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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의 檢, 권력을 겨누다

이명재의 檢, 권력을 겨누다

살아있는 권력과의 운명 건 일전불사, "물러설 곳 없다" 결연

4월 1일부터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에 나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변에는 한창 물이 오른 화초들이 나른한 봄 날씨에 취해있다.

하지만 청사안으로 한발만 들여놓으면 터질듯한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철문으로 굳게 잠긴 10층과 11층의 대검 중수부 조사실은 긴장의 진원지다. 점심과 저녁 수사팀의 식사를 나르는 청사 인근 식당 종업원과 피조사자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출입기자를 포함, 무단 출입자는 체포하라”는 엄명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DJ일가ㆍ아태재단에 칼

특검을 제외하고도 벌써 3번째 수사, 그간 검찰총장을 비롯해 10여명의 고위 간부들이 옷을 벗었고 검찰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지 오래다.

국민들의 의혹은 대통령의 차남과 아태 재단에까지 차 오른 상태며 검찰은 자칫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눌 수도 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이 피를 말리는 날들의 연속이기에 중수부 관계자는 “요즘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바야흐로 검찰의 명운(命運)을 건 한바탕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전투의 중심에는 이명재(60ㆍ사시 11회) 검찰총장이 있다. 수사 주체가 총장의 직할 부대인 중수부인 이상 모든 공과(功過)는 그의 몫일 수 밖에 없다. 그는 1월 17일 스스로의 말처럼 “100여년의 검찰사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 검찰총수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5월 서울 고검장을 마지막으로 친정을 떠난 그는 하루 전만 해도 국내 굴지의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 변호사였다. 박정희 정권 이후 변호사를 포함해 조직 외부의 사람이 총장으로 취임한 적은 없었다.

더욱이 그는 경북 영주 출신의 경북고를 나온 TK 검사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고 배경을 두고도 아직까지 여러 가지 설들이 나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그의 고교ㆍ대학 동창이자 사시 동기인 김경한 전 서울 고검장과의 경합설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외환은행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다.

검찰은 이번 인사에서 일련의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살리고자 비호남 출신의 당시 김 고검장을 1순위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김 고검장이 5~6공때 공안검사인 점 등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이 총장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그는 동기를 위해 절대 총장직을 맡을 수 없다고 고사를 거듭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총장직을 수락했을까. 이에 대해 인사에 정통한 검찰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와 검찰간 메신저가 이 총장에게 ‘당신의 뜻과 상관없이 김 고검장은 안 되는 걸로 결론이 났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전했다.


덕장에 가까운 당내 최고 검사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다. 1998년 초 대검 중수부장으로 ‘환란(換亂)’ 사건 수사를 지휘할 때 다소 ‘억울한’ 피의자에게 이렇게 다짐하기도 했다.

“실정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처벌하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당신보다 더 잘못한 사람들을 반드시 찾아 처벌함으로써 당신에 대한 미안함을 덜겠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일에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한 점 빈틈없이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합리적 추궁과 설득으로 자백을 받아냈고 그래서 피의자들은 구속되면서도 오히려 감사의 표시를 했다.

이로 인해 그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일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맹장이라기보다는 덕장에 가깝다. 혹자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면에서 다소 취약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처럼 문사 풍의 이 총장이 권력과의 일전을 감수해야 하는 정치적 사건에서 강력한 지휘력을 보일 수 있을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대검 간부들은 이 총장의 수신(修身)방식에서 지휘관으로서의 각오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총장 취임 후 오전 8시께 서울 청담동 집을 나서 오후 7시께 귀가하는 시계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점심은 간부들과 함께 청사내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데 40분을 넘지 않는다. 집무실을 방문한 사람들은 “서가에는 법전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임명식 때 찍은 대통령과의 기념사진도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초 집무실을 찾은 기자가 “너무 썰렁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이 총장은 “책이야 차차 채워넣으면 되지요”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언제든지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업무외적으로도 그는 수도승처럼 외부와 절연했다고 전해진다. 귀가 길에 곧잘 목을 축이던 카페에 발길을 끊었고 변호사 시절 가끔 잡던 골프채는 아예 창고신세를 지고있다. 그는 총장이 다닌다고 소문이 난 봉은사 길 대신 한강변으로 산책로를 바꿨다고 한다.


강골 검사들로 중수부 라인 업

총장의 은둔생활에 대해 조직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복무 방침인 ‘신뢰 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탓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그간 검찰개혁 등 구호만 요란한 가운데 간부들은 실세들과 어울려 골프나 치는 행태를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지방의 소장검사는 “검찰의 위기는 수뇌부의 부적절한 처신이 자초한 바 크다”며 “조직의 수장이 금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상 아랫사람에게 영(令)이 서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무엇보다 수사 주체인 중수부에 반영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철통 보안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수사팀은 일체의 외부접촉을 끊은 채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수부는 이번 수사가 느리지만 철저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과 여론에 쫓긴 나머지 미봉책을 내놓는 자충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보(牛步) 전술의 이면에는 수사 대상자들이 권력주변 인사들이라는 측면도 고려되고 있다. 중수부 관계자는 “하물며 주먹을 내지를 때도 공기저항을 생각해야 한다”며 “수사 대상자들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팀의 면면도 이번 수사에서 중요한 풍향계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총장은 2월 간부인사에서 이번 수사를 염두에 둔 듯 소문난 강골들만 골라 중수부에 배치했다.

총장의 복심(腹心) 자리인 수사기획관에는 박 만 검사가 임명됐다. 박 기획관이 정권실세 및 검찰총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던 브로커 여모씨에게 맞선 일화는 유명하며 주임검사인 김진태 중수 2과장도 검찰 안팎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임창열 경기도지사를 끝내 구속하는 강단을 보였다.

중수부의 결연한 태도는 반대로 수사 대상자들에게는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 대상자들이 벌써부터 서초동 법조타운을 돌아다니며 변호사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검찰수뇌부에 말 한마디 하면 될 텐데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라고 웃었다.

손석민 사회부 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2002/04/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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