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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3 게이트] 김홍걸의 미국생활

[홍3 게이트] 김홍걸의 미국생활

공부보다는 국내정치에 더 관심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 금품수수와 이권개입의혹을 받고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아들 김홍걸(39)씨. 그는 최근 자신과 관련된 각종 비리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은 채 사실상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호화주택 파문을 일으킨 팔로스버디스의 집에는 현재 부인 임미경씨와 두 아들(8세, 6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는 자동응답기 소리만이 새어나올 뿐 홍걸씨의 행방은 어디에서도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말이 없는 내성적 성격

홍걸씨가 미국유학을 온 것은 1993년 10월께. 고려대 불물과 82학번인 그는 91년 결혼한 부산 출신의 부인 임미경(33)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LA남동쪽에 있는 리버사이드대에서 언어연수를 하던 홍걸씨는 94년 남가주대(USC) 국제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거처를 학교와 비교적 가까운 글렌데일의 한 월세아파트로 옮겼다. 이때만 해도 그가 타던 차는 흰색 중고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생활 초년병이었던 홍걸씨가 토랜스에 단독주택을 매입한 것은 95년5월의 일이다. 학교까지는 차로 30∼40분 거리. 집 값은 알려진 대로 34만5,000달러였는데 이중 8만7,000여달러를 계약금으로 내고 25만8,000여달러를 은행에서 융자를 얻었다.

바닷가에서 20분 정도 내륙 쪽에 있는 이 집은 방이 3개로 네 식구가 살기에 적합한 전형적인 중산층 주택이었다. 유학생신분으로 집을 매입한 사실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신범 전 의원이 주장했던 호화주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홍걸씨의 이웃들은 "김씨가 색 바랜 흰색 소형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면서 "그가 한국의 대통령 아들인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홍걸씨를 만났던 사람들은 그를 '평소 말이 없고 고집이 세며 내성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가끔씩 LA한인타운의 카페에 나타나 지인과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극히 제한된 사람들과 접촉을 가졌을 뿐 대인관계의 폭은 넓지 않았다.

이같은 성격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나 별 변화가 없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홍걸씨의 조용한 성격은 공항에서도 유명하다. 모 항공사 관계자는 "김홍일 의원은 수행원들이 미리 공항에 나와 탑승수속을 한 뒤 출발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타나는 데 홍걸씨는 혼자 나타나 탑승수속을 마치고는 말 없이 사라져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전했다.

홍걸씨와 비교적 가까운 인사들은 그의 '닫힌' 성격을 파란만장한 성장 환경의 탓으로 설명한다. 초등학생 때는 납치사건, 중학교 때는 투옥, 고등학생 때는 가택연금과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으니 어린 마음에 받았던 충격과 마음의 상처가 오죽했겠느냐는 것이다.

김 대통령도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할 때 홍걸씨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니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며 홍걸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홍걸씨의 미국유학은 93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홍걸씨는 82년 12월 아버지가 사형집행 정지처분을 받고 미국 망명길에 오를 때 고대 불문과를 휴학하고 어머니 이희호 여사와 작은형 홍업씨와 함께 미국에 왔다.

한동안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워터게이트 아파트에 살면서 미국생활에 적응하던 홍걸씨는 얼마 후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가 당시 총장으로 있던 에모리대에 입학했다. 당시 한완상 전 부총리, 문동환 목사의 자제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었는데 아버지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는 게 당시 측근 인사들이 전하는 말이다.

홍걸씨는 1985년 초 아버지가 귀국한 뒤에도 계속 미국에 남아 공부를 했으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88년께 귀국해 결국 미국 유학생활을 졸업장 없이 마감했다. 홍걸씨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인사는 "당시 홍걸씨는 그다지 공부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한번은 홍걸씨가 한국서 발간된 시사잡지를 탐독하면서 특히 정치기사들을 관심 있게 읽자 이 여사가 '왜 하라는 영어공부는 안하고 한국정치 기사들만 열심히 보는지 모르겠다'며 홍걸씨가 혹시 정치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했었다"고 회고했다.


LA의 측근인사들

홍걸씨가 93년 유학을 왔을 때 그를 측근에서 도와준 인사들로 80년대 초 김 대통령의 미국망명시절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통해 교분이 있었던 최병구 조숭 강대인씨 등이 꼽힌다.

특히 최씨는 홍걸씨가 95년 5월 토랜스에 34만5,000달러 짜리 단독주택(4788 Steele St.)을 장만할 때 직장보증을 섰던 인물이다.

최씨는 홍걸씨가 은행융자를 받아 주택장만을 할 수 있도록 홍걸씨 부부를 자신이 운영하는 '마이크스 푸드'(Mike's Food)와 친구 윤병욱씨 소유의 '아메리칸 누-라이트'(American Nu-Lite Inc.) 직원으로 둔갑시켜 줬다.

윤씨는 최근 "홍걸씨가 내 회사 이름을 적어 넣은 사실을 전혀 모르다 이신범 전 의원의 소송자료를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최씨가 홍걸씨를 위하는 마음에서 내 회사이름을 융자서류에 그냥 써넣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과거 인권문제연구소 임원을 지낸 K모씨는 "홍걸씨가 처음 유학을 왔을 때는 김 대통령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 영국에 체류하던 시기"라며 "친·인척 등 가까운 사람의 집 장만을 도와주기 위해 자기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직장증명을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안느냐"고 말했다.

토랜스에 집을 장만한 것 외에 특별히 '튀는 행동' 없이 조용하게 유학생활을 하던 홍걸씨가 '과외활동'에 눈을 돌렸던 것은 대선이 있었던 1997년께 몇몇 인사의 손에 이끌려 인권문제연구소 회의에 참석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인권문제연구소 회의에서 홍걸씨와 만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홍걸씨가 인터넷강의 등에 관심을 보였으나 인사도 목례로 대신할 정도로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3,4차례 회의에 참석했었지만 일부 인사들이 홍걸씨를 이용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보여 마음 속으로는 차라리 나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랬다"고 전했다. 홍걸씨의 서울행이 점차 잦아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즈음부터였다.

홍걸씨의 보호자로 알려진 조풍언씨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조씨는 김 대통령이 야당총재 자격으로 LA에 왔을 때 자신의 부친과 대통령 사이의 과거 인연을 들어 인권문제연구소 회의를 자신이 운영하는 가든스위트호텔에서 열도록 하고 회의에도 직접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인사는 "YS 때 무기중개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 왜 저렇게 DJ에게 열성적인가 의아해 했다"며 "그 후 홍걸씨 가족을 집으로 초대하고 자주 식사도 같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홍걸씨 가족의 출입이 잦아 팔로스버디스에 있는 조씨의 저택은 한때 홍걸씨의 집이라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으나 2000년 홍걸씨 호화주택 소유설이 처음 언론에 부각된 이후에는 두 사람간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걸씨 부부와 현재까지 가장 가깝게 지내는 LA인사는 98년 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LA지역 평통협의회 부회장인 김병창씨다.

김씨는 이 여사의 먼 친척 뻘로도 알려져 있다. 김씨의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가 홍걸씨와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은 대통령 취임후 이 여사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최근 '최규선게이트'가 터지면서 홍걸씨 부부의 행동반경이 좁아지자 홍걸씨의 아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다 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USC 재학시절 만난 윤석중 청와대 해외언론담당 비서관도 홍걸씨의 최측근 인물이다. 윤 비서관은 98년 2월 현 정부 출범 때 계약직 통역 전문위원으로 청와대 근무를 시작해 김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다.

이후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2000년 7월까지 청와대 해외언론 비서관실 3급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LA총영사관 홍보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윤 비서관은 총영사관 근무당시 홍걸씨와 자주 만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공관 내 다른 영사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본인도 자신을 총영사관의 '미운 오리 새끼'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올해 1월 이희호 여사가 김홍일 의원 간병 차 LA에 왔을 때 이 여사를 측근에서 보좌하기도 했던 윤 비서관은 올해 2월 청와대로 복귀했고 이 후 이신범 전 의원과의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소송 문제 때문에 2월말께 LA를 방문했다.

이 밖에 홍걸씨가 이 전 의원과의 송사에 휘말리면서 최측근으로 등장한 인물은 제임스 방 변호사다. LA한인사회에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방 변호사는 다른 측근들과 달리 홍걸씨의 '공식 접촉채널'로 통한다.

홍걸씨가 그나마 자신의 입장을 언론이나 주변에 밝힌 것도 거의 대부분이 방 변호사의 입을 통해서 였다. 홍걸씨가 방 변호사와 의뢰인-변호사 이외의 개인적 인연이 있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재로서는 언론을 포함한 외부인들이 홍걸씨와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창구임은 분명하다.


이신범과의 악연

이신범 전 의원은 80년대 초반 김 대통령의 망명시절 홍걸씨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전 의원은 김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다. 이 전 의원은 최근 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여사의 부탁으로 홍걸씨를 내 차에 태워 관광을 시켜준 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홍걸씨는 말이 별로 없고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전 의원은 이 후에도 몇 차례 홍걸씨의 소식을 제3자 등을 통해 전해들은 적이 있으나 2000년 호화주택 매입설을 터뜨릴 때까지 홍걸씨와 직접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걸씨와 이 전 의원의 질긴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0년 2월이었다. 99년 서울 강서을 지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LA에 온 이 전 의원은 자신의 낙선이 청와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 때문이라며 막내아들 홍걸씨의 '호화 유학생활'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홍걸씨와 이 전 의원간의 법정악연은 이 전 의원이 2000년2월23일 KBS와 KBS의 LA자회사인 KTE, 그리고 민주당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홍걸씨의 토랜스 호화주택설을 제기했던 이 전 의원은 관계방송사들이 자신의 주장을 근거 없는 낭설인 것으로 보도하고도 정정을 거부했다며 명예훼손에 따른 배상을 요구했다.

이 전 의원은 KBS와 KTE에는 패소, 거꾸로 11만 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소송은 38만 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아내 현재 서울지법에서 배상집행재판이 진행 중이다.

방송사와의 소송에서 패한 이 전 의원은 자신의 패소가 홍걸씨 부부의 증언거부로 초래된 결과라며 2001년 1월3일 오렌지카운티 수피리어코트에 증언거부에 따른 60만5,000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이 전 의원은 같은 해 3월19일 홍걸씨가 팔로스버디스에 있는 97만5,000달러 상당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매매계약 때 일시불로 지급한 약 40만 달러의 현금출처를 밝히라고 공격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홍걸씨의 새 집은 0.49에이커(600평)의 전체 면적에 방 5개, 욕실 3개의 이층집으로 구입가 97만5,000달러 중 계약금을 제외한 약 60만달러를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충당했다. 결국 당시 LA총영사관 홍보관이었던 윤석중 청와대 해외언론담당 비서관이 이 소송에 개입해 같은 해 5월17일 쌍방이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소송은 취하됐다. 이 전 의원은 이 합의과정에서 홍걸씨로부터 10만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 팔로스버디스 주택매입과 관련해 법원에 제출한 서류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홍걸씨에 대한 의문들은 꼬리를 물고 확산됐다. 특히 주택융자를 얻어내기 위해 작성한 서류의 기재사항들은 '이 전 의원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던 사람들까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우선 홍걸씨는 융자신청서류에서 국적을 '미국시민'이라고 기재했고 직장 난에는 한인 1.5세 마이클 모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솔루미나 스카이라이츠' (Solumina Skylights)의 간부직원이라고 써넣었다.

이 서류가 작성된 시기는 2000년 6월로 홍걸씨가 USC석사논문 심사를 끝내고 포모나 컬리지 내 태평양연구소(PBI)의 연구원 자리를 잡기 전의 일이다. 물론 신분은 유학생이었고 수입은 서울서 보내오는 학비와 생활비를 빼고는 없어야만 정상이었다.

또 법원자료 중에서는 홍걸씨가 99년 개인명의의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도 부부가 함께 아시아나항공에 근무하는 것으로 서류를 만들었던 기록이 발견됐는가 하면 2001년3월13일∼6월26일까지 3개월 반 동안의 23만3,986달러(한화3억418만원)를 사용, 한달 평균 6만달러 이상의 돈을 썼음을 보여주는 LA지역에 있는 한 한인은행의 금융자료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기록들은 이미 지난 해 이 전 의원을 통해 LA지역 한인 언론사에는 알려진 내용들이었다. 일부 LA지역 동포들은 "지난 해 나왔던 이야기를 갖고 한국언론들이 왜 저리 호들갑이냐"고 의문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이 전 의원마저도 "지난해 한참 떠들 때는 무시를 하는 듯 하던 언론들이 이제 와서 취재경쟁까지 벌이니 묘한 생각이 든다"고 할 정도다.

합의 후 잠잠해지는 듯 하던 두 사람간의 법정 대결은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옷로비 사건과 관련, 이 전 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면서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대해 2001년 7월24일 오렌지카운티 연방지법에 홍걸씨와 윤석중 비서관, 이희호 여사, 박지원 비서실장 부부 등을 계약위반 및 사기협박, 사법절차 남용 등의 이유를 들어 고소하고 700여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맞받아 쳤다.

법원은 지난 해 12월17일 이 여사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홍걸씨와 윤 비서관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는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윤 비서관은 공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22일 이 전 의원과 김재수 변호사가 자신과 홍걸씨를 협박했다고 주장하면서 LA연방지법에 맞소송을 제기해 또 다른 불씨로 남아있다.


홍걸씨의 세 가지 실수

과거 김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K모씨는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홍걸씨와 관련된 각종 비리의혹들을 접하고는 "홍걸씨가 세 가지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K씨에 따르면 최규선씨를 만난 게 홍걸씨의 첫 번째 실수였다. 이 인사는 "어쩌다 최규선과 같은 몹쓸 사람을 만나서 홍걸씨가 이 같은 수모를 겪고 청와대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못 만나도록 진작 말렸어야 하는 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또다른 인사는 "홍걸씨에게는 고교 동창과 같은 친구들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의 주변에는 아버지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했으며 또 다른 한 인사는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순진하고 곱게 자라난 홍걸씨가 최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이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최씨를 한 때 보좌관으로 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최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홍걸씨도 함께 불러 "이제 두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다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K씨가 거론한 홍걸씨의 두번째 실수는 2000년 초 토랜스 주택파문이 일었을 때 굳이 집 값이 3배 가까이 비싼 팔로스버디스로 이사를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때 팔로스버디스의 집을 사지 않고 인근의 월세아파트나 다른 지역의 비슷한 주택을 얻어 이사를 갔더라면 '지금처럼 호화주택'이나 '자금출처'와 같은 말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 세 번째 실수는 아버지가 대통령에 취임한 98년 이후 서울 출입이 너무 잦았고 이 과정에서 공부보다 사업이나 정치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홍걸씨는 본인이 마음만 먹었으면 다른 학생들처럼 박사과정에 들어가 학위를 받았거나 법대에 진학해 미국 변호사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석사학위를 받는 데만 7년의 세월을 보냈고 박사과정 대신 여가시간이 비교적 많은 연구원 쪽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게다가 최씨처럼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자주 만났다. 공부보다 다른 분야에 관심을 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천식 미주 한국일보 차장

입력시간 2002/05/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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