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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vs 김윤수, 입의 전쟁…가시가 튄다

이인제·노무현 후보 언론특보의 가시돋친 장외 입씨름

“오늘은 숙제를 안 내줘서 고맙습니다.”

4월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기자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노무현 후보진영의 유종필(45) 언론특보가 기자실을 나서던 이인제 후보측의 김윤수(48) 언론특보와 마주치자 대뜸 내던진 말이다.

당시 김 특보는 “당의 공식 조직인 연청(새시대 새정치연합 청년회)이 경선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론 이 고문이 발언한 ‘DJ 꼭두각시론’을 기자들에게 해명하던 참이었다.

거의 매일 기자실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음모론 자질론 등 각종 공세를 펴온 김 특보가 이날만은 노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비켜가자 그동안 맞대응을 하느라 분주했던 유 특보가 이런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이 두 후보간의 대결이 치열해지면서 두 언론특보 역시 후보의 ‘입’으로서 연일 가시돋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근 두 후보간의 대결이 격화되자 두 특보간의 대립각도 날카로워졌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언론을 상대로 후보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수시로 기자실에 달려와 서로 다른 스타일로 쟁점에 대해 해명하고 반박하는 일이다. 이같은 언론 접촉 창구 역할 때문인지 이 후보측의 김 특보와 노 후보측 유 특보 모두 기자 출신이다.


언론사 기자출신, 스타일 달라

김 특보는 조선일보, 유 특보는 한국일보와 한겨레 기자를 지냈다. 당 부대변인을 지낸 것도 공통점이다.

김 특보는 자민련 수석부대변인을, 유 특보는 국민회의와 민주당 부대변인을 경험했다. 두 사람 모두 국회입성을 시도하다 실패한 점도 비슷하다. 김 특보는 2000년 4.13 총선 때 자민련 간판을 달고 출신지인 경기 파주에서 도전했지만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에게 아깝게 무릎을 끓었다.

김 특보는 “1999년 9월께 DJP 공조 상태에서 자민련 고위당직자로부터 출마 제의를 받고 허락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 2월 DJP 공조가 깨진 뒤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으나 22%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고 말했다.

유 특보도 2000년 총선때 고향인 전남 영광ㆍ함평 출마를 준비하며 민주당 공천확정 직전까지 갔다가 현 민주당 대변인인 이낙연 의원에게 밀리는 ‘비운’을 겪었다. 유 특보는 “당시 특정계파의 계보가 아니라 밀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두 후보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은 다소 다르다. 서울대 문리대 출신으로 조선일보에서 주미특파원까지 했던 김 특보는 1992년 퇴사해 리베라호텔ㆍ백화점 사장 등 전문 경영인의 길을 걷었다.

또 부산매일 신문 사장을 거쳐 99년에는 인천 백화점 사장으로 스카우트되는 등 업계에서 한동안 잘 나가는 ‘유통맨’으로 활약했다. 그 뒤 총선에서 낙선, 자민련 수석부대변인으로 활동하다 2000년 8월께 경복고 6년 선배인 이 고문의 요청을 받고 함께 일하게 됐다.

김 특보는 부산매일신문 사장을 역임하던 1997년에도 이 고문측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는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유 특보는 노 고문과 특별한 인연은 없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언론사 퇴사 후 나산그룹 기조실 이사, 서울시의원, 국민회의ㆍ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그는 2000년 2월 공천 탈락 후 주변을 정리하다 지난해 6월께 노 고문 후원회장인 이기명씨 소개로 특보 일을 맡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 특보 본인은 “차기 정권재창출을 목표로 나름대로 후보를 찾다 보니 나와 추구하는 목표(동서화합)와 이념이 비슷한 노 고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기자 시절 MBC시사인형극 ‘단소리 쓴소리’의 방송작가로 화제를 낳았고 국민회의 부대변인 시절 논평이 장안에 회자되기도 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해 영국에 머무를 때 자신이 쓴 ‘굿모닝 DJ’라는 유머집을 김 대통령에게 전달한 적이 있으며 이를 인연으로 청와대 제2건국비서관을 거쳐 KTV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독특한 이력 만큼이나 서로 다른 스타일이라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김 특보는 중후하면서도 깔끔한 이미지가 주무기다.

백화점ㆍ 호텔 사장과 신문사 사장을 역임한 경력이 말해주듯 안정감 있는 분기를 갖고 자신의 논리를 전달하는 편이다. 유 특보는 말 자체가 느린 점은 있지만 전라도 특유의 입담을 곁들여 가며 촌철살인식으로 현안을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이들의 설전은 두 후보간의 대결이 격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했다.

김 특보는 3월20일부터 이틀에 걸쳐 노 후보의 재산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노 후보가 서민의 대변자인 양 하는 것은 위선” “노 후보는 서민의 탈을 쓴 귀족”이라며 첫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유 특보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비방에는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해버렸다.

그러나 김 특보는 “노 후보의 신고재산이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7명의 후보 중 두 번째(김중권 후보에 이어)로 많다”고 노 후보를 향해 계속 칼을 겨눴다. 그는 근거로 충북 옥천지역 생수공장 인수, 노 후보 형에 대한 명의신탁 의혹, 체어맨 승용차 이용, 지원팀 호텔 숙박 의혹 등을 내세웠다. 유 특보는 이에 대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급진” “매카시즘” 팽팽한 대립

급기야 김 특보는 3월22일 노 후보의 여자 문제 및 가족의 학력 조작 문제까지 들고나왔다. “문제의 여인은 노 후보가 변호사 시절 소송 의뢰인이었던 카센터 사장으로 알려져 있다”며 “노 후보 가족 중 한 사람이 학력을 위조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유 특보는 “노 후보의 여자 관계는 어머니 아내 딸밖에 없다”며 “유신 때나 떠돌던 ‘카더라’ 통신을 마치 사실인양 떠들어대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이후에도 양측은 색깔론, 음모론, 노 후보의 언론관련 발언 등을 둘러싸고 연일 사활을 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 특보는 지금도 “노 고문의 급진성이 부각되고 본선 필패론이 확산될 경우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고, 유 특보는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써먹던 매카시적 수법”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두 후보의 ‘의중’을 꿰뚫는 몇몇 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들 두 특보의 팽팽한 장외 입심 대결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정철 정치부 기자 parkjc@hk.co.kr

입력시간 2002/04/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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