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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고 뺨 맞으며 판 대우차

32개월간의 매각 드라마, 배신·음모에 휘둘리다 결국 GM품에

대우자동차가 마침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품에 안겼다.

1999년8월 전격적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결정으로 한국경제구조조정의 최대 딜레마로 떠올랐던 대우차는 2년8개월만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했다.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배우'들과 '연출자'들이 대우차 매각이라는'무대'에서 명멸을 거듭했고 치 떨리는 배신과 음모들이 교차하며 하나의 '작은 역사'를 만들었다.


GM은 포드와의 결별을 예견했나?

돌이켜 보면 GM은 우리에게 벅찬 협상 상대였다.GM은 1970년대 대우차의 전신인 GM코리아와 새한자동차에 대한 공동경영권을 갖고 있었고 1992년까지 대우차의 신차 개발과 해외마케팅에간여했다.

대우차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대우차를 둘러싼 주변환경에도 익숙했다.한국 정부나 채권단의 판단기준과 한계,'한국적'사고방식에도 통달했다.게다가 GM식 세계경영이 배출해낸 기업인수합병(M&A) 전문가들은 충분히 노련했다.

복싱경기로 치면 GM은 철저하게 링외곽을 돌며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했다.'찬스'가 왔다 싶어도 쉽게 나서지 않았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던 GM과의 협상중 오늘의 얘기는 2000년9월15일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 발표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지난 여름'을 나는 알고 있다=9월17일 오호근 전 대우계열구조협 의장은 GM의 앨런 페리튼 아태지역 본부장을 서울 힐튼호텔에서 급히 만났다.

"GM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테니 협상을하자"(오의장)"대우차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다.하지만 그 전에 포드가 왜 대우차 인수를 포기했는지 알고 싶다"(페리튼 본부장)

페리튼은 그해 6월 대우차 국제입찰에서 포드에 밀렸지만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마치 포드와 대우차의 파경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듯이.포드의 실사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디트로이트의 GM 수뇌부는 "GM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쨌든 GM은 유일한 원매자였고 우리 정부와 채권단은 손에남은 단 한장의 카드를 들고 어쩔줄 몰라했다.

9월27일 자리를 바꿔 홍콩 샹그리라 호텔에서 극비협상이열렸다.

우리측에선 오 의장,한영철 대우차 기획실장(현 볼보트럭사장),최익종 산업은행 대우팀장(현 현대팀장)이 나섰고 GM측에선 루돌프 슐레이스 아태지역 사장,마르코 모스카 피아트 부회장과 페리튼 본부장이 참석했다.

GM측은 여전히 미적거렸다.관심은 있는데 인수할지 여부는 생각해봐야겠다는 식이었다.그러면서 포드가 가져갔던 정밀실사 자료를 계속 요구했다.

그것은 1999년말 자신들의 수의계약을 좌절시키고 포드를 끌어들여 국제입찰을 선택했던 우리 정부와 채권단에 대한 준엄한 '보복'이기도 했다.

GM의 뜸들이기는 2001년 5월말 인수제안서를 공식 제출할 때까지 무려 9개월이나 이어졌다.


양해각서는 굴욕적인 항복문서

▲ 굴욕적인 양해각서=2001년 9월21일 마침내 GM과 채권단간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GM과 채권단이 각각 4억달러 및 2억달러를 출자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이 대우차 국내외 자산을 총 20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이었다.채권단은 매각대금이 20억달러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GM이 내는 돈은4억달러였다.

포드가 한때 70억달러까지 제시했던 대우차의 가치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게다가 대우차의 핵심이자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부평공장은 인수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이었다.당초 GM이 5월에 제출했던 인수제안서는 양해각서상 가격조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우리측 협상실무자들은 흥분한 나머지 "협상을 깨야한다"는 주장도 개진했다.

GM은 압박수위를 조금 낮췄다.우리측 협상단의 최대 고민이'헐값 매각'시비라는 것을 알았기에 어느 정도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하지만 부평공장은 끝내 가져가지 않았다.양해각서는 대우차 매각협상과정에서 분명 진일보한 것이었지만 우리측에서 보면 '항복문서'의 성격이 강했다.

▲'우발채무를 해결해주시오'=양해각서 체결이후 '연내 본계약 타결'을 장담하던 채권단에 GM이 비수를 날린 것은 2001년 12월 12일.페리튼 본부장은 산업은행 한대우 팀장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대우차 해외법인들의 잠재 우발채무가 15억달러나 된다.이문제를 해결해줘야 본계약 타결이 가능하다"(페리튼 본부장)"그럴리가....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나.믿을 수 없다"(한팀장)

GM이 포착했다는 우발채무는 대우차 본사와 해외법인간 이전가격 조작으로 해외 세무당국으로부터 추징당할 수 있는 세금과 각종 자산 평가액의 감액분을 합친 것이었다.GM이 우발채무 문제를 제기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채권단은 엄청난 규모에 질리고 말았다.

GM은 새로운 인수모델을 만들어야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본계약 협상은 배타적협상 종료시한인 2002년 1월20일을 넘기게 된다.


발목잡힌 GM, 산업은행 초강수

산업은행의 강수=2002년 2월6일 GM측이 새로운 인수 제안서를 보내오자 산업은행은 강공 드라이브를 선택한다.GM은 우발채무 해소는 물론 인수범위 축소와 3억5,000만달러의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산업은행은 '양해각서의 기본 틀을 깨면 협상을 깰 수 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3월 중순 양측은 힐튼호텔에서 나흘간의 마라톤협상을 벌였다.이번에는 GM이 물러설 차례였다.

GM도 판을 깨기에는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있었다.이미 대우차 인수를 위해 최소 1,000만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한 상태였고 페리튼 본부장을 비롯한 GM내 아시아지역 임원들은 '대우차 인수 실패'가 야기할 본사의 '문책'을 걱정하고 있었다.

GM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 우발채무는 일정부분 해소해주겠다는 채권단의 제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은행은 내친 김에 한걸음 더 나갔다.양해각서상 6년내 인수를 검토하겠다는 부평공장을 조기 인수해달라고 요구했다.이미 신설법인 사장까지 내정한 GM은 부평공장 처리문제가 한국시장에서 자신들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GM은 생산성 품질 노사관계 등의 몇 가지 조건을 걸고 조기인수에 합의했다.

비록 산업은행의 막판 강수로 본계약 타결은 좋은 모양새를 갖췄지만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독주에 오히려 부담을 느낀 GM측으로부터 약간의 '선물'을 받은 꼴이다.GM은 압도적으로유리한 위치에서 대우차 협상전선을 주름잡았고 우리는 실리 대신 명분과 모양새에 치중해야 했다.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본계약 타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GM은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채권단은 칼날을 쥐고 있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생존능력을 상실했던 거대 부실기업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가야 할 한국경제의 숙명이었다.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입력시간 2002/04/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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