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중국공산당의 차세대 지도자 후진타오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는 중국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를 향해 질주하는 중국경제’를 상징하는 중국산 반도체와 대형 냉장고는 전 세계를 휩쓸 것이다. 중국 우주인들은 달에서 깃발을 흔들 것이며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선 중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독차지 할 것이다.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정부는 언론자유를 확대하고 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시나리오도 가정할 수 있다. 부도난 국영기업의 퇴직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데모를 하고 1억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심에 모여들어 곳곳에 침낭을 깔고 누워있는 모습.

그러나 중국지도부는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무법천지로 변하는 어떠한 징후라도 감지된다면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어민들은 세계 어장을 고갈시키고, 중국의 황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덮어버릴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아시아 전체를 위협할 것이다.

이제 중국 지도자의 결정이 세계 어느 곳에도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환경문제에까지 중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졌다. 따라서 향후 중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부주석에 대한 궁금증은 한 층 클 수 밖에 없다.


강ㆍ온성향 두루 갖춘 21세기형 리더

지난 10년간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 주석아래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해온 후 부주석은 세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사실상 그의 성향과 정치관 등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루 없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조차 라디오나 TV에서 그의 연설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스콧 태너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과 교수는 “후진타오의 경력을 보면 중국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어떤 의도의 시나리오와도 부합할 만큼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며 “그만큼 그의 경력은 오래 전부터 철저한 보호를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강건파와 온건파 양측의 성향을 함께 갖추고 있다. 특히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지역관리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중국의 권력층에 오르는 과정에서는 특정한 성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이들 두 가지 장점을 두루 갖췄다.

그가 관리했던 기관과 단체는 대체로 개혁주의 성향과 진보적 정책으로 운영돼왔다. 중국에 정통한 학자들은 그의 공산당 경력을 비춰볼 때 그의 색채는 수용주의로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정치실험을 받아들이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규정,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발을 묶어버리는 논쟁을 피해왔다. 특히 국제관계에 있어 자신이 난처해 질 상황에 직면할 것을 고려해 중요한 국제행사나 외국 정상과의 면담을 가급적 자제해 왔다.

그러나 최근 자크 시라크 프랑스 총리와 일본경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담에 나서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가을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거의 사전에 준비한 메모만을 읽으며 결코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미국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하는 후 부주석은 과거 차기 중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개인적 성향과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의 강경파들이 그를 유심히 지켜볼 것을 의식해 그는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기 보다 오히려 절제된 무뚝뚝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조셉 퓨스 미 보스톤대 교수는 “이번 그의 방미 목적은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는데 있다”고 분석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중국의 정치상황에서 주어진 항로에서 자칫 이탈할 경우, 단번에 그의 경력에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쩌민 주석과 절묘한 거리감 유지

후 부주석이 이 같은 정치적 올가미를 벗어나 지도자에 오르기 위해 앞으로 6개월이 남아있다. 후진타오는 장 주석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 같은 거리감이 그의 입지를 더 수월하게 만들고 있다.

선임자의 위상을 훼손시키지 않고 권력을 이양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후 부주석의 장점이다. 장 주석은 권력을 이양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입김이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덩샤오핑과 마찬가지다.

장 주석은 그의 오른팔인 쩡칭훙(曾慶紅) 당 조직부장 겸 당 서기처 서기에게 주요 당 부서의 권력을 이양해 포스트 시대의 안전판을 마련해 놓았다. 후 부주석의 장 주석에 대한 충성은 강렬하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이들의 관계가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될 지 알 수 없다.

후 부주석은 1942년 상하이에서 자동차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59년 베이징의 칭화대(수역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했고 학교내 연극단의 수장이 됐다. 후 부주석은 연극 외에도 폭스트롯 등 볼룸 댄스에 높은 관심이 있었다.

1965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또 대학에서 막시스트 이론을 가르치는 정치학 조교로 일했다. 1968년 문화 혁명후 그는 간수성의 새로운 댐 건설현장에 파견돼 농민들을 위한 주택건설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송핑 간수성 당 서기관은 그의 능력을 인정, 발탁해 1982년 공산당 청년동맹 부 비서로 임명했다. 2년 후 비서에 오른 그는 당시 당 내부적으로 경제개혁과 정치개방화를 추진중인 후야오방을 만나면서 권력층에 한 발짝 다가섰다.

후진타오는 당시 온건파였지만 개혁추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자신의 동맹조직을 통해 보수파들이 개혁세력들을 ‘부르주아 자유주의’ 로 매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후 부주석의 향후 국가경영 리더십 자질은 이미 궤이조우(貴州) 당 서기 당시 활동에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일반 시민들의 가구를 직접 방문, 일상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면면을 보였다.

또 후야오방의 정치개혁운동이 한창이던 1986년 궤이조우대에서 일고있던 심상치 않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감지하고 그는 직접 대학을 방문해 학생들을 설득했다.

후야오방이 숙청된 후 그는 대외적으로 자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데모 주동자들을 향해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반동집단”이라고 단정했다.

후 부주석은 스승이었던 후야오방의 숙청과정을 지켜보며 큰 교훈을 얻었다. 결코 그의 선임자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었다. 궤이조우대 사태 해결 후 그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종교ㆍ민족분쟁으로 가장 골칫거리인 티베트의 당서기로 후진타오는 1988년 임명된다. 중국정부로서는 티베트에 수년간 보다 폭 넓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고 생각했지만 티베트의 독립열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그는 티베트의 문화를 존경하는 자세를 견지했고 최고 종교지도자와 만날 때 마다 예의를 갖추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1989년 3월 유혈충돌이 발생, 이틀에 걸쳐 70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학살 당했다. 후 부주석은 1992년 티베트 당서기직을 떠나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베이징에서 보내야 했다. 덩샤오핑 당시 국가 주석은 그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이후 당 중앙위원회의 지도부 중 최연소의 나이로 중앙당 학교를 관장하게 된 그는 최근 미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냉전과 중미 관계’에 대한 리서치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외형적으로 미국 대학과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개방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일부 교수들은 서방국가와 같은 형식의 선거도입 필요성까지 역설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공산당은 이 학교의 충고에 따라 기업인의 공산당 가입을 허용할 정도였다.

후 부주석이 최고 지도자에 오를 경우 이 같은 개혁적인 조치를 단행할 수 있을까. 마오쩌둥은 “방귀를 끼면 훨씬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고, 덩샤오핑은 외국 정상과 대화를 나눌 때도 담배를 피우며 거침없이 침을 뱉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면 과거 그가 가졌던 배포가 줄어드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주룽지는 “항상 100개의 탄환을 준비하고 있다”며 “99개는 부패한 관료들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 부주석은 아직까지 대외적으로 자신의 색채를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단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 그를 몰아붙인다면 결국 그의 선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후 부주석의 진 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03 14:53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