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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세상] 스타들이여, 저예산영화를 사랑하라

[이대현의 영화세상] 스타들이여, 저예산영화를 사랑하라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공동경비구역 JSA’로 2000년 최고 흥행감독에 올랐던 그가 원래 자신의 영화세계로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흔히 말하는 ‘B급 영화’로요.

사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이나 ‘삼인조’(1997년)와 비교하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소재나 주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삼인조’처럼 우화적인 표현도 있긴 했습니다만 스타일과 색깔이 완전히 그가 지향하는 영화세계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로운 변신을 했다고 믿을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작사가 철저한 상업적 전략으로 작품을 손질하는 명필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한가지 예가 감독이 시나리오에 설정한 남북병사 사이의 동성연애 설정이 가차없이 잘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공동경비구역 JSA’는 감독의 영화(작가주의)가 아니라 기획영화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찬욱 감독은 그것을 두 번 반복하지 않고 ‘복수는 나의 것’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앞 영화의 상업적 대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복수는 나의 것’에 투자할 돈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기존 영화의 정서와 관습을 거부했습니다. 메마르고 차가운 하드보일드, 끔찍한 폭력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와 냉정한 시선,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의 거부, 주제와 무관한 상징과 은유 등이 분명 박찬욱 스타일이고,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것들입니다.

분명 ‘공동경비구역’처럼 흥행 대박을 노리기에는 대중적인 스타일이 아닙니다. 감독 자신도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4억원 정도의 저예산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당연히 배우도 스타를 기용할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한 인연으로 송강호 신하균이 기꺼이 출연을 자청했고, 배두나까지 가세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감독으로서도 그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도 잡지 못하는 게 요즘 한국의 유명 배우들이니까요.

송강호는 한국 최고 배우니까 당연히 최소한 3억원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성격이나 규모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때문에 ‘복수는 나의 것’은 B급 저예산 영화(그렇다고 절대로 영화의 질이 나쁜 것은 아닌데)로 출발하려 했지만 결국은 30억원이 넘는 큰 영화가 됐습니다.

왜 한국영화에는 스타가 나오는 저예산 영화가 불가능할까요. 무조건 출연료가 자신의 인기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배우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은 아닐까요. 어떤 색깔이나 규모의 영화든 무조건 나는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태도야말로 저예산 영화를 ‘수준 낮은 엉성한 영화’로 만든 것은 아닐까요.

브루스 윌리스나 브래드 피트, 조니 뎁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인 저예산 영화는 아주 적은 출연료로 연기하고, 상업 영화는 수천만 달러를 받으면 안 되나요.

물론 우리에게도 그런 배우가 있습니다. 조재현은 김기덕 영화에는 무조건 낮은 출연료를 받습니다. ‘나쁜 영화’에서도 4,000만원 밖에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청풍명월’ 같은 80억 원짜리 영화에서는 2억원 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배우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예 저예산 영화는 외면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한국의 저예산 영화나 작가주의영화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합니다. “스타들아, 제발 돈에 집착하지 마라.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하라. 그래야 너희들이 산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2/04/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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