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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 대통령, 미국 대통령, 그리고 金正日

[서평] 우리 대통령, 미국 대통령, 그리고 金正日

언론의 진실 추구 임무와 관련해 지난 여러 해 동안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모든 현실은 어떻든 인간의 구성물이라는 주장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사회 구성주의가 저널리즘 연구에 도입된 이후 이런 주장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언론이 보도하는 뉴스는 실제로 일어난 현실의 반영 또는 복제가 아니라 '언론에 의해 선택되고 해석된 현실', 다시 말해 언론의 뉴스 틀(news frame)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언론이 보도하는 현실은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언론의 선택과 처리 과정을 거쳐 구성된 측면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즉 현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실재하는 현실, 다시 말해 인간의 주관이나 사회적 조건, 언어의 구속을 받지 않는 객관적 사실도 존재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록 객관적인 사실은 부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도 아니면 현실을 읽는 객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현실, 진실, 지식은 객관적일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여기에 극단적 사회 구성주의로 불리는 탈(脫)현대주의가 나타나 그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즉 모든 지식(뉴스 포함)은 다양한 가정 위에서 주장되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는 더 이상 특정하고 유일한 판단의 범주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탈현대주의는 '지시 대상(referent)이 없기 때문에 진실도 없다'는 식의 반(反)표상주의로까지 흐르고 있다. 언론이 생산하는 지식과 이미지는 지시 대상 없이 가공된 인공물(simulacra)이기 때문에 사실도 없고 진실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장만 있고 사실적 근거가 약한 보도조차도 접근하는 이론적 시각이 다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뉴스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실이란 인간의 주관 및 언어의 매개와 상관없이 객관적,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및 행위를 말한다. 그런 사물이나 행위에 대해 상징(언어, 영상 등 기호)을 사용한 사실에 대한 진술(proposition)이 나오며 그 진술이 사실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를 따지는, 즉 진실을 가리는 평가적 명제(meta proposition)가 나온다.

그만큼 진실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며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실체(사실)가 있다는 전제를 가정하고 끈질긴 취재 노력을 통해 그것에 가급적 접근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전언론인 박용배씨가 최근 주간한국의 '어제와 오늘'에 기고한 글들을 추려 그의 네 번째 칼럼집 '우리 대통령, 미국 대통령, 그리고 김정일'을 펴냈다. '우리 대통령...'은 이전의 그의 칼럼집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된 면모가 보인다.

우선 그의 관심 영역이 '남북문제'로부터 역사와 통치 행태의 비교분석, 언론의 역할까지 크게 넓어졌다. 그러면서도 현실 적합성이 높은 글 주제를 잘 골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관련 사실들을 재미있게 조명하고 있다.

또한 관심 영역의 확대와 더불어 그의 독서 범위도 크게 넓어졌다. 그가 글 한편을 쓰면서 얼마나 열심히 관련 자료와 문헌을 챙기려고 노력했는지 글의 행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퇴사(退社)가 가져다 준 '시간적 한가함'을 허비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대목은 '사실에의 복무감(commitment)'이 강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스스로 서문에서 "나는 '어제와 오늘'에서 주장을 하지 않는다. 특히 나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것을 어제, 역사, 교훈을 통해 취재해서 전할 뿐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책은 사회적 사실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기자, 사회과학자, 역사학자의 으뜸가는 윤리 규범이 사실을 취재, 발굴, 수집함에 있어서의 근면성(assiduity), 사실을 보고함에 있어서의 정직성과 신중성(scrupulosity), 그 사실의 배경 구조를 밝히는데 있어서의 불편 부당성(impartiality)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그의 글은 때로 거칠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일독(一讀)을 권한다.

이민웅 한양대 교수ㆍ언론학

입력시간 2002/04/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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