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내각 용기있는 사퇴

유고 내전 당시 평화유지 임무 소홀에 도의적 책임

네덜란드 내각이 4월 16일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자행한 '스레브레니차 학살'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네덜란드군은 1995년 세르비아군이 스레브레니차의 이슬람 주민 7,500여명을 학살할 당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국이 파견한 평화유지군의 임무 소홀을 이유로 서방국가가 내각 사퇴를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빔 콕(62)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총사퇴는 4월 10일 네덜란드 전쟁기록연구소가 5년간에 걸쳐 조사한 학살사건에 관한 수 천쪽에 달하는 보고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이뤄졌다.

이 보고서는 "네덜란드 정부가 피신처로 찾아온 3만 여 명의 피난민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권한이나 무기도 없이 병력을 스레브레니차에 파견, 학살사건을 방조했다"고 비난하면서 그 책임을 네덜란드 정부와 유엔에 돌렸다.

당시 이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임무를 맡았던 네덜란드가 위험한 지역이라는 수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력 110명만을 파견해 비극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7일자 '네덜란드인의 용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마침내 해냈다"면서 "콕 내각은 그 어떤 서방국가도 갖지 못한 용기로써 1990년대 보스니아 인종학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나눠 졌다"고 평가했다.

서방 언론들도 대부분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목도하고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처음으로 도의적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범을 보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콕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국제 사회는 실체가 없으며 그래서 책임도 질 수 없다.하지만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질 것이다”라며 사퇴했다.

지난해 8월 3선 연임이 거의 확실한 상태에서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올 5월 총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떠날 때를 아는 정치인’이란 말을 들었던 그는 이번 사퇴로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얻었다.

1994년 총선 승리로 18년 기민당 집권을 끝내고 총리에 오른 그는 지난 8년 동안 3당 연립정권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타협의 예술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잇단 혁신적 입법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2000년 10월 매춘부 공식직업 인정, 11월 세계 최초의 안락사 인정, 지난해 4월 동성간 결혼과 입양을 법제화하는 새 혼인법 발표 등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위적 사회법을 통과시켰다.

입력시간 2002/04/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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