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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인간은 잡종이다

[김동식의 문화읽기] 인간은 잡종이다

미리 고백하건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는 조금도 즐겁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단히 불친절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미래사회의 암울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제시되고 무표정한 등장인물들은 단 한차례도 웃지 않는다.

고스트 인형사 전뇌(電腦) 광학미체 등 생소한 용어들이 사용되지만 관객을 위한 계몽적인 설명은 어느 곳에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들이 시(詩)를 지향한다면 공각기동대의 대사들은 거의 철학적 잠언(箴言)이라 할 만하다.

작품의 메시지를 알아들으면 좋고 아니면 말라는 식의 비(非)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오타쿠(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일반적인 평가가 주어졌던 것이리라.

‘공각기동대’는 인류의 운명에 대한 서사시적인 성찰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정부와 기업의 네트워크가 인간의 두뇌와 연결되어 있는 미래사회다.

정부와 기업이 개인의 두뇌를 해킹하는 일이 가능하며 역으로 불순한 개인이 국가나 기업의 전산망을 교란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공각기동대는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며 해커들을 찾아서 응징하는 공안 부대이다.

어느날 인형사라고 불리는 놀라운 능력의 해커가 등장하게 되고 공각기동대의 매력적인 여전사 쿠사나기 소령이 범죄자의 추적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인형사는 정부가 외국기업의 정보를 해킹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며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정치적 망명을 선언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사이보그였던 쿠사나기 소령은 인형사를 뒤쫓던 중에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데 인형사와 합체(융합)해서 이름 붙일 수 없는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한다.

이 작은 글에서 ‘공각기동대’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일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강요하게 될 것 같다. 다만 작품에 ‘접속’할 수 있는 몇 가지 코드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인터넷=사이버 공간’이라는 등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사이버 공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84년에 발표된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뉴로맨서’에 의하면 사이버 공간은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형성된 가상세계를 말한다.

인터넷에 빈번하게 접속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기술주의적 용어인 네티즌과는 달리 사이버 공간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정보의 망(網) 위에 형성된 그물코에 해당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정보는 현실이며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는다.

‘공각기동대’를 위한 두 번째 접속코드는 사이보그(cyborg)와 휴머노이드(humanoid)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보그는 인간의 정신(영혼)과 기계의 몸이 결합된 존재를 의미한다.

‘600만 불의 사나이’나 ‘형사 가제트’가 대표적인 사이보그이다. 사이보그가 기계가 되어 가는 인간을 대변하는 용어라면 휴머노이드는 기계 로봇이 인간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작년에 개봉되었던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대표적인 예인데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가 주요한 테마로 제시된다.

영화나 SF에서 휴머노이드는 감정이라는 인간적 표지를 발견하는 하나의 기법이다. 반면에 사이보그는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비극적인 욕망을 대변한다.

세 번째 접속코드는 생명과 정체성이다. 생명과 정체성이라는 관념은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유기체에게만 배타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유보하는 것은 어떨까. 기계에도 정체성이 있으며 기계를 작동하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유전자 프로그램과 같은 수준에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기계를 만든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서 ‘스스로를 만드는 기계’라는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정체성)이란 고정불변의 그 무엇이며, 다시 기억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보는 일이다. ‘공각기동대’는 말한다, 인간이란 비(非)인간적인 것을 통해서만 다시 성찰할 수 있다고.

인간의 정체성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을 되찾는 방식이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와의 융합을 통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잡종(hybrid)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이고….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집착이 너를 계속해서 제약한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04/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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