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 산] 방태산

국내에서 원시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산은 어디일까? 산꾼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울릉도 성인봉, 인제 점봉산, 정선 가리왕산 등과 함께 언제나 꼽히는 산이 있다. 방태산(강원 인제군 기린면, 상남면ㆍ해발 1,444㎙)이다.

방태산은 인제와 홍천의 경계를 이루는 넓게 퍼진 산이다. 바위 보다는 흙이 우세한 완만한 육산이다. 그래서 나무와 풀이 많다. 한 발 들여놓기 힘들 정도로 우거져 있다. 한 낮에도 새벽 어스름처럼 어둡다. 이제 신록이 더욱 짙어지면 그 원시의 어두움은 더할 것이다. 본격적인 원시림 산행이 시작된다.

인제군 기린면의 ‘기린’은 아프리카의 동물 기린(麒麟)을 의미한다. 1900년대에 들어서야 일제에 의해 기린이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것을 헤아려보면 이 기린은 전설 속의 동물을 뜻하는 것 같다. 동양의 전설 속에서 기린은 성인이 태어나는 것을 예시하기 위해 나타나는 동물이다.

인제에 기린이 정말 나타났을까? 인제 사람들은 기린이 아니라 이 곳에 기린을 닮은 사슴이 많이 살아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말한다. 왜 이 깊은 산골짜기에 기린들이 몰려 살았을까. 대답은 쉽게 떠오른다.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서이다.

방태산과 그 주변은 아침가리, 적가리골 등 정감록에서 말하는 한반도 삼재불입지처(수, 풍, 화의 세 가지 재난이 들지 않는다는 곳) 200곳 중 7곳(3둔 4가리)을 품고 있다.

그만큼 깊은 산골짜기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슴 뿐 아니라 속세를 등진 사람들도 이 곳을 찾았다. 이제는 산 중턱에 자연휴양림이 생길 정도이니 세상과 완전히 연을 끊은 산은 아니다.

골짜기가 많은 방태산은 산에 오르는 길도 다양하다. 약 4시간 30분 코스에서부터 2박 3일 코스까지 일정에 따라 여러 산길을 잡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이고 무난한 코스가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정상인 주걱봉에 올랐다가 구룡덕봉, 매봉령을 거쳐 다시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약 6시간이 걸린다.

산행은 처음부터 계곡의 절경으로 시작된다. 휴양관 앞에 이폭포 저폭포가 있다. 이름이 조금 희한하지만 말 그대로 물줄기가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이다. 넓은 암반을 흐르던 물이 한 번은 모아져서, 한 번은 넓게 퍼져서 떨어진다. 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물가로 내려가 보면 더욱 아름답다.

약 3시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주걱봉에 오른다. 넓은 공터가 있다. 삼각점과 간이의자가 놓여있다. 주변의 조망이 화려하다. 온통 신록의 변주가 시작된 백두대간의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북쪽의 가리봉-점봉산-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의 파도가 압권이고, 동쪽의 구령덕봉-가칠봉도 통쾌하다.

약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구룡덕봉이다. 내리막인데다가 완만하기 때문에 산보하듯 걸으면 된다. 구룡덕봉 인근은 한반도에서 가장 너른 야생화군락이 펼쳐진 곳이다. 지금 완전히 꽃밭이다. 마루금에서 만나는 꽃밭. 천상의 화원이 이런 모습일 게다. 이쯤 되면 산행이 아니라 신나는 소풍길이다.

방태산의 짧은 산행은 일반인에게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인근의 산을 연계한 1박 2일, 2박 3일의 장기 산행을 계획하려면 치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그만큼 오지에 들어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인솔자가 있어야 한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2/05/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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