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 vs 패기… "누가 더 먹힐까"

‘창’인 김민석이냐 ‘방패’인 이명박이냐.

6ㆍ13 지방선거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될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벌써부터 각종 화제 꽃이 만발하다.

4월 2일 이상수 의원과의 경선에서 초반 열세라는 전황을 뒤엎고 당당히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김민석 의원과 ‘전국구 스타’인 홍사덕 의원에게 불계승을 거두고 4월 4일 한나라당 후보로 추대된 이명박 전 의원. 연령 층과 지지기반, 경력과 성향 등 모든 분야에서 확연히 양극점에 서 있는 두 후보의 경쟁은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비유되면서 세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바람몰이 VS 경영마인드의 한판승부

1964년 생인 민주당 김민석 후보는 이제 38세. 이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40세의 나이로 시장에 임명됐던 김현옥 전 시장의 최연소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28세의 나이로 민자당 나웅배 후보에게 접전 끝에 200여 표 차이로 패배했지만 오히려 당선자보다 더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학생총연합 의장 등을 역임한 뒤 15대에 이어 재선의원으로 활동중인 대표적인 ‘386세대’ 정치인으로 상징된다.

김 후보 측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바람몰이를 일으켜 선전하는 것과 같이 ‘젊음과 개혁론’을 앞세워 예선에서 불기 시작한 김민석 돌풍을 본선까지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이에 맞선 이명박 후보는 김 후보와는 모든 면에서 전혀 색깔이 다르다. 1941년 생으로 올해 61세인 이 후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 입사, 고 정주영 회장의 오른팔을 자임하면서 ‘현대신화’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현대건설과 인천제철 회장 등을 거쳐 14ㆍ15대 의원을 지냈다.

이 후보는 경제인 경력을 십분 활용해 ‘경륜있는 행정 CEO(최고경영자)’를 모토로 선거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30대의 패기냐, 60대의 경륜이냐”

출발선상에 서 있는 두 후보 중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여론조사에서도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일 정도로 백중세를 달리고 있다. 지지기반을 정확히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중간자 입장의 유권자를 더 많이 끌어안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먼저 이번 선거의 최대 화두는 ‘연령’. 패기 있는 30대 시장의 시정개혁을 원하는 쪽은 김 후보를, 서울 시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길 바라는 시민들은 이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청년층은 김 후보를, 장년층은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저조한 20~30대의 투표율을 어떻게 끌어 올리는 지가 김 후보의 숙제로 남아있다. 김 후보는 젊은 나이를 의식, “당선되면 젊음이 아닌 정책과 안정감으로 시를 이끌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60대의 이 후보는 “서울시정을 총 책임지는 시장의 역할을 놓고 볼 때 김 후보는 젊은 게 아니라 어린 것”이라며 “어떻게 패기만으로 1,000만 수도 시민의 행정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김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연령 다음에는 이념과 색깔공방이 수면 위로 급부상할 태세다.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으로 개혁ㆍ진보 성향의 김 후보와 현대건설 회장을 역임하면서 안정ㆍ보수 성향으로 평가 받는 이 후보의 이념 대결도 한차례 대전(大戰)을 예고하고 있다.

이 후보측은 미 문화원 점거사건의 배후로 구속돼 2년 8개월간 복역한 김 후보의 경력을 부각시킬 예정이다. 이에 김 후보 측은 자칫 선거전이 보-혁 구도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낡은 정치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 구도의 선거전으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연령과 이념 등의 문제에서 보수시각이 우위인 유권자들의 성향을 놓고 보면 이 후보가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세대교체와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할 경우 김 후보 측에 더 점수를 주는 이들도 많다. 또 이들의 이념ㆍ색깔 공방 이면에는 민주당 대선경선이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양측 모두 경선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TV 등을 통한 후보자 합동토론회가 변수

서울 태생 김 후보와 경북 포항 출신의 이 후보간의 대결에는 그간의 모든 선거 때마다 강력하게 작용해온 출신지 문제가 상당부분 희석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책방향과 공약 등을 중심으로 한 인물론이 선거의 핵심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 후보는 주요 공약으로 ▦시정운영 4개년 계획 수립 ▦영ㆍ유아 보육시설 확대 ▦노인 일자리 창출 ▦강남ㆍ북 균형발전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후보는 ▦청계천 복원 ▦임대주택 공급확대 ▦경영기법 도입한 재정자립 ▦깨끗한 수돗물 공급 등을 공약으로 밝혔다.

역대 선거에서도 TV로 생중계되는 후보자 토론회를 통해 후보자별로 지지율이 급등락했듯이 이번 선거도 TV 토론회가 가장 중요한 결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김 후보는 순발력과 패기를 앞세우고 상대적으로 젊고 깨끗한 이미지를 통해 이 후보를 몰아세운다는 계산이다.

이에 이 후보는 안정감 있는 분위기로 차분하게 시정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보이겠다는 자세다. 공격적인 김 후보를 이 후보가 어떻게 노련미로 극복해내는 가가 관전 포인트이다.

당선 이후의 시정운영 방향을 묻는 질문에 김 후보는 “일과 나이는 별개이므로 행정 경험이 풍부한 공무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시정에 충분히 반영하면 원만한 운영이 가능하다”며 “개혁을 통해 변화와 안전을 추구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행정에도 기업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서울을 동북아 중심도시로 탈바꿈 시키겠다”며 “결단성 있고 추진력 있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평가에 대해 김 후보는 “이 후보는 1970년대 건설경기를 이끈 불도저식 추진력은 존경하지만 낡은 행동과 사고는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전제한 뒤 “나는 모든 면에서 떳떳하지만 (이 후보는)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정책능력 및 자질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깎아 내렸다. 이 후보도 “운동권출신이 정치인으로 성공했다고 보지만 패기만으로 다스릴 수 없는 게 공직사회”라며 “김 후보는 경험과 경륜을 더 쌓아야 한다”고 공박했다.

치열한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하는 양 후보의 틈새를 비집고 도전장을 내려 하는 제3의 후보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양강 구도로 선거전을 치를 경우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량감 있는 중도ㆍ보수 성향의 후보가 갑자기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할 경우 아무래도 이 후보 측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는 민주당 불패신화를 이어가려는 여당의 김 후보 측이 갖고 있는 최대 프리미엄이고, 야당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힘든 투쟁을 벌여야 하는 이 후보가 끝까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염영남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10 15:50


염영남 사회부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