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술과 한의학① 술, 알고 마시면 약된다


술은 알코올 함량 1%이상의 음료를 말한다.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사람이 수렵과 채취를 하던 시대의 술은 과실주였고 유목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젖술을 빚었다.

농경시대에 와서는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가 만들어 졌는데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점차 곡류 양조주가 만들어 졌다.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황제의 딸 의적이 처음으로 술을 빚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나라의 고전에도 술 이야기가 가끔 등장한다. ‘제왕운기’라는 책에 보면 하백의 딸 유와가 해모수의 꾀에 속아 술에 만취된 후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그가 주몽이라고 한다.

술은 여러 용도로 이용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신과의 교류를 할 때, 약으로 쓰일 때 등등… 술이 없다면 인간사회가 제대로 유지될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한의학에서도 술이 차지하는 영역은 넓다.

여러 가지 약재로 약술을 만들어 직접 치료 목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약물을 수치ㆍ법제하는 데에도 많이 사용된다. 수치와 법제라는 것은 삶고, 볶고, 태우는 과정을 거쳐 약제를 변형시켜 효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약제를 술에 담그면 약제에 술의 특징이 가미된다.

술은 가볍고 위로 올라가며 따뜻하게 데워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약의 작용이 보다 인체의 위쪽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따뜻한 작용을 하게 된다. 술을 넣고 볶으면 그 성질이 더욱 따뜻해진다. 단 술에도 비교적 따뜻한 술과 차가운 술이 있고 재료도 각양 각색이므로 이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게 된다.

술은 제조 방법에 따라 양조주, 증류주, 혼성주로 나뉘어 진다. 양조주는 과일이나 곡류, 기타 원료에 들어있는 당분이나 녹말을 곰팡이와 효모의 작용에 의해 발효시켜 만든 술로 알코올 함량이 3~18% 정도로 낮다. 이들은 변질되기 쉬우나 원료의 특유의 향기와 부드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증류주는 발효된 술 또는 술밥을 다시 증류하여 얻는 술로 알코올 함량이 35~60%정도로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진, 럼, 데킬라, 고량주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혼성주는 양조주나 증류주에 과실, 향료, 약초, 감미료 등을 첨가하고 여기에 당분을 더하여 침출하거나 증류하여 만든 술로 리큐르라고 불린다. 주로 약용이나 칵테일로 많이 쓰이며, 인삼주, 매실주, 오가피주, 진, 각종 칵테일주 등이 속한다.

술의 원료나 제조방법에 따라 인체에 작용하는 힘과 방향이 다르다. 보다 정제된 맑은 기운을 가진 술은 마시고 나면 우리 몸의 상부, 즉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이동하며 탁한 술은 아래쪽으로 작용한다. 뜨거운 술은 우리 몸을 달구며 차가운 술은 달구는 듯 하다가 기운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술들의 특징 때문에 안주 문화도 이에 따라 각기 다른 것 같다. 흔히 맥주 안주로 치킨을 선호하고 소주 안주로 시원한 해산물 찌개나 골뱅이 무침 등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차가운 맥주의 안주로서는 따뜻한 닭이 어울리고 뜨거운 소주 안주로서는 시원한 해산물이 어울린다. 이 얼마나 산뜻한 음양의 조화인지. 이렇게 사람들은 일일이 이론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자연의 섭리를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안주 뿐 아니라 해장을 하는 데에도 각종 술의 특색을 알면 도움이 된다. 술독을 제거하려면 그 술독의 성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다. 또한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그에 적합한 술을 마시면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마시게 되는 술이라면 알고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할 듯하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

입력시간 2002/05/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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