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도전] 이제부터가 혹독한 시험이다

국가 통치능력 검증이 관건, 중산층 표심 향배가 열쇠

노무현(56) 후보의 본선 경쟁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노 후보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민주당 내에서 조차 아직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한 국가의 수반으로서 갖춰야 할 정치적 연륜이 짧고, 대선 판에서 한번도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불안하다는 평가가 상당수 있다.

노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며 일약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은 3월 중순 광주 경선 이후로 불과 한 달여 남짓. 그전까지만 해도 노 후보는 정치적으로는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에서 당선 보다는 떨어진 적이 더 많은 개혁적 성향이 강한 일개 정치인에 불과했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비전과 정책, 리더십, 이념적 성향, 통치 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당내기반 취약, 외연 넓혀야

비관론자들은 노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도 그토록 호되게 당했는데 대선까지 남은 8개월여 동안 야당의 본격적인 흠집내기 전쟁이 전개되면 약점이 드러나 현재의 인기도가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간 노 후보는 개혁 정치인 편에 서서 급진적인 발언이나 의견을 피력해온 전력이 많아 이런 것들이 자칫 노 후보의 발목을 잡을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노풍은 ‘일진광풍’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이번 대선 경선에서 공식적으로 노 후보를 도와주었던 원내 의원이 천정배 의원 단 한명에 그쳤을 정도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경선 승리의 원동력인 노풍도 당 내부에서 스며 나온 자연스런 기류가 아니라, 노 후보 개인의 특징적인 정치 행보에 대한 인기도에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적 욕구가 맞아 떨어져 생긴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여야 정당 간 운명을 건 전쟁이 벌어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노 후보를 중심으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더구나 노 후보가 6월 지방선거 이후 어떤 형태로든 정계 개편을 추진할 뜻을 비치고 있어 변수는 큰 상태다.

지난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당내 기반이 허약해 대선 캠페인에서 당내 주류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패인의 한 원인이 됐었다. 이 후보가 당권과 대권 분리를 반대해 온 것도 이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노 후보의 바람이 놀랍긴 하지만 그것은 당내 경선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선은 찾잔 속의 태풍이 아닌 전국민적인 공감이 필요하다”며 “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기존의 단기필마나 독불장군식이 아닌 당 내외에서 이념, 정책, 인맥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혁적 이미지 등이 부동층에 호감

노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도 상당수 있다. 노 후보가 비록 당내 기반이 엷지만 그간의 정치적 처세가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랐다는 신선함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혁을 원하는 부동층의 표심을 이끌어 내는데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경선 전까지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가 한나라당 이 전총재에 뒤졌던 것은 문민 정부의 실정을 치유하리라 기대를 모았던 국민의 정부가 잇단 부패로 얼룩지면서 반(反)DJ 정서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존 정치 행태에 실망한 국민들이 정치 무관심층이 되었고, 그것이 민주당의 지지율 저하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번 노무현 돌풍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그 중에서도 기존 정치에 식상했던 중산층이 움직인 것으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들이 비교적 때묻지 않은 개혁 후보인 노 후보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다는 것이다.

수도권 출마를 접고 ‘지역 화합을 이루겠다’며 굳이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서 출마해 두 차례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 노 후보의 우직함과 뚝심이 이제야 비로서 유권자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권통합 운동, 3당 합당 반대, 막강한 언론과의 일전 불사 등 기존 정치인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신있는 정치 활동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존 정치권과 연계 고리가 적다는 점은 오히려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노무현 캠프를 이끌고 있는 국민대 김병준 교수(행정학과)는 “노 후보와 한나라당 이 후보간의 대결로 압축될 이번 대선은 지역 연고주의와 보혁 대결 구도라는 두개의 거대 요소가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지역 변수는 앞으로 전개될 정계 개편에 따라 갈릴 것이고, 보혁 구도는 IMF 이후 중간층이 무너지면서 변화를 갈망하는 층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기존 정치 구도가 계보에 매달려 대중의 신념과 이해 관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해 국민들은 정치 개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이번 노풍의 발원에서 보듯 국민들은 개혁의 주도자로 노무현 후보를 첫손 꼽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도 “수구적 특권을 누려온 일부 신문이 마치 보수가 우리 사회의 주류인 양 허장성세하고 있지만 이 땅에 누구 스스로를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고 반문하며 “보혁 대결로 갈 경우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YSㆍDJ와의 관계설정에 골몰

이번 대선의 승패는 영남권 민심에 달려 있다는 데 여야간의 이견이 없다. 노 후보측 역시 영남권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가 정권 재창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앞으로 충청권을 텃밭으로 삼고 있는 이인제, JP와의 향후 관계 설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노 후보가 대선 경선 도중 YS 등 민주화 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정계 개편을 주장한 것도 자신의 연고지이자 승부처인 영남권에서 보다 확고한 지지를 담보 받고자 하는 전략적인 측면이 강하다. 노 후보의 경우 YS와의 연대를 통해 6월 지자체 선거에서 부산이나 경남에서 광역자치 단체장을 당선 시킬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은 최근 들어 노무현 지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 후보가 영남권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DJ와의 관계 설정이다. 노 후보는 자신이 광주 경선 1위를 거쳐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오는 순간, 호남권의 표는 사실상 손에 넣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영남권에서 어느 정도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영남권 정서의 기저에는 반 DJ 정서가 강하게 깔려 있다. 따라서 영남권을 잡기 위해선 YS와 손을 잡는 대신 DJ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결국 이것은 노 후보가 민주당 차원에서 대선을 치르는 데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노 후보가 지역 구도를 뛰어넘는 정계 개편을 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태생적 한계인 민주당의 호남 색채를 최대한 희석 시켜 영남 민심을 잡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노풍이 정치 무관심 층인 우리 사회 중산 계층들에게 얼마나 폭 넓게 부담 없이 착근할 수 있는가가 노무현 후보의 본선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24 15:24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