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보·혁을 아느냐] 진보에 좌파딱지 붙이기 "그만"

기고/ 이번 대선에서 생산적인 이념논쟁 활성화 기대

민주당 경선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이른바 색깔 논쟁과 이념 논쟁의 불이 붙었다.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이념을 비판하고 노 후보 장인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게다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현정부를 좌파 정부라 비판함으로써 색깔 논쟁과 이념 논쟁이 대선 정국에서 중대 이슈로 부상했다.

색깔 논쟁과 이념 논쟁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다. 그것은 흔히 상대 후보와 그 가족의 과거를 문제시하거나 이념을 비판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개의 경우 좌익 전력이 들춰지거나 좌파 이념의 소유자로 낙인찍는다. 그리하여 그 사실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런 류의 논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것은 해방공간 좌파와 우파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잉태된 이후 중대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제기돼 왔다. 흔히 그 논리는 상대방을 '빨갱이'라 호명함으로써 '빨갱이 = 좌파 = 사회불순 세력'으로 매도하는 수순을 밟는다.


우파 이념 특권화 의도가 문제다

그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색깔 논쟁'은 좋은 의미의 말이 아니다. 남과 북이 분단돼 있는 상황 아래 이념적 지형은 자연 협소할 수밖에 없으며, 색깔 논쟁은 상대방이 갖는 이념의 색깔을 부각함으로써 정치적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색깔 논쟁의 핵심에는 다름 아닌 반공주의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 반공주의의 핵심은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에 친화적인 이념들을 '용공'으로 치부하고 사실상 불허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색깔 논쟁은 기실 좌파의 이념을 거부하고 우파의 이념을 특권화하는 것을 겨냥한다. 그것은 '좌파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 있는 매카시즘을 연상케 한다.

색깔 논쟁과 늘 함께 쓰여지는 말이 '사상 검증'이다. 사상 검증이란 특정 후보의 사상을 검사하고 증명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협소한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그것은 좌파 사상의 검증을 함축한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생각의 자유를 갖는 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상 검증은 우파가 좌파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검열함으로써 좌파의 활동을 제한해 왔다.

이런 현실이 뜻하는 것은 색깔 논쟁이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한 논쟁이라는 점이다. 분단체제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악용해 상대방의 이념을 공격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건강한 이념 논쟁을 활성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보수적 성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그 목표가 숨겨져 있다.

현정부의 성격을 둘러싼 이념 논쟁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현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 동안 신자유주의적이냐, 좌파적이냐 등 다양한 논란이 있어 왔다.

문제는 현정부의 이념이 개별 정책에 따라 다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좌파 정부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붙임으로써 모종의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대사회에서 이념 논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점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는 이익과 이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를 둘러싼 논쟁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대선에서 정당 및 후보의 이념, 노선, 정책에 대한 토론은 국민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알 권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념 논쟁이 이렇게 필요한 것임에도 그것이 색깔 논쟁으로 치장돼 소모적인 양상을 띠어 왔다는 데 있다. 자기보다 좀더 진보적인 후보라면 무조건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하는 상황 속에서 생산적인 이념 및 정책 논쟁이 활성화되는 것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점에서 그 동안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된 이념 논쟁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 상당수가 생산적인 이념 논쟁이 부재한 색깔 논쟁에 염증을 갖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이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대선의 경우도 그러했고 올해의 경우도 현재까지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끊임없이 반복하면 결국 통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이 땅에서 좌파는 무조건 부정돼야 한다는 신념에 기반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 비판과 객관적 시각 필요

좌파와 우파는 현대 정치사회의 양대 기둥이다. 서구의 역사에서 그것은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떤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오래 시간 동안 형성돼 왔다. 어느 나라이건 이런 좌우파의 대립과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평등의 조건 위에 성취될 수 있는 동시에 진정한 평등은 자유의 조건 위에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생산적인 이념 논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정치권의 일대 자각이 중요하다.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음에도 우리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좌파와 우파 사이의 불균형이 여전히 두드러진다.

좌파라 하더라도 개혁을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에서 혁명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그리고 최근 '제3의 길'을 제창한 중도 좌파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자기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방 이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존중하는 동시에 비판할 것은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정치사회가 성숙하는 지름길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와 연관해 언론과 공공영역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언론기관은 특정한 이념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신의 공공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념 논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다뤄야 한다.

색깔 논쟁에 편승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는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다른 후보는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공공영역이 언론기관의 사적 이익의 추구에 좌우될 때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의 통로는 봉쇄되고 언론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사회는 정작 탈(脫)이념의 세계로 나가고 있다.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대다수 나라들이 건강한 이념논쟁을 거쳐 탈이념의 세계로 나가고 있는 데 반해 우리사회는 여전히 이념 논쟁의 문턱에 서성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한 이념 논쟁은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만은 구시대적인 색깔 논쟁을 넘어서 생산적인 이념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시간 2002/04/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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