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창덕궁

비원(秘苑). 서울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창덕궁으로 갑시다’하면 대개는 창경궁 앞에다 세운다. 그러니까 창덕궁 하면 몰라도 비원하면 창덕궁 돈화문 앞에다 택시를 갖다 세운다. 창덕궁 보다는 ‘비원’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5대 궁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의 창덕궁인데도 아직도 일반인들에겐 창덕궁 보다는 비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비원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개명된 이름이다.

비원이라는 이름은 1904년 7월 일제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비원의 본래 이름은 금원(禁苑)이다. 창덕궁의 원림(苑林)으로 뒷뜰(後苑) 또는 북원(北苑)이라고도 불렀으나 비원이라는 이름은 그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 궁궐의 정원이 대단히 비밀스럽다”는 뜻으로 비원(秘苑)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달았던 것이다. 그 찌꺼기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봄이 서울에 드니/ 금원(禁苑)에 꽃 피었고/ 한 차례 이슬비 방금 개었네/ 아스라한 붉은 누각에/날아 든 버들가지 주렴 깃발 부딪치누나…”라고 교산 허균은 그의 「만전방」이라는 시에서 창덕궁의 금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일제는 1904년 2월 우리 정부와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일제는 한일의정서 제1조에 ‘한국은 시설 개선에 관한 일본의 충고를 용납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왕의 궁궐 원림(庭苑)을 ‘금원’ 이라고 부른다. 이는 궁궐의 위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네 왕궁에서 쓰고 있는 말이 조선의 궁궐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 비원으로 고쳐 사용했던 것이다.

일제가 우리나라 궁궐에 가한 온갖 만행, 경복궁내 수십 동의 전각과 누각을 뜯어내고 광화문을 옮겼는가 하면 경희궁은 아예 통째로 없애고 그들 자녀의 학교를 지었다. 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명했다. 그 와중에서 금원이란 이름도 비원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비원, 즉 금원은 조선 태종 때부터 조성돼서 세조 때 확장되고 임진왜란 때는 왜구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다가 광해군 때에 복원돼 오늘에 이른다. 가장 한국적인 정원미를 간직하고 있는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후원으로 그 넓이는 약 9만 여 평에 이른다.

정원 안에는 완만한 산 기슭과 계곡, 언덕, 연못, 그리고 방형, 육각형, 다각형, 부채형 등 정자가 하늘의 별자리 배치에 따라 배열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히 천계와 선경을 방불케 한다.

일제는 이곳을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쳤을 뿐 아니라 바로 옆의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만들었으며, 그들의 국화인 벚꽃을 심었다. 이 것도 모자라 일반인들에게도 궁을 공개해 놀이터로 만들었다.

비원이라는 이름은 금원 또는 북원으로 바로 잡아야 하며 결코 비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홍환 현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2/04/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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