견 호사가의 말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그 진술에는 절간 생활을 거치고 1987년(42살) 가톨릭에 귀의하기까지 치러야 했던 시간의 무게가 깔려 있다. 1970년대 문단을 들끓게 했던 참여ㆍ순수 논쟁에도, 민중문학 논쟁에도 비껴 있던 그는 종교의 피안에 닿아 안식을 찾았다.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쓰는 게 아니라, 그 글이 갖고 있던 운명을 찾아 나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영화 감독이 꿈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짜리 소년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소설 ‘벽구멍으로’) 영화와 연극 등 인접 장르에서 노닐다 다시 소설이라는 바다에 닻을 내린 행로는 결국 운명이었다는 말이다.

그는 참으로 다(多) 장르적인 인간이다. ‘별들의 고향’으로 맺어진 영화와의 인연은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 반짝이는 영화를 모르고서는 197ㆍ80년대를 관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다재 다능에 기인한다.

종교에의 귀의 또한 그만의 독특한 개성 표출 방식이 되고야 만다. 믿는 자로서 그는 자기만의 복음을 쓰고자 한다.

베스트셀러 ‘상도’는 그에게 여유를 안겨줬고 마침내 예수의 일생을 추적하겠다는 오래된 갈망과 맞물렸다. 이스라엘과 유럽 등을 돌아 다니며 예수의 일생을 추적, ‘최인호 복음’을 하나 쓰고 싶다.

“인격적 예수의 모습을 보여줄 작정입니다.” 최인호 특유의 재기가 종교ㆍ문명적 상상력과 어떻게 만날 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의 팔자일 지도 모른다. 불교를 거쳐 가톨릭에 귀의한 소설가가 창조해 낸 또 다른 신약의 세계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단련을 거친 동(同) 시대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그러나 현실을 호흡하는 우리 시대의 작가로서, 상(경제)의 도를 전파하고 나온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대해 우려를 떨칠 수 없다. “한국 성인 남자의 8할은 비즈니스맨, 월급쟁이입니다. 돈을 위해 일한다면 그들의 입사 원서는 노예 문서일 뿐입니다. 직업에의 긍지와 윤리의식이 실종, 모든 게 경제 논리로 치환된 본말전도의 세상이 되고 만 거죠.”

아직 행방이 묘연한 동시대의 ‘거상’ 김우중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 그가 자신의 기업에 불지를 수 있는 십자가 정신이 있었다면 오히려 경제인의 모범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한창 신문 연재중일 당시, ‘좋은 소설’이라는 말까지 간접적으로 전해 온 김씨를 생각하면 현재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4/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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