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이트] 엄정화, "과감함 베드신? 멋있잖아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9년 만에 스크린 복귀

소개팅에 나온 두 남녀. 여자는 다소곳하고 남자는 세련됐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가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다. 데이트 코스는 커피숍에서 영화관, 다시 술집으로 이어지고…. 심야버스도 끊긴 늦은 시간, 그녀가 말한다. “택시 타나 여관 가나 마찬가지일 거 같네요.”

과감한 베드 신과 도발적인 대사가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싸이더스, 유하 감독)’의 내용이다.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한 성 문화와 결혼 따로 연애 따로 보는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영화 스토리상 빈번하게 등장하는 섹스 장면. 호기심을 끌 만큼 자극적이지만 관객들이 진짜 환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섹시 스타인 엄정화(31)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1993년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한 이후 9년 만에 나선 스크린 나들이다. “영화가 꼭 하고 싶다 생각했을 때 이 시나리오가 들어왔죠. 노출신이 많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기회라고 생각해 도전했어요. 제게 어울리고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부담스럽지만 기회라 생각

이 영화에서 엄정화는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명 디자이너 연희 역을 연기했다.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조건’을 만나기 위해 한 달에 열 번도 넘는 맞선자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감성을 자극시켜줄 로맨틱한 애인도 가지려 하는 당돌한 캐릭터다.

결국 조건 좋은 남자에게 시집간 후에도 옛 연인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저 ‘남들보다 조금 바쁘게 사는 것 뿐’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섹시하고 솔직하다는 면에서 영화 속 연희는 실제 엄정화와 많이 닮아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저 보기보다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성(性)에 있어서는. 첫 만남에서 여관으로 직행한다는 거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특히 이 남자 저 남자 비교하고 고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키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죠. 하지만 연희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으로 전해오면서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

영화를 마치고 난 뒤 결혼에 대한 그의 생각도 변했다. 우선 현실적인 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결혼. 어떤 조건에도 사랑이 비교될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안락한 환경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공허함을 결코 메울 수 없음을 그는 연희에게서 배웠다.

이 영화는 4월 26일 개봉하는데 때 마침 결혼 시즌이다. 결혼 제도의 허와 실을 되짚어보게 하는 이 영화를 결혼을 앞둔 연인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이 영화의 도발적인 논리에 ‘NO’라는 대답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내심 기대한다.


에로영화로 알려져 맘고생

영화 개봉을 앞둔 요즈음 그는 노출 장면이 지나치게 부각돼 ‘에로영화’ 로 알려진 데 대해 적잖이 맘 고생을 했다. 그저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세태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너무 선정적인 영화로 비춰지는 것이 싫다.

사실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데 가장 고심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 그를 오랫동안 아껴온 팬들이 이 영화에 출연하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렸던 적도 있다. 뜨거운 관심만큼 말도 많았던 베드 신. 그는 단지 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통한 사랑의 여운까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다. 일본 영화 ‘실락원’처럼.

영화도 노래도 모든 작업을 끝내고 돌아보면 늘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시사회를 지켜 보면서 화면에 비친 다소 푸석해보이는 얼굴에 내내 신경이 쓰였다.

7집 앨범 ‘다가라’를 내고 눈 코 뛸새 없이 바쁘게 활동했던 시기에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 앞으로는 절대 동시에 영화와 노래 활동을 병행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가수로서는 누구나 공인하는 ‘최고 인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영화에선 여전히 ‘중고 신인’. 연기에 대한 강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손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거의 없었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도 원인인 듯 했다. 그래서 데뷔작 ‘압구정동…’에서 함께 작업했던 유하 감독이 다시 찾아주었을 때 그는 뛸 듯이 기뻤다. 유 감독이 애착을 갖고 재기하는 영화에 그를 불러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첫 영화를 찍을 때 그는 연기의 기본에 대해 너무도 몰랐다. 솔직히 얘기하면 표정 연기는 물론 대사조차 매끄럽게 소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이번 영화에 연기 인생을 걸어본다. 이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연희에 어울리게 잘 했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영화 촬영을 끝내고 그는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지만 앞으로 새 음반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화 배우’와 ‘가수’. 그에겐 둘 다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그는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 어느 분야에서든 항상 ‘멋있다’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는 진정한 엔터테이너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엄탱이 별명, 촌스럽지만 정감 넘쳐

연예인으로 살아온 지난 10년. 이 시간은 그에게 화려한 이력들을 남겨주었다. 톱 스타란 타이틀도 자연스럽다. 그에게 10년이 넘도록 줄곧 따라다니는 촌스런 별명이 있다.

‘엄탱이’다.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이 호칭을 그는 좋아한다. “엄탱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 돌아보는 마음이 달라져요. 아주 친한 사람들만 그렇게 불러주니까요.” 팬들의 환호 뒤에서 외로움을 느껴온 그는 정(情)이 그립다. 엄정화는 최근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D증권 오너의 아들로 알려진 L씨와 지난해 봄부터 진지한 만남을 가져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결혼이 ‘미친 짓’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말 신중해야 하게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 하고 싶어요.”

배현정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17 18:30


배현정 주간한국부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