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국민 사기극과 자존심

한국일보 5월 3일자 6면 ‘이말 저말’ 코너에 난 말이다. “김대중식 민주주의는 한껏 누리면서 박정희식 리더십을 바라는 일종의 정신착란.”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 오피니언 난에 ‘강준만의 쓴소리’를 쓰는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5월 4일 출간한 ‘노무현과 자존심’이란 책 중에서 “한국인 지도자만이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서 뽑은 것이다.

강준만 교수, 그는 누구인가. 적어도 그는 DJ(김대중 대통령)에겐 3전4기의 신화의 촛불을 켜가게 한 언론학자다. 그는 적어도 한국 대통령 정치문화에서 “전라도 대통령 어림없어”라는 징크스를 펜이란 칼로 부순 용기있는 돈키호테다.

그가 1995년 1월말 쓰레기 종량제가 정착 되어갈 때, 그리고 주류언론(main stream. 후에 수구 언론으로 표현)이 영국에서 귀국하는 DJ가 정계에 복귀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그는 “왜 DJ는 대통령에 다시 나갈 수 없느냐”는 의문을 쏟아냈다.

그 초점이 ‘김대중 죽이기’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이어 그는 그때 날리던 정치평론가, 신문기자, 칼럼니스트, 주류신문의 평론, 기사를 쓴 이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저널룩(journal과 book의 합성어) ‘인물과 사상’을 냈다. 1998년에는 월간 ‘인물과 사상’을 내 이제 4년을 넘었다.

이런 그가 제2의 신화, 제2의 대통령 징크스 파괴를 위해 나섰다. 그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적합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우리의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정치문화를 갱생(更生)하기 위해서라도 노 후보가 좋을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쓴 책이 앞서 소개한 ‘노무현과 자존심-2002 대선을 향한 강준만의 제언’이다.

또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인질로 잡힌 한국인은 개혁을 원치 않는다’를 냈다. ‘튀는 정치인’보다 체제에 순응하는 정치인을 택하는 정치문화는 국민이 수구세력과 수구언론의 인질로 잡혀 있기에 일어 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은 이런 ‘튀는 정치인’에 개혁을 원하는 척 하면서도 정작 표는 수구에 던지는 사기극을 펼친다고 말했다.

‘국민사기극’은 국민을 이런 정치혐오와 오랜 군사독재로 인한 공포심에서 탈출시키려는 열정을 갖고 이 책을 썼다.

‘자존심’은 네티즌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등이 국민사기극 속에서도 성장한 20~40대와 지식인들의 미래를 향한 의지가 담아 만들어 낸 생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 교수에 의하면 노사모는 “동원조직이 아닌 자원조직이며 하향외곽조직이 아닌 상향적 시민조직이고 명망가 중심의 캠프가 아닌 다수 익명의 지원조직”이라며 “우리 나라 정당의 미래상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 조직이 노 후보를 도왔다는 것이다.

그는 DJ와 함께 목포에서 살았지만 그의 부모는 황해도에서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실향민 2세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죽이기’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전라도 대통령이 나와야 우리나라에 민주화의 미래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은 떠나도 전라도는 남는다”는 명제 앞에 항상 전라도만 남아 있으면 ‘국민사기극’은 계속 되고 100년간 잃어버렸던 민족의 ‘자존심’은 되살아 날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민사기극’을 끝내고 민족 ‘자존심’을 찾기 위해 그로서는 하기 어려운 제안을 DJ에게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노 후보가 DJ를 밟고 가라고 하지만 그는 반대한다. DJ 아들들의 비리 해결책도 그는 제시하고 있다.

“나는 김대중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처절하게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끔 하고 자신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그것 역시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는 또 “적당히 넘기다가는 큰일이 난다. ‘정권안보’ 핑계 대고 투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경고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이채롭다. “수구신문(조선ㆍ동아ㆍ중앙일보 등을 지칭)에 대한 대통령 김대중의 소심한 태도가 오늘날 김 정권을 수렁에 빠뜨리고 대통령 아들들과 친인척 비리 문제를 낳게 했다. 집권 초부터 수구신문과 무서운 긴장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제일 먼저 ‘집안단속’부터 철저히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지금처럼 국민을 배신하는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게 아닌가.”

그의 ‘국민사기극’과 ‘자존심’에는 노무현이라는 창을 통해 지체된 역사로 왜곡되고 굴절된 한국 정치와 사회를 들여다 보려는 의도가 강하다. 그는 정치를 썩게 만드는 주범이 투표를 하지않는 국민, 스스로 불안에 쌓여 현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에 대해 ‘과격’이란 이름으로 표를 주지 않는 국민에게 있음을 여러 군데에서 주장했다.

또 이를 알리려는 메신저 역할에 치우치거나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주류언론 행태에 분노했다. 그는 구태의연을 고수한 것이 DJ의 치명적 실수였다며 이 같은 ‘틀’(Frame)을 넘으라고 노무현 후보에게 충고한다. 강준만의 이 같은 주장을 필자가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YS와 DJ를 화해시키고 정계개편을 통해 민주대연합을 추진하려는 노 후보가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봄 직하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5/0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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