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가 살아숨쉬는 때묻지 않은 비경
과거 오랫동안 이곳의 터주대감 격인 티베트족 9개 부락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구채구(九寨溝ㆍ지우자이거우·)라 부르게 되었지만 그 지명이 주는 의미보다 그 빼어난 자연환경이 방문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해발 2,000∼4,000m에 이르는 협곡 사이로 펼쳐진 100여 개의 맑은 호수들은 주변의 숲과 나무 등과 함께 조화를 이뤄, 붓으로 그려놓은 수채화 같다.
2000년 초봄 필자가 중국 쓰촨(四川)성 구채구를 찾아가는 길은 정말 극적이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시안(西安)까지 항공편을 이용하고 시안에서 꽝원까지는 열차를 이용해 11시간. 다시 꽝원에서 구채구까지 버스로 11시간을 달려야 했다.
광원에서 구채구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서 구채구가 어떤 곳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여정을 마다 앉고 여행을 할까 내내 궁금했다.
199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97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 생물권보호구로 동시에 지정되었다는 배경을 볼 때 중국의 여러 생태공원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힘든 여정을 잊을 수 있었다.
지금은 쓰촨성의 칭타오에서 구채구현까지 전용도로가 신설돼 9시간정도면(편도 430㎞) 쉽게 오갈 수 있다고 하니 그동안 많은 변화가 생긴 셈이다. 그나마 여름철 수해가 있거나 산사태가 발생하면 도로는 쉽게 불통된다고 한다.
소수민족 티베트족의 근거지. 구채구
지금은 아홉 개 부족중에서 단 한 곳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한 부락 역시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공연을 보여주면서 연명하고 있어 과거의 부족의 명성은 온데간데없다.
우선 구채구에는 해발 2,000m에서부터 4,0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맑은 물이 가득 채워진 자연 호수들이 100여 개 흩어져 있다. 계곡이 깊고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수량이 풍부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곳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물이 웅덩이진 곳에 터를 잡고 호수를 만들었고 경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폭포를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물줄기는 평지에 이르면 넓은 수면을 가진 호수가 된다. 그리고 작은 내를 이뤄 다시 내륙으로 흘러 들어간다. 신생대 4기 빙하가 지나가면서 생겨난 엄청난 규모의 협곡사이로 용이 휘감아 돌아가듯 거대한 물줄기가 때로는 호를 이루고 때로는 폭포를 만들어 가며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수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다.
협곡 중심으로 산, 호수, 그리고 원시림
구채구는 해발 4,528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크게 Y형의 협곡을 이루고 있는데 관광포인트가 되는 낙일랑폭포를 중심으로 좌우의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산과 호수 그리고 원시림이 빼어난 경관을 자아낸다.
굳이 구채구를 코스별로 나누어본다면 해발 2,000m 계곡입구(溝口)에서 낙일랑(諾日郞)폭포까지의 수정구와 낙일랑삼거리에서 사람이 갈 수 있는 최고봉 명소인 해발 3,103m 장해(長海) 그리고 삼거리에서 크고 작은 호수를 따라 오르는 해발 2,650m의 일측구 등 3개 코스로 구분할 수 있다.
협곡의 입구가 되는 구구에서 낙일랑폭포까지의 수정구는 13.8㎞구간에 왼편으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화화해(火花海), 한 마리의 용이 물 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와룡해(臥龍海), 5㎞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호와 소가 이어지는 수정군해(樹正群海), 서우해(犀牛海) 등 아름다운 수경이 연이어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해발 2,250m 일대에 펼쳐진 수정군해는 가장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호와 소가 장관을 연출한다.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의 진지한 모습은 한 장면도 놓치지 않을 태세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상류를 따라 오르면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낙일랑폭포가 우측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마치 거대한 수막 커튼을 드리운 듯 수풀사이로 떨어지는 가는 물줄기는 가히 장관을 이룬다. 아래로 난 좁을 길을 따라 폭포 밑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와’하는 관광객들의 탄성도 폭포수의 굉음에 가려 아무 소리도 들리기 않는다.
다만 쉴새 없이 떨어지는 폭포소리에 귀가 멍해지고 나 자신도, 세상도 잊어버리게 된다. 깊은 산중임을 감안할 때 4월까지도 얼음이 얼어 있을 정도로 기온이 낮다. 폭포수가 그대로 얼어붙어 멋진 조형물을 이루기도 한다.
또 옅은가 하면 짙고 어두운가 하면 또 밝은 빛깔에 신비롭기 짝이 없다. 이곳 오채지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드넓은 면적과 수려함을 자랑하는 장해에 도달하게 된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하고 돌아보면 현재 서 있는 곳이 해발 3,060m, 조금만 걸어도 호흡이 가빠지는 하늘세계로 들어온 듯하다.
삼거리에서 다시 우측으로 올라가면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한 처녀성을 지닌 원시림이다. 원시림에 앞서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호가 나타나는데 내내 탄성이 멈출 새가 없다.
바람이 잘 때면 수면이 마치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고 하는 경해(鏡海), 햇빛이 비치면 수천 수만의 진주가 반짝이는 진주해, 팬더곰이 발견되었다는 팬더해, 대나무 화살을 닮은 전죽해(箭竹海), 백조의 호수인 천아해(天鵝海) 등 아름답기 짝이 없는 수많은 호수가 펼쳐지고 이 호수들을 다 지나면 해발 4,200m고봉에 둘러 싸인 대자연 원시림의 세계로 접어든다.
서울보다 큰 면적이 호수에 둘러싸여
쓰촨성 난평현에 위치하는 구채구는 해발 2,000∼4,528m의 고산에 펼쳐진 수경 명승지로 넓이가 720㎢에 이른다. 서울의 면적이 600㎢이니 그 규모가 짐작이 된다.
역사적으로 구채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0년 초반의 일이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75년으로 최근의 일이다. 어느 나무꾼이 발견한 후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국가정부에서 국민 관광지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 92년에는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고. 그 뒤 97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생물권보호구로 동시에 지정되면서 이곳에서는 담배 한 개피도 피우지 못하는 보호구가 되었다.
구채구 풍경구내의 교통수단은 특별히 고안된 환경자동차를 이용해야 하며 구채구를 순환하는 동안 어느 곳에서나 내리고 탈 수 있다.
입력시간 2002/05/09 14:0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