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극우파 대 약진 좌·우 동거시대 막 내려

시라크·르팽 결선투표 진출, 조스팽 총리 정계은퇴 밝혀

4월 21일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 제1차 투표에서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극우파인 장-마리 르팽 국민전선(FN) 당수가 승리하고 좌파인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다음 달 5일 2차 결선투표에는 시라크 대통령과 르팽 당수가 진출, 대권을 다투게 됐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스팽 총리는 충격적인 패배를 감수하게 됐다. 결과 발표 직후 조스팽 총리는 다음 달 결선투표가 끝나는 대로 총리직을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은 1969년 이후 30여년 만에 대선 결선투표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 르팽 당수는 극우민족주의적 공약을 앞세워 지난 3차례 대선에 도전했다 실패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불법 이민자 즉시 추방, 사형제 부활, 유로화 통용중단 등의 극우적 공약을 제시했다.

2차 투표 결과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21세기 들어 처음 실시된 프랑스 대선의 실질적인 승자는 르팽 당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결선 진출은 그 동안 프랑스 정계를 지배해온 좌우 구도를 감안할 때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

특히 그의 급부상은 프랑스 정계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미약한 부분적 현상으로만 치부됐던 프랑스내 극우파의 실재를 드러냄으로써 국제사회는 물론 프랑스 국민에게 경종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는 1928년 해안도시 모르비앙에서 태어나 파리 법과대학을 다녔으며 49년부터 3년 동안 극우학생단체인 '라 코르포'의 회장을 맡았다. 53년 알제리 사태와 57년 인도차이나 전쟁 때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72년 FN을 창당했다.

74년 대선에 처녀 출마했으나 1차 투표 지지율이 0.75%에 그쳤고 81년에는 후보등록에 필요한 후원자 서명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83년 지방의회선거, 84년 유럽의회 선거를 계기로 지지세력을 넓혀 88년 대선에서 14.4%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고 95년 대선에서도 15%의 지지를 얻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98년 자신의 아내를 당권 후계자로 삼으려다 당내 2인자인 브뤼노 메그레가 분당해 공화국운동연합(MNR)을 결성한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종말의 길을 걷는 듯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시장, 지방의원 등 피선 공직자 500인 이상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대선후보 지지서명을 받지 못해 한때 출마조차 불확실했었다.

하지만 그는 9ㆍ11테러 사태 이후의 국민 불안심리, 최근 증가하고 있는 범죄, 치안불안 등의 새로운 기류를 타고 재기에 성공했다.

입력시간 2002/04/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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