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게임의 법칙

방송과 신문에서 연일 보도되는 내용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도무지 몇 개인지조차 헷갈리는 게이트, 최소한 두 번씩은 본 것 같은 월드컵 관련 방송, 갈수록 잔혹해지고 엽기적인 양상으로 치닫는 범죄사건들 등등. 간만에 인천방송에서 방영하는 WWF 프로레슬링을 보았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WWF 레슬링이 미국의 국가주의를 상징적으로 재생산하며 백인중심의 인종적 사고와 남성중심의 성적 편견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100 kg이 넘고 2 m에 육박하는 거구들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공격을 주고받는 모습 속에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인간적인 측면이 가로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커다란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레슬러들이 기울였을 노력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이해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신화지에서 현대의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 쇼 비즈니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찰한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바르트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레슬링 중계에 주목하면서 프로레슬링이 스포츠일 수 없는 이유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프로레슬링을 통해서 스포츠의 일반원칙들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경기장. 모든 스포츠는 정해진 규격의 경기장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나 주요한 경기 도구가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벌점이 주어지거나 경기가 일시 중단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지정된 경기장인 링뿐만 아니라 링사이드와 관람석 심지어는 라커룸이나 주차장에서까지 경기를 벌인다. 실질적으로 프로레슬링에는 엄격하게 규정된 경기장이 없다.

두 번째는 심판의 역할. 스포츠에서 심판의 위상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그 권위는 절대적이다. 물론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심판은 승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 심판은 엉뚱하다. 체육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심판밖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로레슬링에서 심판의 역할은 무대 위에 올려진 소품이나 꼭두각시와 무척이나 흡사하다.

세 번째는 반칙. 스포츠의 경우 반칙에 대해서는 유보사항이 있을 수 없다. 파울이 지적되면 벌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 반칙은 심판이 카운트를 하는 동안 하나의 공격 기술로서 허용된다. 격투기의 성격이 일부 반영된 결과이겠지만 반칙을 기술로서 일시적이나마 승인하는 경기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

네 번째는 필살기(必殺技). 스포츠에는 선수의 네임 밸류에 따른 심리적인 개입이 분명히 존재한다. 상대방이 미리 겁을 먹고 주눅이 들거나, 심판이 경력을 인정해 점수를 더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일의 박치기나 안토니오 이노키의 코브라 트위스트처럼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필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베컴의 프리킥이라고 해서 매번 골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만화나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필살기는 프로레슬링의 상징적 핵심이다. 필살기의 상징성은 관객의 기대지평과 선수의 행위를 하나로 엮어 한 편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링 위에서 쇼맨십이 연출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사항만은 반드시 지켜진다. 하나는 링에 올라오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연습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포츠와는 달리 프로레슬링에서는 '페어 플레이'가 요구되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에서 페어플레이는 각별히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명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를 프로레슬링에서 잠시 엿보았다면 지나친 역설이 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05/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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