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보험범죄조사관 김영복

"보험조사는 꺼진불씨 살려내는 것"

" 이런 기분, 이해가 가시겠습니까? 아무리 지독한 파렴치범이라도 막상 '내가 그랬다'는 자백을 듣고나면 그때부터 그렇게 그가 예뻐보이고 가깝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저를 애 먹인 것도 다 용서가 되고, 오죽하면 그랬을까 인간적으로도 연민이 생깁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왠지 오랫동안 그를 잘 알아왔던 것처럼 이상한 교감까지 느껴집니다. "

그 한 순간을 위해서 김영복(46)씨는 뛴다. 그는 보험범죄조사관이다. 대한손해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센터내 보험범죄조사팀장이다. 용의자의 자백 하나를 얻기위해 길게는 1년씩 해묵은 서류더미를 뒤지고, 대답도 퉁명스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미 '상황 종료'된 현장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증거를 수집한다.

'찾아가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익명의 협박도 사무실로 날라든다. 행여 어디서 어떻게 위해를 당할지 모를 조사관 신분이다. 보험사에선 일찌감치 상해보험에 가입시켜주었다.

" 보험범죄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입니다. 보험이란 것이 대개 소멸성이다 보니 은연중에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 어차피 내가 찾지 못할 돈인데 누가 어떻게 가져가든 먼저 먹는 게 임자라는 식의 생각이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위에서 범죄를 더 부추기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러나 이건 그 피해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사가 가만히 앉아 손해만 당할 리 있겠습니까? 결국 보험범죄로 빼앗긴 돈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법으로 만회할 것입니다. 평소 보험료 꼬박꼬박 잘 내고 사고도 한번 없었던, 선량한 사람들만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겁니다. "


날고 기는 수사베테랑들로 구성

보험범죄조사관이 등장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6년 한 화재보험사에서 처음으로 자체 조사팀을 가동한 것을 시작으로, 손해보험사들의 협의체이자 김씨가 소속해있는 대한손해보험협회의 경우 2000년 7월 전직 경찰 출신들을 대거 영입한 전문팀이 본격출범했다.

경찰근무경력 15년의 김씨를 비롯해 현재 보험방지센터에서 활동하는 조사관 10명중 6명이 수사에는 '날고 기는' 베테랑들이다.

신분과 전공만 달라졌다뿐, 실제 하는 일도 경찰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차이다. 이 때문에 조사작업이 갑절이나 더 곤혹스럽다.

보험금을 노리고 저질러지는 사기, 고의적 상해, 살인 등 양상도 각양각색, 게다가 이젠 생계형 범죄만이 아니라 '부업'으로 상습 행각을 벌이는 악질상습범들이 늘어 더 추적이 복잡해졌다. 빈곤층만 아니라 이젠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분들'까지 뛰어드는 추세다. 대규모 조직폭력단이 개입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중에서도 무서운 것은 이것도 중독성이 강하다는 겁니다. 한번 저지르기가 어렵지, 한번 하고 나면 다른 것을 못한다고 할만큼 재범 확률이 높습니다. 엄연히 범죄인데도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

돈에 관한 한 인간이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거나 철로에 몸을 묶어 달리는 열차 아래 다리를 절단한 엽기사건들은 이미 유명하다. 자해로 그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비정한 어느 가장은 자신의 자녀에다 조카들까지 태우고 저수지로 돌진했다. 본인의 사고사 보상금을 노렸던 한 남자는 술에 취해 지나가던 행인을 기절시킨 뒤 자신의 옷을 입혀 절벽으로 떨어뜨렸지만 죽지 않자 기어코 불에 태워 죽였다.

전말이 드러나기전 몇 년 동안을 철저히 타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 이런 애인도 있다. 사귀고 있던 연인을 자신의 옛 직장동료에게 소개해 결혼시킨 뒤 보험에 가입, 얼마 후 그 남자를 죽이고 보험금을 챙겼다.

그러다 행여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지자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자마저 자살을 유도해 죽이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직접 목을 졸랐다. 꽤 많은 돈을 벌기로 소문난 한 정형외과 의사는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가 우연히 자신의 병원을 찾아오자 스스로 친구를 설득해 자기 자신까지 사고차량의 동승자로 조작, '무임승차'로 불로소득 1500만원을 챙기려다 덜미가 잡혀 구속됐다.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의사가 단돈 1500만원에 눈이 멀어 영혼과 명예를 팔아버렸다. 모두 보험금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나마 보험조사관들의 의심과 추적이 없었다면 굳이 누구도 알려고 하지도, 파헤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묻힐뻔한 부끄러운 범죄들이다.

"작년 8월 한 남자가 부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맞은 편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오는 차량을 피하다가 도로 옆 호수에 빠져 부인은 익사하고 남편만 살아나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고설명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찾아가보니 도로에 남은 바퀴흔적을 보아 핸들을 꺾은 각도가 거의 직각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중앙선을 넘어들어오는 차를 피하는 상황에서 핸들을 꺾게 되는 각도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또 부인이 익사했다는 호수의 수심도 채 2미터가 안 됐습니다. 차가 완전히 거꾸로 처박혀도 뒷부분이 잠기지 않을 정도인데 어떻게 익사가 가능한가, 그런 반증들을 가지고 계속 추궁하자 '사실은 내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마침내 자백을 하더군요. 그런 바퀴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사건은 그나마 재수가 좋은 경우입니다. "


범죄 냄새 풍기는 난제 해결사

김씨나 김씨가 속한 팀이 맡는 사건들은 난제중에서도 난제들이다. 협회로 문제가 넘어 올 때 이미 1차적으로 해당 보험사 보상팀의 조사를 거친 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만 상위 기관격인 협회로 이관되는 상황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험범죄에 관련된 조사과정은 대략 다음의 수순을 밟는다. 보험금 지급을 요하는 사건이 신고되면 해당 보험사 보상팀에서 먼저 사고의 진위, 보상금액 등에 대한 기본 조사와 아울러 당사자들의 보험가입현황, 과거의 사고전력 등을 조회한다.

유난히 사고가 잦거나 다친 부위, 사고 유형, 장소등에서 과거와 비슷한 유사점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고의 가능성을 제기, 정밀내사에 들어간다. 가장 흔히 이용되는 교통사고의 경우, 특히 이럴 때 범죄의 냄새가 풍긴다.

" 범죄를 계획하는 입장에선 당연히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종목을 택하게 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호위반, 중앙선 위반, 여성운전자나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량, 일방통행 구간을 역주행하는 차량 등이 가장 좋은 표적이 되는 겁니다. 더구나 이런 경우엔 무조건 형사입건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무조건 겁을 먹게 돼 있습니다. 이런 유형중 어느 한가지이기만 해도 일단 의심을 갖고 출발합니다. "

머리와 몸이 동시에 중노동을 겪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검토해야하는 관련서류만 한 사건당 몇 박스 분량이다. 찾아다녀야 할 사람들은 더 많다. 지난해 대전의 거대 조직폭력단이 연루됐던 한 사건은 혐의가 짐작되는 기본 조사대상만 자그마치 600여명에 달했다.

그들을 일일이 다 만나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가담자를 추리고 추려낸 후 결국 경찰에 의해 검거된 사람만 163명, 그 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거의 1년이 날아갔다.

행패와 협박이 수시로 도처에서 발생한다. 그나마 경,검찰과의 연계가 밀접한 손해보험협회에까지도 '날이 선' 협박전화가 날아들기 예사. 일선 보험사 보상팀들이 겪는 상황들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보상금 50만원을 노리고 사고를 냈다가 돈을 받지 못한 어떤 사람은 가족을 단체로 끌고와 보험사 로비에 퍼질러 앉은 채 밥에다 찌개까지 끓여 먹어가며 소동을 벌인 바 있다.

더 심한 경우엔, 담당 보상직원 앞에 낫을 휘두르고 신나를 뿌리며 '돈을 내놓을래, 내 손에 죽을래' 장시간 난동을 부린 사람도 있었다. 결국 직원은 그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일선 보험사에선 흔히 겪는 현실이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내부 직원들을 보호하는 것도 김씨가 속한 센터의 역할중 하나다.


갈수록 치밀해지는 수법

그나마 해결에 성공한 사건은 최소한 땀값이라도 건진 셈이다. 솔직히, 풀리는 일보다는 안 풀리는 일이 더 많다. 범죄는 점점 치밀하고 은밀해지지만 아직도 이 부분을 '보험사만의 집안문제'로 치부하는 현실속에서 별동대처럼 뛰는 입장이란 너무나 많은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뻔히 속셈이 보이는데도 '경찰도 아닌 당신이 뭔데!'라고 외치는 참고인이나 혐의자들, '보험사의 돈 아껴주자고 우리가 생고생을 해야하냐'는 생각에 시큰둥한 일부 경찰관들, 악조건 속에서도 긴 시간 매달린 보람도 없이 끝나는 허탈한 결말들이 많다.

작년에만 약 5500건의 보험범죄가 있었다. 약 350억원이 그렇게 사라졌다. 수치상 하루 평균 15건, 1억원어치의 사고가 매일 일어났던 셈이다. 보험범죄라고 해서 모두가 악질은 아니다.

IMF 이후 특히 급증했던 생계형 보험범죄는 요즘도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 범행동기와 본인의 반성여부에 대해 충분한 신뢰가 오가는 경우, 보험사에선 예외적으로 면책,청구포기제도를 적용해 법적 처벌은 면해주고 있다. 이렇게 구제되는 생계형 사범도 상당수다.

" 너무 비정한 상황을 많이 접해 인간 자체가 싫어지진 않냐구요? 글쎄요. 예전엔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진 말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그것도 다 위선적인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론 누구나 다 같지 않을까요.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집에 가면 자기 아들 앞에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버지로 사는 걸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같지만, 끝까지 마음의 유혹을 잘 참고 견디는가, 아니면 못 견디고 선을 넘어가는가, 그 차이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불완전하기로 치면 저 역시 불완전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


경찰경력 15년, 아내는 현직 경찰

일찍 사망한 선친 역시 경찰이었고, 아내 역시 현직 경찰관인 김씨. '군 헌병시절부터 시작된 수사관 팔자를 벗어나고 싶어' 경찰근무 만 15년을 맞던 1996년 사표를 쓰고 나왔다. 사업을 시작했지만 IMF의 훼방으로 채 1년도 못 돼 문을 닫은 뒤 잠깐의 방황을 거쳐 결국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이 길이 당신의 천직이란 뜻이 아니겠냐'는 해석엔 동의하려 들지 않지만, 한편으론 수사, 교통사고분야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관련강의도 펼치는 등 현업에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가능하면 그의 '전공'과 관련된 일로 그와 만나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 그나 그의 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사고라면 아주 악질범에게 당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하기전에 미리 막자. 그의 조언을 전한다.

"뭔가 고의적인 낌새가 느껴지거든 차라리 정공법을 쓰십시오. 상대가 뭐라고 엄포를 놓든 절대 겁 먹지 말고, 곧바로 경찰과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에 연락해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4/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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