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도전] "부담있지만 대통령 아들 원칙대로 처리"

JP와는 연대 안해…보·혁구도로 가면 승리 확신

민주당의 노무현(56)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될 경우 전직 대통령의 일가 및 친인척 비리는 단호하게 처리할 것이며, 중임제나 내각제로의 개헌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이인제 후보의 사퇴로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처음 가진 주간 한국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선 본선 전략과 국정 운영의 비전을 상세히 털어 놓았다.

노 후보는 김 대통령의 세 아들을 포함한 친인척 비리 문제에 대해 “정치적 소신과 인간적 의리가 부딪힐 때는 정치적 소신을 우선해야 한다”며 “다소 마음은 아프겠지만 원칙은 훼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혀 김 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처리해 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노 후보는 그러나 “정치도 인간 관계라 도리가 있는 것”이라며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의리마저 저버리는 것은 너무 야속하다”고 덧붙여 대선 전략의 하나로 현 정권과의 차별성 부각을 위해 김 대통령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당선 후 대통령 중임제나 내각제로의 개헌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정치의 문제는 권력 구조가 아닌 정치 문화에 있다. 정치 문화가 잘 잡히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해 개헌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 노 후보는 “햇빛 정책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절대적 조건으로 신뢰, 인내, 그리고 주도성을 갖고 지속돼야 한다”며 “그렇다고 남북 정상 회담을 제의하는 식의 ‘이벤트성 정치 행사’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대선에서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해 JP를 포함해 이 지역에 기반을 둔 기존 정치 세력들과는 손을 잡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노 후보는 이번 대선의 승부처가 될 영남의 민심 동향에 대해 “영남 시민들은 김대중 시대와 노무현 시대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영남의 반(反) DJ 정서가 자신의 지지도를 하락 시키는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후보는 “영남 사람들이 민주당 정책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행 민주당 정강 정책은 그대로 이어갈 뜻을 비쳤다.

노 후보는 “이번 대선이 지역주의와 보ㆍ혁 구도의 양상을 띨 것”이라고 전망하며 “보혁 구도로 갈 경우 오히려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단언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이후 가진 이날 언론사와 가진 첫 인터뷰에서 노 후보는 1시간 내내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였다.

정계개편 서두르지 않겠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원동력이 된 노풍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요소를 들라면 정치인 중에서는 거부감이 적은 반면 호감도가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존 정치 질서의 변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희망과 욕구라는 시대적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라 봅니다.

권위주의, 지역주의, (이익만을 쫓아 다니는)몰이주의 같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된 것입니다. 정치를 혐오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의 변화 욕구가 폭발한 것입니다.”

-경선 중 국보법, 재벌정책, 언론관 등 사상ㆍ이념 문제로 곤혹을 치렀는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가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서 냉전 체제가 해체된 지 이미 십 수년 지났습니다. 이미 새로운 질서가 세계적으로 보편화 됐습니다. 이념 논쟁은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경선 후 정책 구도를 중심으로 한 정계 개편 추진 의사를 밝혔는데,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그리고 대상은 누구입니까.

“정계 개편은 한국 민주 정치와 민주당의 비전으로 오래 전부터 밝혀 왔던 것입니다. (이 기사가 언제 나가죠?)그런데 경선 과정에서 왜곡된 공격을 받으면서 돌출 발언 같이 돼 버렸습니다.

억울하죠. (정치적)상황이 반전되기 전까지는 찔끔찔끔 끄집어 내서는 안되게 됐습니다. 앞으로 당 내외에서 자연스럽게 공론이 돼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경선 중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정계 개편에 대한 의지를 수 차례 피력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다고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있어서 수세적 국면으로 몰렸습니다.

정계 개편은 어떤 면에서 필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가 먼저 말을 안 해도 어디선 가 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굳이 앞장서서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6월 지자체 선거가 여당 대선 후보로 치르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인데, 선거 승리를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좋은 후보 내서 전력을 다해서 이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 시민들은 그간 지역구도로 선거를 치러 시민들의 구미에 맞는 후보를 뽑질 못했습니다. 창조적 사고가 있고, 시민과 눈높이가 맞는, 친구 같은 시장이 당선돼야 합니다.

세일즈맨 같은 적극성도 있어야 한다. 부산 시장 후보로 문재인 변호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훌륭한 분입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나 시민의 호응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1~2명의 후보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선거에서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 중 한 곳에서도 시장을 당선 시키지 못하면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는데 아직 유효합니까.

“저는 아직까지 약속을 한번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신중히 검토해 내놓은 공약입니다. 분명히 책임 집니다. 울산의 전선이 꼬여 있고, 부산 경남은 모두 (승리할)자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다르게 민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남권 반 DJ 정서 문제 안돼

-영남이 대선의 승부처인 영남 지역 민심은 영남 출신인 노 후보와 반(反) DJ 정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반(反)DJ 정서와 친(親)노무현 정서가 충돌할 것 같지만 시민들은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대중 시대와 노무현 시대는 정치 형태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영남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남 사람들이 민주당의 정책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주의나 지역주의 같은 기존 정치 행태를 고칠 사람으로 저를 꼽고 있는 것입니다. 반DJ 정서가 저한테 악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북 TV토론회 때 ‘조만간 YS에 제스처를 취할 생각’이라고 밝혔는데 최근 YS측와 교감이 있었습니까.

“아직까지 어떤 접촉은 없었습니다. 간접적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만 듣고 있는 수준입니다. YS를 뵙겠다고 한 것이 영남(표심)을 위한 것이 (만나고자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옛날 소위 야당이라고 이름 지어졌던 민주 세력의 분열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 세력의 통합 시대를 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서화합 입니다. 실제로 두 분(DJ와 YS)이 손을 잡지는 않더라도 두 세력을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역사적 위치에 서겠다는 제 생각입니다. 한국 역사에서 정통 민주 세력을 복원 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이번 대선이 보ㆍ혁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본선에서 노 후보에 어떻게 작용하리라 예상합니까.

“(힘주어 강조하며)압도적으로 유리하죠. 보혁으로 가른다면 국민 중에 ‘내가 보수다’ 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일부 메이저 신문 몇 개가 보수라는 이름을 내걸어 마치 거대한 세력이 있는 것처럼 허장성세하고, 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아, 보수가 막강한 사회 주류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 그 사람들이 대변하는 논리는 보수의 논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부조리 시대를 누려왔던 수구적 기득권자들의 특권적 논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을 보수라고 말하는 한 보수가 설 땅은 없습니다.”

통합세력과 분열세력 대결 예상

-지역주의가 대선에서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십니까.

“이번 대선은 통합 세력과 분열 세력의 한바탕 대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역 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10년간 동서 통합의 길을 걸어온 (민주화) 통합 세력입니다. 지역 감정을 부추겨서 정권을 잡아 보겠다는 분열 세력에 맞서겠습니다. 그들(분열 세력)은 새로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노풍의 발원에는 자원 봉사자들의 힘이 컸는데, 당 차원의 대선 조직이 만들어질 경우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다수가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 경선이 끝나면 대부분 자기 갈 길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전문 직업 정치인 몇 분만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 8개월간 대통령 후보로서 혹독한 검증이 있는데 우려되는 점은 없습니까.

“검증해야 할 비밀은 이회창 총재가 저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 후보와 저는 성향 자체가 다릅니다. 이 후보는 비공개가 많지만 저는 대부분 공개합니다.”

-역대 여당의 대선 후보들은 현정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는데 노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입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째가 정치적 소신이고 두 번째가 의리 입니다. 정치적 소신과 인간적 의리가 부딪힐 때는 정치적 소신을 우선해야 하지만 정치도 인간관계라 도리가 있습니다.

매를 들면 철저히 성역 없이 수사해 밝혀야 하는 것은 정치의 원칙이기 때문에 가져가야 합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을 죽일 사람처럼 몰아치며 ‘나는 그와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태는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얼마 전만 해도 너나없이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줄 서지 않았습니까. 저도 ‘장관하나 시켜 주실까’ 싶어서 전화도 공손하게 드리고 그랬는데… 임기 끝나고 부담된다고 뒤에서 치는 사람은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전임관련 비리 단호하게 처리할 것

-그럼 전임 대통령의 자녀 등 친인척 비리를 단호하게 사법 처리하겠다는 뜻입니까.

“(두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며)원칙은 훼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할 일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인간적으로 함께 부담을 느끼지만…”

-이인제 후보의 이탈로 충청권이 흔들리는데, JP와 연대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다른 대책을 강구 하겠습니다. 충청도 출신의 정치인 중에서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새 시대 정치 방향에 부합되는 인물들을 키워 나가며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기존 지역 인물에게 종주권을 인정하는 것 같은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3김 청산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정치권에서 4년 중임제, 내각 책임제 등 개헌 논의가 있는데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개헌을 할 생각이 있습니까.

“무거운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개헌에 대해서는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 판단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없습니다.

또한 개헌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권력 구조가 아닙니다. 정치 문화가 더 중요합니다. (현행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도)정치 문화가 제대로 되면 가능합니다.”

-선거가 너무 자주 있어 국력 낭비라는 지적도 있는데.

“선거를 국력 낭비라고 보는 시각을 버려야 정치가 바로 됩니다. 선거는 국력 낭비가 아닙니다. 축제 입니다. 돈 쓰고 봉투로 표를 얻으려는 타락 선거를 머리 속에 두니까 선거가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투명하게 하면 됩니다. (돈 선거는) 유신시대 이후 군사독재 시대의 발상입니다”

이벤트성 대북정치 하지 않겠다

-그간 햇빛 정책 등 DJ 정권의 대북 정책을 지지해 왔는데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현 대북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입니까.

“햇빛정책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대북 정책은 신뢰, 인내, 그리고 주도성을 갖고 지속돼야 합니다. 긴 안목과 인내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합니다. 여기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조율해 가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되면 김 대통령처럼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할 의사는 있습니까.

“저는 그런 이벤트성 정책은 잘 안 합니다. 큰 방향을 잡아 추진하다 보면 그 안에 당연히 남북 대화도 들어 있게 되는 것이지요. 미리 한방 날리는 식으로 제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미국에서 노 후보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는데.

“우리가 자주성을 생각하면 꼭 미국과의 갈등을 먼저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여러 협약을 통해 기존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질서는 정권이 바뀐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한미 관계는 함부로 급선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조금씩 대등한 관계로 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되면 무조건 미국을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혹시 미국이 기분 나빠하면 어떨까 하고 노심초사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국익을 기준으로 담담하고 냉정하게 처리하면 됩니다. 미국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지레 겁먹고 그러는 것은 정말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전반적인 국정 운영 정책은 DJ 정권과 같이 갈 것이라고 했는데, DJ정권과 차별적인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저는 김 대통령처럼 절반 지지가 아닌, 동서 지역에 걸친 전국민이 지지하는 통합 대통령이 될 것 입니다.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해 나가는 스타일도 다릅니다.

저는 각료나 비서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쌍방향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 조금 불안하더라도 웬만한 것은 다 위임 하겠습니다. 큰 흐름의 기조에 대한 합의만 되면 구체적 정책 집행은 대폭 위임할 것입니다.

또 노사 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풀어나가는 현장성을 추진할 것입니다. 계보나 측근을 통한 폐쇄적 정치가 아닌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치를 펼쳐 나갈 것입니다.”

부산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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