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02)] 빛의 오염

지치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까만 밤하늘을 보며 반짝이는 별빛 속에 하루의 피로를 묻어버리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기 예보가 변변치 않던 옛날에는 농사를 짖기 위해서 하늘과 별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필수였다.

하늘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은 곧 다음날의 날씨를 예감할 수 있는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러는 별의 변화에서 시대와 세상의 변화를 점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일은 그의 불가능하게 되어가고 있다. 도심의 넘쳐 나는 불빛이 밤하늘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도 환한 세상. 더러는 방안에 켜놓은 컴퓨터 모니터 때문에, 더러는 텔레비전의 화면으로 인해서, 더 크게는 인접한 빌딩의 거대한 간판과 대낮같이 밤을 밝히는 가로등, 이제 우리에게는 밤 같은 밤이 사라져 가고 있다.

밤을 갉아먹는 도심의 불빛들, 이제는 하나의 환경 오염이다. 누구보다 천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인한 피해는 심각할 정도다. 가로등, 네온사인 등 도심의 각종 조명은 하늘 전체를 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에 도시 주변의 높은 산에 자리잡은 천체 관측소라고 해도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대기 중의 먼지 입자들과 도시의 불빛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밤하늘 전체가 밝아지는 현상을 광공해 또는 광해(光害)라고 이미 표현하고 있다. 광공해가 심할 수록 미약한 별빛은 가려져 맨눈으로는 볼 수 없고 천체 망원경의 해상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국제 통계에 의하면, 미국과 유럽대륙의 99%와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광공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3분의 2, 유럽의 절반, 그리고 세계의 4분의 1이 넘는 인구가 맨눈으로 더 이상 은하수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미국의 49%, 유럽의 6분의 1 그리고 세계인구의 10분의 1은 완전한 밤을 전혀 누릴 수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이름을 빌어 아들 녀석에게 천체 망원경을 선물했는데, 도심을 벗어나지 않고는 거의 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왜 이런 선물을 내게 주셨을까?’ 라고 짜증스러워 하던 아들녀석 앞에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난다.

전기의 발견으로 밤을 낮같이 즐기는 놀라운 세상을 얻었고 지금도 그 소중함에 대해 감사하고 있지만, 그 불빛도 이제는 차츰 골칫거리로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나친 불빛은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식물의 광합성에 혼란을 초래하는가 하면, 곤충들의 바이오 리듬에도 이상이 발생한다. 한 여름 매미들이 밤중까지 매매거리는 것도 빛의 공해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 음식점 주변의 가로수를 칭칭 감고 있는 불빛은 나무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가 하면, 전등의 열과 전자파까지 가세하여 나무를 숨막히게 한다. 더구나 인체의 경우 완전히 어둡지 않으면, 신체가 밤에도 밤이 아닌 것처럼 반응하기 때문에 몸이 충분히 쉬지 못한다. 피로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심에 건물이 밀집하게 들어서면서 일조권 논쟁이 일었다면, 이제 빛에 대한 거부권도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주장될 시점이 된 것이다. 문제가 심각해진 후에야 그 문제를 실감하며 허둥지둥 대책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실망하면서, 과학의 발전과 그 활용에 대한 보다 장기적이고 폭 넓은 예측이 무엇보다 전문화될 필요가 있음을 공감한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4/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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