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으로 이르는 길은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인다. 한국적 미학의 극치다.”

저자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봉렬 교수(건축학)는 부산 범어사가 지닌 아름다움의 진수를 엉뚱하게도 진입로에서 찾았다. 수십 동의 건물로 가득한 대가람의 건축적 핵심으로 평범하고 수더분해 보일 수 있는 진입로를 꼽은 김 교수의 독특한 안목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그는 범어사의 진입로에 건축가의 치밀한 배려가 자연 풍광 속에 숨겨져 인공과 자연이 절묘하게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설명한다. “바닥을 세 개의 얕은 단으로 나누어 상승감을 강조한다. 그 뒤에 불이문이 있지만, 뻥 뚫린 문 뒤로는 끝도 모를 계단만이 계속될 뿐이다.

사람 키보다도 낮은 담장은 이 공간을 보호하려는 목적보다는 적막한 길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건축적 장치다…이 곳(가파른 계단)에는 수평감과 수직감이 교차하는 공간적 율동이 있고, 키 큰 나무 그늘 사이로 밝게 빛나는 음영의 어우러짐이 있다.”

괜찮은 책이다. 글도 좋고, 사진도 좋다. 편집 역시 짜임새가 있다. 선의 세계를 영상에 담아온 관조스님의 사진과 김 교수의 유려한 필체가 잘 어울린다. 이 책의 성격은 딱히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신앙의 만다라'로 불리는 전국의 가람을 미학적 견지에서 건축적 안목을 곁들여 가며 설명하고 있다. 불교건축 역사책도, 답사 안내집도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휴식처 같은 책이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법당이나 화려한 단청들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담겨진 실상을 찾기 위한 순례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범어사 화엄사 유가사 부석사 마곡사 해인사 화엄사 금산사 수덕사 법흥사 등 전국의 29개 사찰과 암자가 소개되어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4/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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