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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임하는 제럴드 맥클록린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

한국은 결코 지루할수 없는 나라

“미국은 한국 대통령선거를 앞둔 각 정당의 후보 경선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 할 뿐 입니다. 최근 ‘미국이 노풍(盧風)에 대해 우려감을 보이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곡해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미국이 한국 한 정당의 대선 후보를 싫어하거나,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특정 언론사에 대해 뭐라고 얘길 할 부분도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은 '노풍'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5월1일 이임을 앞둔 제럴드 맥클록린(49ㆍ일등서기관)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관은 22일 서울 남영동 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통해 격앙된 표정으로 이같이 말하며 “한국만큼 매일같이 역동적인 사건과 뉴스가 넘치는 곳은 세계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일하기에 ‘결코 지루할 수 없는(never bored) 나라’라며 엄지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업무스타일도 극히 ‘한국적’이다.

‘폭탄주’ 5잔이면 한계 상황인 맥클록린 공보관은 ‘노풍’을 둘러싸고 미국측의 표정을 기사화한 특정 언론사에 대해 항의 보다는 그 언론사 고위 관계자들과 밤 늦도록 폭탄주를 마시며 서로의 흉금을 트고 오해를 풀 줄 아는 지한파(知韓派) 외교관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에도 한 신문이 게재한 한미행정협정과 관련한 사설에 대해 이례적으로 미 대사관 대변인의 이름으로 ‘독자투고’를 통해 오해 소지가 있는 내용들을 일일이 나열하며 반박 문을 신문에 싣기도 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3년 가까이 미 대사관의 ‘입’의 역할을 해온 맥클록린 공보관은 주한 미 대사관의 역대 어느 공보관 보다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의 한국에 대한 첫 인연은 선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 직후 이화여대 재건사업에 참여한 부친을 따라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이를 계기로 평화봉사단에 자원해 국내에서 1979년부터 3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결핵퇴치 봉사활동을 했다.

미 국무부의 외교관이 된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1년간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1987년부터 2년여간 광주 미 문화원장으로 근무했다.

한국에서 봄을 맞는 것이 올해로 아홉번째라는 맥클록린 공보관은 “한국생활 중 사회ㆍ정치ㆍ경제적 측면에서 3차례에 걸쳐 커다란 물결을 체험했다”며 “1987년 분출한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90년대 말 외환위기의 터널을 거치면서 일기 시작한 거센 경제개혁 바람과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 등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계절’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그는 ‘반미(反美)감정’에 대해 마치 ‘준비된 대변인’처럼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만 해도 군사정부에 대해 가졌던 시민들의 반감이 갑자기 미국으로 그 방향을 바꾸더군요. 결국 군사정부의 뒤편에는 미국이 있다는 식의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결국은 ‘반미 감정’이란 극히 감정적인 접근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저항의식이 뿜어져 나온 것이죠.”

그는 한국인들의 특징으로 사소한 정이 많고, 사귀면 사귈수록 ‘간이라도 빼 줄 만큼’ 신뢰감이 커져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점을 꼽았다.


한미관계, 숲 못보는 우 법해선 안돼

그러나 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동계 올림픽 쇼트 트랙 경기판정, F-15K 차세대전투기 선정 문제 등으로 고조되고 있는 일련의 ‘반미감정’에 대해 자칫 사소한 다툼(minor dispute)들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대의를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올까 걱정했다.

“지난해 9ㆍ11 뉴욕 테러 대참사 이후 한국민들이 보여준 지지와 동정에 누구보다 큰 감동을 받았다”는 맥클록린 공보관은 “한ㆍ미 교류의 범위가 국제정치와 무역 뿐 아니라 문화ㆍ교육ㆍ체육은 물론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까지 확대되면서 이해관계가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혔고 이 바람에 사소한 다툼과 오해가 국가간의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ㆍ미 관계가 지나치게 ‘나무’에만 집착해 큰 ‘숲’을 보지 못하는 대실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한ㆍ미 수교 100주년도 이미 넘었지만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부분이 많은 만큼 미국 대사관 역시 미국의 정책을 한국 언론과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 직전 판문점을 통해 방북 했던 그는 당시 행사준비를 주관하는 미국측 구심점으로 뒷편에서 묵묵히 활동했다.

최근 제네바와 뉴욕에서 이뤄진 북미대화에 참석했던 북한측 고위 관계자들과도 안면식이 있을 만큼 북한관계에도 식견을 가진 그는 “최근 북미 대화의 분위기가 차츰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공’이 북한측으로 건너가 있는 상태”라며 북미대화의 재개를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한국불교에 심취, 이임행사도 치악산서

지난 2년간 단 한 차례도 휴가를 가지 못했을 만큼 ‘일 벌레’로 빡빡한 스케줄을 보낸 맥클록린 공보관은 다음주 이임을 앞두고 함께 일해온 공보과 직원들에게 제안한 ‘고별’ 이임 행사장은 다름아닌 강원도의 치악산이다.

사무실 곳곳에 불화(佛畵)를 걸어놓을 만큼 불교에 심취해 있는 그는 지난 주말 직원 14명과 함께 치악산의 상원사를 방문했다.

그는 즉석에서 고별사를 통해 “직원들 모두가 밤샘작업을 통해 일을 하고도 자신이 모두 일을 다한 것처럼 (미국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이 가장 미안했다”고 말할 만큼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솔직담백하고 수수한 성품의 소유자다.

가요 ‘사랑해’가 18번인 그는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한국어를 더 열심히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4대 조간신문은 물론 석간 신문까지 직접 읽고 클리핑할 만큼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갖췄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한국 음식 중 삼계탕을 좋아하고 스스로 ‘애처가(caring husband)’를 자처하는 그는 고향인 미국 동부의 코네티컷 주 브릿지포트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 부인 경호 맥클록린씨와 20여 년 전 만나 결혼했다.

아들 브라이언(15)군은 한국 재직시 얻었다. 후임지인 콜롬비아 보고타로 떠나는 그는 “한ㆍ일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다”며 “한국을 떠나도 평생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며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맥클록린 공보관의 후임으로는 광주문화원장을 역임한 여성 공보관 모린 콜맥 씨가 8월1일 공식 부임한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4/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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