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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보·혁을 아느냐] 보·혁논쟁 당당히 공론화 하라

[너희가 보·혁을 아느냐] 보·혁논쟁 당당히 공론화 하라

흠집내기 아닌 남북·노사문제, 국보법 등에 대한 정책대결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이념 논쟁은 그 동안 다분히 기형적이었다.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의 이념이나 사상 논쟁은 좌우 균형이 잘 잡힌 저울처럼 평형선을 이루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보ㆍ혁이나 색깔 논쟁은 대부분 좌파나 용공을 지적하는 것 일색일 뿐, 한번도 보수나 우파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이는 우리의 사상 논쟁이 기본적으로 보수 우익의 입장 쪽에서 이뤄졌다는 증거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ㆍ혁 논쟁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한 국가를 이끌 대선을 앞두고 후보의 리더십과 사상ㆍ이념을 검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1948년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1997년 제15대까지 50년간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동안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이념 검증이 이뤄진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좌우 색깔론으로 불거진 이번 이념 논쟁이 대통령 후보에 대한 생산적인 정책ㆍ이념 논쟁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적 정책대결의 장 돼야

서울대 박태균 교수(국제지역원)는 작금의 보혁, 색깔 논쟁을 정치인들의 정략적 도구라고 치부해 무조건 배척할 것은 바람직 못하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진보는 ‘친북’으로, 보수는 ‘수구’로 매도되는 왜곡된 이념적 성향을 보여왔다”며 “이로 인해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애매해져 건전한 보혁 논쟁이 자리잡지 못하는 불행한 과거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정당이나 정치인의 성향적 차별화가 지역 연고주의에 치우쳐 왔던 것도 다름 아닌 발전적인 이념 논쟁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보혁 논쟁을 공론화해 지역 대결이 아닌 이념ㆍ정책 대결의 정치 풍토가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평론가인 손혁재씨도 이념 논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간 국내 정치상황은 좌파의 진입을 막는 금단의 정치였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이 정치권에 진입하려고 하면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매카시즘적 논리를 적용해 무차별한 탄압을 가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이념 논쟁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손씨는 “과거 우리 정치계는 진보, 혁신, 좌파 같은 논리들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분류를 시도하지 않고, 무조건 용공이니 반미니 친공으로 매도하는 풍토가 횡행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이유로 국내 정치사에서 진정한 이념 대결은 자취를 감추고, 색깔 논쟁이라는 허상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김석준 상무도 보혁 논쟁을 금기 시하는 분위기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상무는 “정치인이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ㆍ노동ㆍ사회ㆍ복지 문제와 통일관, 국가관 등의 세부 정책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거전 유권자들이 이념적 성향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며 “현재 간헐적인 정책 성향만 드러날 뿐 일부 정치인 중에서는 실제로 좌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선전에 자신의 진짜 성향을 공개하는 보혁 논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이회창은 모두 보수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혁ㆍ색깔 논쟁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정치인 개인의 사상ㆍ 이념적 성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적(政敵)에 대한 일회성 흠집내기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정외과)는 “좌우 이념 논쟁은 자유시장 경제와 관치 계획경제 중 어느 정책을 신봉하는가 하는 식의 사상적 입장을 명백히 구분하는 작업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현재의 보혁 논쟁은 친북이냐, 반북이냐는 냉전시대 색깔론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임 교수는 “좌파라고 주장하는 이회창 후보나, 좌파로 낙인 찍힌 노 후보 모두 엄밀한 의미에서 보수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보혁 대결이 생산적인 정책 대결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치권에서 허용되는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장동진 교수(정외과)도 “보수와 개혁이라는 구분 조차 불분명한 정치인들의 추상적인 언어 공방만으로 진행되는 지금의 색깔 논쟁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며 “햇빛정책, 노사문제, 국가보안법 등 구체적인 정책 하나 하나에 대한 논의가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본래 정치인은 기득권을 가진 보수 세력인데, 이들은 주장이 자신의 정책적 색깔인지, 아니면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용석 변호사는 “여야 정치권의 보혁 논쟁은 흠집내기에 다름 아니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천민정치의 결과”라고 평가하며 “현재 논쟁이 특정 정치인 한명에 쏠려 있는데, 보혁 논쟁이 한단계 성숙하려면 개별 정치인이 아닌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행태와 노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논쟁 앞서 정체성 인식이 먼저

학계 일부에서는 보혁 논쟁을 제기 하기에 앞서 정치권들 먼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좌ㆍ우파, 보ㆍ혁, 개혁과 진보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나 식견 없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사상ㆍ이념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무례와 몰상식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외과)는 “여야 정치권들은 자신을 개혁 또는 보수로 규정하고 있는데 정확히 구분하면 국내에서 말하는 개혁은 보수에 가깝고, 보수는 수구쪽에 더 가깝다”며 “DJ 정권은 극우 보수의 첨병인 IMF로부터 ‘모범생’이라는 굴욕적 표현을 받은 것을 자랑하고 다니고, 이회창 전 총재는 그런 DJ 정권을 좌파라고 비난하는 비상식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손 교수는 “DJ 정권의 정책 기조는 마가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이미 실시한 생산 복지라는 신자유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보수”라며 “현행 정치권의 보혁 대결은 보수와 개혁이 아닌, 수구와 보수의 대결이라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앞으로의 이념 논쟁은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도권 정당이나 정치인 중에 진정한 좌파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대다수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보수나 중도라도 말하지만 그들 역시 진정한 의미의 보수나 중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보수나 중도를 외치는 사람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수구쪽에 더 가깝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성향 분석도 시대와 장소 외부적 여건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무척 난해한 작업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4/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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