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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김두수(上)

[추억의 LP여행] 김두수(上)

음악적 유토피아로의 고단한 여로

1986년부터 91년까지 세 장의 비범한 포크음반을 발표한 후 종적이 묘현했던 대중가수 김두수. 가요 마니아들에게 ‘꽃묘’‘귀촉도’‘약속의 땅’‘보헤미안’등 신비스런 분위기를 내뿜는 독특한 한국적 포크가락과 고품격의 에고이즘으로 무장한 노랫말로 곽성삼, 이성원과 더불어 80년대 3대 언더포크 가수로 추앙 받는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과 모든 노래들은 낯설고 다소 난해할 만큼 진지하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 가락 외에는 멋들어지게 소개할 ‘거리’가 별로 없다. 자신의 이야기나 음악에 대해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고 대중들의 반응이나 인기에도 관심이 없다.

아내와 함께 강원도 대관령 아래 산골짜기의 돔 모양 콘테이너에 묻혀 자연의 소리에 취해 사는 별난 사람이다. 기괴한 도사나 기인처럼 여겨질 법 하지만 실은 강 가나 들에 핀 이름 모를 꽃과 바람에도 정신을 잃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몽유병을 앓듯 자신의 음악 유토피아를 노래 가락으로 표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온 김두수. 그가 10여년 만에 네 번째 음반 <자유혼>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다.

온통 컴퓨터 음향으로 꾸며진 인공의 소리바다에 자연의 소리를 담아 LP와 CD를 발표, 화제가 되고 있다. 365장 한정판으로 발표된 더블 재킷 LP는 벌써 희귀음반으로 대접 받고 있다. 김두수는 세상 사람들과의 낯설은 대면을 위해 스스로 걸어둔 삶의 빗장을 잠시 열어 제쳤다.

1959년 8월 4일 대구 신천동에서 은행원이었던 부친 지재형과 중학교 교사였던 모친 김미성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두수. 네 살 때 잠시 마산에 살았지만 서울로 유학오기 전 까지 줄곧 대구에 머물렀다.

부친은 ‘노래하는 것은 광대짓’이라며 반대했지만 어머니만은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즐겨 불렀다. 김두수는 ‘어머니의 노래는 내 음악의 DNA였다’며 이내 그리움에 잠긴다. 모교인 대구 삼덕초등학교는 한국 야구계의 스타들인 장효조, 양준혁, 이승엽을 배출한 야구명문. 2학년 때 담임 선생이 지도한 음악반에 참여, 동요를 작곡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담임 선생이 이 동요를 대필하여 등사로 찍어 작곡집을 발표해 주었다. 음악공부가 재미났다. 어떤 노래건 한번 들으면 계명을 쉽게 그릴 만큼 소질을 보였다. 담임 선생은 김두수의 부모를 찾아가 체계적인 음악 공부를 권유했지만 부친의 반대는 완강했다.

대구 오성 중학교에 진학하자 사춘기가 찾아왔다. 말수가 줄어들고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출을 생각할 만큼 증세는 심했다. 노래만이 자유로움을 안겨주었다. 친구들과 그룹을 결성해 여대생 누나에게 통기타를 한달간 배웠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기타 연습은커녕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전축이 있는 친구집에 놀러가 인기 절정이던 존 덴버,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점점 더 음악에 빠져들었다. 능인 고교에 진학하자 학교가 싫어졌다.

초등 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을 해온 우등생이었지만 빈둥대다 등교를 했을 만큼 방황의 시절이었다. 음악을 반대하는 부친에 대한 반항은 공부에도 관심을 잃게 했다. 학교 보다는 시냇가에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는 이상한 아이로 변해갔다.

1978년 경북대에 진학했지만 견디기 힘들어 자퇴했다. 외진 시골길을 정처 없이 걷는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도보여행 때 얻은 정서는 내 음악적 토양이자 밭이다. 세상이 싫어지고 삶에 대한 허무감이 꽉 차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

1집은 이때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고백한다.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대학은 꼭 졸업해 다오’라는 어머니의 유언은 거역할 수 없었다.

1981년 고려대 농경제학과에 재입학했지만 휴학을 거듭 졸업까지는 6년이 걸렸다. 휴학 중 삿갓에 고무신을 신고 가야산의 한 암자를 찾았다. 50년 된 대나무 피리를 구해 밤낮으로 호숫가와 산중 바위에서 구성진 우리가락을 벗삼아 세월을 보냈다.

어느날 예쁜 나비 한 마리가 피리 끝에 날아와 앉자 자연과 교감이 느껴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때의 영감은 <나비야>의 노래가락으로 이어졌다. 서울로 돌아온 뒤 82년부터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명동의 PJ살롱, 쉘브르 등에서 무명 통기타 가수로 노래생활을 시작했다.

밤업소에서 지서종이란 본명이 못마땅해 근사한 예명을 요구해 왔다. 감명깊게 읽었던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천하의 악당 <김두수>가 불현듯 떠올랐다. 장난끼가 발동해 정해버린 기막힌 예명이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2/05/0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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